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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별' 여진구 키스신, 내 가치관을 바꾼 명품 배우의 저력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감자별 2013QR3

'감자별' 여진구 키스신, 내 가치관을 바꾼 명품 배우의 저력

빛무리~ 2013. 10. 1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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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잘 모르겠다. 그저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과 팔자가 제각각이라는 말 밖엔 할 수가 없다. 분명 머리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제 17세, 고등학교 1학년이라면 분명히 미성년자다. 만으로 15세~16세일 것이다. 나는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미성년자들이 성인 컨셉으로 등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는 것보다 제 나이에 걸맞는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승호가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로 8세 연상의 서우와 부부 연기를 선보이며 치정 멜로에 출연할 때도 나는 심한 거부감을 느꼈고, 갓 중학교에 입학한 14세 소녀 김유정이 성인 컨셉의 섹시 화보를 찍었을 때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섹시 댄스를 추는 아이돌 걸그룹을 바라볼 때도 내 마음속에는 측은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까지 아이들을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어른들의 추악함에 나는 항상 분노했다.

 

그런데 왜 전혀 예상 못했을까? 17세의 여진구가 이번에 '감자별'에서 맡은 배역은 24세의 성인 남자 홍혜성이다. 홍혜성은 극 초반부터 여주인공 나진아(하연수)와 심상찮은 멜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키스신 정도는 정해진 수순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나는 "오, 성인 배역이 썩 잘 어울리는걸. 연기가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걸 보니 염려 안 해도 되겠어!" 라고 생각했을 뿐, 여진구가 앞으로 촬영해야 할 장면들이 나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위배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격정 키스신은 불과 8회만에 찾아왔다. 이제껏 수많은 배우들의 키스신을 보아 왔지만, 날것의 생동감이 이토록 짜릿하게 전해진 것은 처음이었다. 17세 소년의 열정은 리얼한 화면 속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불타올랐다. 지금까지 보았던 성인 배우들의 키스신에는 모두 어느 정도 작위적인 느낌이 있었음을, 나는 여진구의 키스신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 나의 굳건한 가치관에 비추어 볼 때, 미성년의 배우가 그토록 진한 키스신을 찍었다면 마땅히 거부감을 느껴야 하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급작스레 등장한 키스신이었지만 설득력 있는 전개 과정 때문에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17세 여진구의 농익은 연기가 24세 홍혜성의 고조된 감정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진아와 홍혜성은 피끓는 청춘이었고, 술에 취했고, 이제 곧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어쩌면 삶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이 순간 눈앞에 그가, 그녀가 있었다.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서며 호감을 느꼈지만 아직 그 의미를 뚜렷이 인식 못하고 있던 두 사람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번개처럼 사랑을 깨달았다. 참을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던 키스... 그것은 더없이 자연스럽고 애틋했으며 눈물나도록 격정적이었다.

 

 

지구에 근접하여 비켜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던 '소행성 2013QR3'가 급격히 진로를 바꾸었음이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엄청난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경우 그 피해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변호사 김도상(김정민)의 큰아들 10세 규영(김단율)은 황당한 초능력이나 외계인 따위에 집착하는 바람에 항상 엄마 노보영(최송현)에게 혼쭐이 나곤 했는데, 지구에 닥쳐오는 최대 위기를 가장 먼저 예측한 사람도 그 아이였다. 물론 지구 종말이 온답시고 호들갑을 떨어댄 것은 지나친 오버였지만, 이 녀석의 촉과 영감이 범상치 않은 것만은 확실해졌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얼까? 규영의 선택은 저금통을 깨서 불량식품을 잔뜩 사다가 배터지게 먹는 것이었다. 섬뜩한 예지력에 비해서는 너무 아이다운 소원이라 귀여워서 실소가 나왔다.

 

규영의 동생 규호(정준원)는 형과 좀 다른 방향으로 독특한 아이였다. 8세 나이에 벌써 세상을 다 알아버린 것처럼 극염세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규영이가 초능력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하면, 규호는 기꺼이 형의 실험 대상이 될 것을 자청한다. 엄마한테 들켜서 장난을 멈추게 되었을 때도 규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규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 다음엔 꼭 초능력을 보여줘. 난 죽어도 괜찮으니까!" 이런 규호가 지구의 종말을 맞이하여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는, 평소 짝사랑하던 여자친구 혜림이한테 뽀뽀하는 것이었다. 소행성 2013QR3가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온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규호는 그녀의 집 앞으로 달려가 대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혜림아, 문 열어 줘. 난 죽기 전에 너랑 뽀뽀하는 게 소원이야. 그래서 왔어!" 이건 어린애의 소원치고는 너무 절절해서 가슴까지 먹먹해 왔다.

 

젊은 사장 노민혁(고경표)에게 번번이 무시당하던 오이사(김광규)는 신제품 '마요네즈 버거걸' 출시 기념회에서 술에 취해 본의 아니게 한 여직원을 성희롱(?)하게 되고, 전격 퇴사를 통보한 후 연락두절된 그 여직원에게 노민혁은 직접 사과를 하려 한다. 오이사에게 당한(?) 충격으로 울고 있던 그녀를 집에 데려다 준 사람이 나진아였기 때문에 노민혁은 길 안내를 부탁하고, 나진아는 퇴근 후 노민혁과 함께 그 여직원의 집을 찾아가기로 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전셋집을 얻어 이사가는 데 보태려던 나진아의 적금 1000만원을, 다단계에 빠진 엄마 길선자(오영실)가 루비회원이 된답시고 온수매트를 구입하는 데 몽땅 털어넣고 말았던 것이다. 설상가상 그 다단계 회사는 곧바로 파산하여 공중분해되고, 지난 세월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나진아는 절망하여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길선자의 부탁을 받고 나진아를 마중나온 홍혜성은 울고 있는 그녀의 술친구가 되어 주었다. 사고뭉치 엄마 때문에 꼬여버린 인생을 한탄하며 나진아는 거침없이 소주를 들이키고, 말리던 홍혜성도 나중엔 적잖이 취했다. 까무룩 잠들었던 나진아는 노민혁의 전화를 받고 화들짝 깨어나는데, 비틀거리면서도 사장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일어서던 나진아는 하늘 저편에서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는 거대한 물체를 발견한다. 설마 했는데 뉴스에서 본 소행성 2013QR3가 정말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곧 충돌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아와 혜성의 몸 속에 잠들어 있던 모든 세포가 깨어났다. 사시나무처럼 떨며 품 속에 안겨드는 진아의 두 뺨을 감싸고, 혜성은 키스를 한다. 더 이상 눈치를 보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었던 그 순간, 삶과 사랑의 마침표를 찍는 뜨거운 키스였다.

 

소행성 2013QR3은 도대체 어디에 착륙한 것일까? 다음 주 예고편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는 홍혜성과 그에 분노하는 나진아의 모습이 그려졌다. 얼핏 보기에 아무 변화 없는 듯한 일상이지만, 분명히 무언가 달라졌다. 앞으로의 전개가 몹시나 기대되는데... 

 

 

홍혜성 역에 여진구를 선택한 김병욱의 안목은 과연 탁월했다. 비록 17세의 나이가 좀 걸리긴 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청년 홍혜성을 여진구보다 더 생생히 표현해낼 배우는 없을 것이 확실했다. 지금까지는 고등학생 역할조차 스무 살 넘은 성인들에게 맡기던 김병욱인데, 이번에 파격적으로 여진구를 기용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상할 만큼 아무런 거부감도 느껴지질 않는다. 저 배우가 미성년자라는 생각조차 그 순간에는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완벽한 연기였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가치관을 수정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고지식한 성품을 타고났으며 교사 출신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했고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지녔다. 솔직히 나의 가치관은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지나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나 자신도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나의 개성이며, 수많은 다양성 중 하나일 뿐이라고 지금껏 생각해 왔다. 나의 삶 자체가 스스로의 가치관에 위배되지 않는 한, 나는 그 누구에게도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한 번도 유행이나 시류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을 만큼 나는 고집스런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서두에 언급했듯이 사람에게는 저마다 타고난 운명과 팔자가 있는 모양이다. 영화 '화이'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여진구는 그냥 천생배우다.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평범한 인생과 행복은 누리기 어렵더라도, 그에겐 또 다른 인생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저런 명품 연기를 못 하도록 막아선다면, 과연 옳은 일일까? 난생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수십년 동안 철벽 옹성에 갇혀 있던 나의 고집스런 가치관을 바꾸게 만들다니 여진구는 정말 대단한 배우다.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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