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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도련님, 지금 계신 곳은 제가 있는 이곳보다 더 춥겠지요? 냉기 가득한 그 곳에서 저를 미워하고 계신가요? 그 어떤 모진 말로 저를 탓하시더라도, 당신의 목소리를 한 번만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언년이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정하신 좋은 혼처도 마다하시고,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저에게 다가와 붉은 꽃신을 신겨 주시며 하시던 말씀이... "나는 평생 살거다. 너랑 같이" ...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한데, 어느덧 무심한 세월은 10년을 넘겼습니다. 뜨거운 입술의 감촉도 생생한데, 이제 도련님의 시신은 흔적조차 없겠군요. 제 오라비가 불을 놓아 집을 태우고 사람들을 죽일 때, 오라비는 저를 살리려 한다 하였지만 사실은 저를 죽인 것이었습니다. 도련님이 그 불길 속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
보소 보소, 오라버니, 귀찮다 말고 날 좀 보소 핏덩이로 버려진 몸, 길바닥에 버려진 몸 사당패가 주워다가 등골뼛골 다 빼먹어 이내 나이 열일곱에 산속 물속 모두 알고 모르는 것 없지마는 마음만은 순백이네 이내 신세 모질다고 외면일랑 하지 맙소 손 잡아도 추운 세상 혼자서야 어찌 사오? 화살잡이 사냥꾼도 제 품안에 드는 새는 고이고이 품어주어 살리는 게 인정인데 길바닥에 굴렀어도 짐승보다 못하겠소? 날 좀 보소, 오라버니, 곱게 곱게 날 좀 보소 사당패 살이 십수년에 춤을 추고 노래할 제 나를 보던 남정네들 그런 눈빛은 하지 말고 지금 나를 보는 눈에 따뜻함만 더해 주소 욕심없이 나를 보는 사내 눈은 처음이오 나를 버린 아비 어미, 살았다면 그랬을까? 나에게도 오라비가 있었다면 그랬을까? 피붙이의 정이란..
저하, 세자 저하, 신(臣)을 용서하옵소서. 마땅히 일어서야 할 때를 깨닫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온 불충한 신을 용서하옵소서. 흉중(胸中)에 품으셨던 큰 뜻을 채 펼치지 못하고 한스러이 떠나실 제, 곁에서 지켜 드리지 못한 회한이 뒤늦게 이 가슴을 치나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지언정 포로로 끌려가지는 않겠다며, 일개 무장에 불과한 신이 부리던 무모한 오기를 저하께서는 탓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의 눈을 틔어 주셨습니다. 보다 큰 뜻을 위해서는 일시 치욕을 견디며 숙일 줄도 알아야 진정한 대장부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하를 따르며, 결코 짧지 않았던 오욕의 세월 속에서 신은 보았나이다. 저하의 원대한 꿈을 보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끝없는 노력을 보았고, 멀리 본국 땅에서 시름에 허덕일 백..
방영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아이리스'의 후속작 '추노'가 드디어 첫방송을 탔네요. '추노'는 달아난 노비를 쫓아가 잡는 직업을 말한다고 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천한 직업으로 구분될 듯한데 의외로 양반 출신의 추노가 꽤 있었던가 봅니다. 우선 주인공인 이대길(장혁)만 해도 내노라 하는 양반집 자제였으니까요. '추노' 첫방송이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하는데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1회에서는 그냥 준비 과정 위주로 보여준 것 같아요. 인물 소개조차도 아직 다 끝나지를 않았습니다. 이대길, 김혜원(이다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심축을 이루는 송태하(오지호)의 캐릭터가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거든요.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신 많은 분들이 시대적 배경과 실존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고 계신 듯 합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