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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대리만족의 효과, 또 다른 힐링 본문

드라마를 보다

'나인' 대리만족의 효과, 또 다른 힐링

빛무리~ 2013. 3. 2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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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누구인들 후회 없이 살아가는 인간이 있을까요. 이 문장에 굳이 의문형 부호를 붙이지 않은 이유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때로는 이제껏 후회할 일 하나 없이 살아왔다고 말하는 오만한 사람과도 마주치지만, 그들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 보면 오히려 더 후회할 일이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때 가장 후회스런 일들은 지나친 오만으로 저질렀던 실수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우리는 부족한 인간이기에 모두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 누구도 이 문제에서 예외일 수는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현재 tvN에서 방송중인 드라마 '나인'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비록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임을 알고 있지만, 원래 드라마를 비롯한 모든 예술작품은 판타지에서 비롯된 것이죠. 그 판타지가 우리 마음을 어루만질 때, 우리는 기뻐하고 눈물을 흘리며 카타르시스에 젖어듭니다. 현실에서 동일한 체험을 할 수는 없어도 그 카타르시스만으로 우리의 소박한 마음은 행복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반드시 실수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돌이키고 싶은 과거의 순간들은 있을 겁니다. 혹시 내가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과거는 아주 오래 전일 수도 있고, 어쩌면 바로 10분 전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나인'의 기본 설정은 제법 복잡합니다. 일단 주인공 박선우(이진욱)에게는 집안의 철천지 원수가 있습니다. 20년 전, 박선우가 아직 18세의 소년이었을 당시,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최진철(정동환)은 음모를 꾸며 선우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병원장이었던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은 후 어머니는 정신이상에 걸렸고, 유복하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죠. 그로부터 20년 후,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알고 최진철을 향해 복수의 일념을 불태우던 선우는 느닷없이 교모세포종(뇌종양) 4기 진단을 받아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고, 지난 5년 동안 자기를 짝사랑하던 주민영(조윤희)과 죽음을 앞둔 절박한 연애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아홉 살 위인 친형 박정우(전노민)가 히말라야에서 의문스럽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여기까지는 리얼리즘인데, 이 다음부터가 판타지의 시작입니다. 박정우가 남긴 유품 중 9개의 신비한 향이 있는데, 그 향을 피우는 동안은 정확히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현재가 2012년 12월 24일 17시 36분이면, 향이 피워지는 순간 박선우는 1992년 12월 24일 17시 36분으로 돌아가는 거죠. 한 개의 긴 향이 완전히 소진되기까지는 30분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30분 동안 선우가 어떤 활약을 하는가에 따라 과거가 변화되고 미래도 변화됩니다. 생각해 보면 '백 투더 퓨처' 라든가 '터미네이터' 또는 '나비효과' 등의 외화에서 몇 차례 보았던 것과 비슷한 설정이군요. 이는 굉장히 매혹적인 동시에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자칫 과거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문제의 해결은 커녕 오히려 미래를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극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그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누구의 삶에나 간절히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있기 때문이죠. 특히 박선우에게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아홉 번의 기회가 누구보다도 절실합니다. 이 기회들을 잘만 이용하면 1992년 12월 30일에 발생할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고, 그 후 잇달아 닥쳐올 모든 불행도 막을 수 있으니까요. 박선우는 2012년 현재 부모님과 형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 있고 자신도 뇌종양에 걸리지 않은 상태이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민영과의 사랑도 6개월의 시한부가 아니라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이 소망들을 이루기 위함인데, 과연 그의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네요. 공교롭게도 20년 전에 형이 사랑하던 여자 김유진의 딸 윤시아가 현재의 주민영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불행을 예고합니다. (아, 복잡하다..ㅎㅎ)

 

그런데 바로잡고 싶은 과거는 커다란 일들 뿐만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거짓말을 해서 엄마를 서운하게 했던 한 번의 실수처럼 사소한 일조차도 선우의 마음속에는 후회로 새겨져 있었거든요. 어쩌면 고작 아홉 번의 기회뿐인데 남용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인' 4회에서 가장 훈훈하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는 바로 그 사소한 여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세 소년 박선우는 엄마와의 식사 약속을 거짓말로 깨뜨리고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는데, 민망하게도 영화관에서 엄마와 딱 마주쳤었죠. 아들의 마음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웃어 주셨지만 속으로는 서운하셨을 엄마를 위해, 38세의 박선우가 나섰습니다. '보디가드'가 한창 인기리에 상영중이던 1992년 겨울의 붐비는 영화관에서 엄마는 웬 낯선 청년과 부딪혀 안경이 망가지게 되고, 미안해하는 그 청년과 함께 안경을 고치러 갔지요. 그러는 바람에 자기를 속이고 여자친구랑 영화를 보러 온 18세 선우와는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안경점에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왠지 그 낯선 청년이 낯익고 친밀하게 느껴졌지만 당최 어디서 만났던 사람인지는 기억해 낼 수 없었죠. "우리 어디선가 만났던 적이 없나요?" 물었지만, 그 잘생긴 청년은 기분 좋게 웃으며 처음 뵙는다고 대답하네요. 안경점에서 나왔을 때 청년은 친절하게 택시를 잡아 주며 성북동까지 잘 모셔다 달라고 기사에게 부탁하는데, 집이 어디라고 말한 기억도 없건만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열어보니 막내아들 선우가 오늘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하다며 넣어 둔 목걸이 선물이 들어 있군요. 기쁨에 활짝 웃는 엄마... 그 목걸이는 20년 후까지도 엄마의 목에 소중히 걸려있게 됩니다. 미래에서 온 아들이 전해주었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채 말이죠.

 

물론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는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각종 버젼으로 리메이크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느끼는 대리만족의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비록 팍팍한 현실 속에서는 실현 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판타지이나, 최소한 그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은 꿈 같은 환상 속에서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아줄 수만 있어도 우리의 작은 소망은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도 미래에서 누군가 찾아와 희망의 메시지를 속삭여 줄지 모르죠. 상상만으로도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나인'의 시간 여행은 그래서 또 하나의 힐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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