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드라마를 보다 (259)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제가 본 최고의 드라마로 기억하고 있는 '부활'의 콤비, 김지우 작가와 박찬홍 PD가 다시 뭉쳤다는 이유만으로도 '상어'는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부활'과 '마왕'에 이은 세번째 복수극이라는 점에서는 더욱 설렘을 억누를 수가 없었죠. 김지우 작가의 복수극은 치밀한 전개로 스토리 자체가 긴박감 넘치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복수라는 주제에 휘말려 등한시하기 쉬운 인간의 섬세한 감정들을 몹시도 리얼하게 표현해 주는 탓에, 언제나 극대화된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수 있거든요. 복수란 본질적으로 행복한 것일 수 없기에,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복수를 응원하면서도 가슴 한켠으로는 복수의 당위성을 고민하기도 하고, 복수의 과정 속에 점점 망가져 가는 주..
처음부터 대놓고 '치정극'을 표방한 드라마라기에는 사건 사고가 부족한게 아닌가 싶더니,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남자가 사랑할 때'는 본격적인 '치정멜로'의 극치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치정'이라는 단어에서 필히 연상되는 것은 비뚤어진 사랑의 무서운 집착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어지러운 (또는 끔찍한) 사건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무릇 치정을 다룬 드라마에서는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사랑을 빌미삼아 일어나야 하고, 그로 인해 등장인물들이 파멸해 가는 과정 또한 필수 코스라 하겠습니다. 폭력조직의 2인자 한태상(송승헌)이 가난한 소녀 서미도(신세경)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한태상은 조직원들을 이끌고 ..
목마름은 항상 간절했지만 개인적으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글쓰기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어영부영 쉬다 보니 한 달 이상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어쩌다 뭘 좀 써보려고 해도 당최 몰입이 되지 않으니 점점 더 손을 놓게 되더군요. 이건 물론 일신상에 관련된 복합적 원인들이 작용한 탓이겠지만, 최근 방송된 드라마 중 제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노희경 작가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중반까지 흠잡을 데 없는 전개를 보여주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계속 반복되는 패턴의 고민과 눈물을 보여주면서 지루함의 덫을 피해가지 못하더군요. 호평 속에 종영하면서 조인성과 송혜교에게 눈부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고, 대중들의 기대치도 어느 정도는 만족시켜 주었던 모양이지만 ..
세상 누구인들 후회 없이 살아가는 인간이 있을까요. 이 문장에 굳이 의문형 부호를 붙이지 않은 이유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때로는 이제껏 후회할 일 하나 없이 살아왔다고 말하는 오만한 사람과도 마주치지만, 그들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 보면 오히려 더 후회할 일이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때 가장 후회스런 일들은 지나친 오만으로 저질렀던 실수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우리는 부족한 인간이기에 모두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 누구도 이 문제에서 예외일 수는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현재 tvN에서 방송중인 드라마 '나인'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비록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임을 알고 있지만, 원래 드라마를 비롯한 모든 예술작품은 판타지에서 비롯된 ..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과 '내 딸 서영이'가 연이어 5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대박을 기록한 후, 그 축복의 시간대에 '최고다 이순신'이라는 제목의 새 드라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그 시간대에는 달리 볼만한 공중파 드라마가 없을 뿐 아니라, KBS 주말드라마는 원래 주 시청층의 연령과 충성도가 높은지라 이번에도 별 무리없이 중박은 장담해도 되지 않을까 싶군요. 하지만 전작들이 워낙 대박을 쳤던지라, 그 바통을 이어받고도 중박에 그치면 찬사는 커녕 비웃음만 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최고다 이순신'에 임하는 배우들과 제작진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첫 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일단 남주인공이 여러모로 아주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신준호라는 캐릭터 자체도 신선하고 매력적이지만..
참 기이하게도 '아이리스2'는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보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조연들에게 시선이 끌리는 드라마입니다. 지금까지도 비슷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주인공들의 존재감이 미약하고 조연들의 존재감만 커다랗게 부각된 케이스는 없었지 않나 싶을 정도인데요. 정유건(장혁)과 지수연(이다해)의 사랑놀음은 식상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스토리의 진행에 방해만 될 뿐으로 전혀 몰입감이 없고, 지수연을 짝사랑하며 정유건의 강력한 연적으로 떠올라야 할 서현우 역할의 윤두준은 가뜩이나 연기 경력도 짧은 데다가 너무 어린 마스크 때문에 도통 캐릭터와 어울려 보이질 않습니다. 이 세 사람 다음으로 언급되었던 주요 인물이라면 북측을 대표하는 유중원(이범수)과 김연화(임수향) 정도가 되겠는데, 아직..
"우리의 경쟁작은 동시간대의 타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작인 '아이리스1'이다!" 라고 야심차게 밝혔던 출연진들의 인터뷰가 무색할 만큼, '아이리스2'의 출발은 별로 산뜻하지 못했습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산만한 전개, 초반부터 과도한 남녀 주인공의 러브라인, NSS 정예요원이라는 설정이 창피할 만큼 기본적인 총기 사용법도 모르는 배우들의 모습 등, 작정하고 꼬집어 내자면 정말 수없이 많은 헛점을 드러내고 있었거든요. '아이리스1'은 평소 액션이나 첩보물을 즐기지 않는 저같은 시청자도 몰입해서 볼 수 있을만큼 초반부터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는 작품이었는데, '아이리스2'의 초반 전개는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전작을 따라잡기는 고사하고 전작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싶을 정..
세상의 주인이 사람에서 돈으로 바뀐지는 한참 되었다지만, 드라마에서까지 너무 돈 이야기만 해대니 질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건 제목부터가 '돈의 화신' 이라 처음부터 거부감이 들었던 작품이지요. 그런데 무심결에 보게 된 예고편에 낚여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살펴보니 생각보다는 흥미로운 드라마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선뜻 1회를 시청했습니다. 일단 출발은 괜찮았어요. 돈 때문에 발생하는 원한과 음모,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주인공은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등, 흔해빠진 설정들도 적지 않았지만 의외로 느낌은 신선하더군요. 드라마 '자이언트'와 '샐러리맨 초한지'를 집필했던 작가 장영철, 정경순 부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신뢰가 갑니다. 대단한 수작(秀作)이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몰라도 최소한 껍데기뿐..
이 시대 학교의 암울한 현실을 제법 실감나게 그려냈던 드라마 '학교 2013'이 해피엔딩의 막을 내렸습니다. 약간의 작위적인 느낌은 있었지만 그쯤은 탓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훈훈하고 아름다운 결말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지만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는 얼마나 큰 삶의 힘이 될 수 있는지, 굳게 닫았던 입을 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이 드라마는 새삼 절실히 깨닫도록 해 주었군요. 그 깨달음만으로도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지니, 생각하면 눈물나도록 고마운 작품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세상이라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은 있고, 이기심으로 팽배한 세상 속에도 여전히 사랑과 우정은 존재한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또한 가르쳐 주었습니다. 메..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교체된 후, 손영목 작가의 '메이퀸'은 김순옥 작가의 '다섯 손가락'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확연한 승세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순옥 작가 특유의 자극적인 스토리로 무장한 '다섯 손가락'의 약진이 예상되던 초반과는 좀 다른 양상이죠. '메이퀸'은 촘촘한 구성과 개연성 있는 스토리뿐 아니라 각각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를 많이 등장시켜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반면, '다섯 손가락'은 의외로 단순하고 진부한 선악 대결 구도를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독한 대사들에 너무 치중한 탓인지 캐릭터의 개성조차 말살시키는 패착을 두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선역과 악역이 나뉘어 있지만, 인물들이 모두 어찌나 독하고 무섭고 이기적인지 다 비슷해 보여서 선역과 악역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예요.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