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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별' 폼생폼사 장기하의 겉멋 가득한 연기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감자별 2013QR3

'감자별' 폼생폼사 장기하의 겉멋 가득한 연기

빛무리~ 2013. 10. 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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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그 날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던 소행성 2013QR3은 다시 경로를 바꾸어 지구의 위성이 되어 버렸고, 밤하늘에는 거짓말처럼 두 개의 달이 떠올랐다. 지구의 종말과 죽음을 예감하며 공포에 떨던 사람들은 저마다 치열한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되고, 그 색다른 내면적 체험들은 더 이상 지구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일이 없으리라 여기며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한 사람들 중 몇몇은 상대방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 그 날부터 꿈 같은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8살난 규호와 혜림이 커플도 있었다. 사랑하고 뽀뽀하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고 규호 엄마 노보영(최송현)은 타이르지만, 염세적 종말론자(?)인 규호는 어른이 되기 전에 지구가 멸망하면 자기만 손해라면서 꿋꿋이 버틴다. 급기야 어린 연인들은 부모의 눈을 피해 깜찍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데, 규호도 그렇지만 혜림이 고것도 참 맹랑하다. (풋~)

 

금방이라도 충돌할 듯 날아오는 감자별을 보며 삶의 마지막일 것처럼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던 나진아(하연수)와 홍혜성(여진구)은 시치미 떼며 은근한 밀당을 시작했다. 초반의 주도권은 능구렁이 홍혜성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몽롱한 취기와 불같은 키스에서 깨어난 다음 날, 평소와 달리 어색해하는 진아를 보며 혜성은 말했다. "어젯밤 그거, 별 의미 없는 거였어. 혹시 오해할까봐..." 미처 몰랐는데 이 녀석, 굉장히 치명적인 나쁜 남자다. 짐작컨대 연애 경험도 적지 않을 듯 싶다. 자연스럽고 능수능란하고 여유롭고 뻔뻔하다. 순진무구한 나진아는 홍혜성의 막강 포스에 속절없이 휘말린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어?... 어, 그래" 하며 바보처럼 넘어간 게 너무 분해서 팔짝 뛸 지경이다. 그래서 잔뜩 벼르다가 간신히 복수 멘트를 날렸는데 심하게 오버했다. "나도 아무 의미 없었거든. 나 절대 너 남자로 안 보거든. 네가 남자면 파리가 새다!" 그 유치한 멘트에 피식 웃는 혜성의 표정을 보니 창피해서 더 죽을 지경인데, 24살 청춘은 앞으로 얼마나 더 밀당을 거듭하고 나서야 8살 꼬맹이들 만큼 솔직해질 수 있을까?

 

 

홍혜성의 강력한 연적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노민혁(고경표)은 아무래도 좀 시간이 걸릴 모양이다. 운명의 그 날 회사에서 추락 사고를 당해 머리를 심하게 다치더니, 기억상실증에 걸려 1991년 당시의 일곱 살 꼬맹이로 돌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일단 기억상실증 에피소드가 등장했으니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듯한데, 그런 상태에서 나진아와의 러브라인을 진행할 수는 없을테고... 먼 훗날 기억이 돌아온 후 나진아를 향한 감정을 깨닫는다면, 20년만에 재회한 형제는 사랑 때문에 서로 총구(?)를 겨누는 가슴아픈 상황을 맞이하게 될까? "인생을 살다 보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있어!" 3회에 나왔던 노민혁의 그 대사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게 왠지 심상치 않다. 그나저나 코믹 캐릭터인 줄만 알았던 오이사(김광규)는 알고 보니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었다. "안 죽었대? 이를 어쩌지...", "병원에서 아예 끝장을 내 버릴까요?" 하는 대화 내용으로 보아 노민혁의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회사를 차지하려는 그들 패거리의 음모였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9~10회에서는 노수영(서예지)을 사이에 두고 줄리엔과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될 기타리스트 장율(장기하)이 처음 등장하여 스토리의 전면에 나섰다. 감자별이 지구로 돌진해 오던 그 밤, 장율은 밴드의 동료들과 함께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충격적인 뉴스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모두 혼비백산하며 밖으로 뛰쳐 나갔다. 하지만 아무 상관 없다는 듯 텅 빈 무대에 홀로 남아 끝까지 음악을 연주하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장율이었고, 변덕스런 공주 노수영은 그런 장율의 모습을 보며 한 눈에 꽂히고 말았다. 그 밴드의 기타 연주자가 삼삼그룹의 프린스라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갔던 터라 불순한 마음도 적잖이 섞여 있었지만, 인간의 오묘한 감정이란 쉽게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호기심은 관심으로 변했고, 오해는 궁금증을 낳았고, 기다림은 집착으로 변했다. 머지않아 오해는 풀렸다. 그는 재벌의 아들이 아니라 가난한 찐따 뮤지션에 불과했다. 하지만 얄궂은 운명적 사랑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서예지와 장기하는 둘 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연기를 선보이는 신예들인데, 노수영 역 서예지의 연기는 거의 나무랄 데 없을 만큼 수준급이다. 사치하고 변덕스런 부잣집 딸의 이미지를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 특히 할아버지 노송(이순재)의 연애 코치를 해줄 때, 실제 할아버지뻘의 대선배 앞에서도 경직되는 기색 없이 천연스런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화려함과 단아함을 동시에 갖춘 미모가 상당히 돋보인다. 요즘 세상에 미인이 한둘은 아니지만, 서예지의 외모는 천박하거나 흔해 빠진 느낌 없이 비교적 고급스럽고 신선하다. 외모와 연기력을 함께 갖추었으니 앞날이 기대되는 신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와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장율 역의 장기하였다.

 

물론 본업이 가수이니 제대로 된 연기 수업도 받아 본 적 없을테고, 작품에 임하는 자세도 다를 것이다. 나 역시 웬만큼은 감안하고 보아 줄 용의가 있었다. 윤계상이 카메오로 등장하여 '하얀거탑' 패러디를 선보인 것처럼, 시트콤의 특성상 갖가지 다양한 매력이 공존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에, 연기 경험도 없는 가수가 뜬금없이 중요 배역을 맡았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뻣뻣함이나 어설픔 정도는 얼마든지 너그럽게 웃으며 보아 넘겨 줄 수 있었다. 하지만 9~10회를 지켜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김병욱의 안목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과연 장율 역에 장기하를 캐스팅한 것이 최선이었을까, 자칫 이번 작품의 유일한 오점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저절로 고개를 쳐들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장율 캐릭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28세. 가난한 기타리스트. 남들보다 두 박자 느린, 시대를 잘못 만난 예술혼. 물욕도 명예욕도 없는 산신령같은 성격' 그런데 화면에 비친 장기하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폼생폼사 장기하일 뿐, 물욕도 명예욕도 없이 산신령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장율의 분위기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엔 연기를 못해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물론 연기를 못하기도 하지만, 장기하의 기본적 마음가짐이 장율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장기하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야 서울대 출신의 잘나가는 젊은 뮤지션~ (히얏호) 이젠 연기 분야에까지 발을 넓힌 만능 엔터테이너~ (히얏호) 시트콤 거장에게 선택받아 단숨에 중요 배역을 꿰어찬, 나는야 이 시대의 행운아~ (히얏호) 이런 나한테 반했지? 나 정말 멋있지?" 하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득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학급 반장이었던 한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부도 잘 하고 키도 크고 잘 생긴 아이였는데, 항상 표정과 몸짓과 걸음걸이가 액션 영화배우를 따라 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갓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눈으로 볼 때는 유치해 보이지도 않았고, 진짜로 잘난 녀석이 그러니까 꽤나 멋있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시크한 성격의 국어 선생님이 반장을 호명하여 뭔가 심부름을 시키셨다. 반장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잔뜩 힘이 들어간 몸짓과 걸음걸이로 선생님께 다가갔다. 몇 초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픽~ 하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저 애는 왜 저렇게 겉멋이 들었어?" 그 '겉멋'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강타했다. 그 동안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좀 웃겼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속멋'이 아닌 '겉멋'...!

 

 

1982년생 장기하는 올해 서른 둘, 적다고는 볼 수 없는 나이지만 내가 보기엔 그 내면이 참으로 어리다. 어찌 보면 1997년생 여진구보다도 어리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보통은 '힐링캠프'를 시청하고 나면 그 주인공에 대한 호감이 늘어나게 마련인데, 장기하의 경우는 반대였다. (물론 나의 개인적 관점이다) 그렇다고 비호감이랄 것까지는 없었지만, 너무 철 없고 속 없어 보여서 살짝 한숨이 쉬어졌다. 객관적으로 볼 때 장기하는 남들이 부러워할 요소를 참 많이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고의 학벌, 음악적 능력, 대중적 인기, 부족함 없는 환경에 싱싱한 젊음까지... 그래 뭐, 지금은 하늘이라도 뚫고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자신만만할 터이다. 아직은 진짜 인생의 쓴맛을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나 잘났소~"하는 듯한 태도는 중학교 1학년짜리의 겉멋 든 모습 만큼이나 우스꽝스러웠다. 게다가 '힐링캠프' 출연 이후로 부쩍 올라간 인지도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풀 메이크업을 한 상태로 공항을 활보했다는 뒷이야기까지 들려왔다.

 

이런 장기하가 물욕도 명예욕도 없는 소탈한 성격의 장율을 연기하고 있으니, 내가 보기에 이것은 명백한 패착이다. 최소한 불 켜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동안에는 연기자의 내면과 캐릭터의 내면이 일치해야 하는데, 필시 장기하는 그 미션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의 실제 성격과 전혀 다른 캐릭터를 표현하려면 농익은 연기력을 지녔든가, 아니면 성숙한 내면이라도 지녀야 하는데 장기하는 둘 다 아니기 때문이다. 속물적이며 도도한 공주 노수영과 자유롭고 소탈한 영혼 장율의 케미가 제대로 살아난다면... 아, 정말 상상만 해도 설레고 짜릿하고 흥미로운 러브라인이 펼쳐질 텐데, 화면에 비춰지는 모습은 도도한 공주와 잘난척 왕자의 기싸움일 뿐이니 아쉽고 또 허탈한 심정이다. 예상컨대 장기하는 이 작품의 엔딩에 이르도록 진짜 '장율'이 되지 못한 채 '장기하'의 모습만 줄창 보여주다가 끝맺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좀 더 지켜보기는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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