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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1~2회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신의 선물-14일'은 3~4회에서도 복잡하고 산만한 느낌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곳곳에 크고 작은 옥에 티가 난무하며 몰입을 방해했다. 예전에 아무리 깡패 여고생이었다지만 지금은 여리여리한 모습의 방송작가인데, 젊은 남자들과 맞붙어도 크게 밀리지 않는 김수현(이보영)의 엄청난 몸싸움 실력에는 그저 실소만 나올 뿐이다. 또 약간은 본질에서 빗나간 이야기지만, 여주인공의 이름을 '김수현'이라고 지은 것은 실수였던 것 같다. 김수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신의 선물' 주인공 김수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별그대'의 청춘스타 김수현, '세결여'의 드라마 작가 김수현... 두 사람 모두 현재 열렬히 활동하고 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장혜성'이라..
'감자별' 2회까지 시청한 느낌이 매우 좋다. 개인적으로는 '하이킥' 시리즈나 그 이전의 명작들보다 출발이 훨씬 좋은 듯하다. 각각의 캐릭터 구축이 확실함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내가 김병욱표 시트콤에서 유난히 즐기는 그 뭐랄까, 아련하고 애틋한 느낌이 초반부터 여실히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스텐레스 김은 청춘남녀의 러브라인을 복잡하고 아리송하게 꼬아서 중반을 넘기도록 예측 불가하게 만들곤 하는데, 이번에는 어찌 된 셈인지 단 2회만에 두 남녀의 러브라인이 아주 또렷한 선을 그리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물론 이대로 확정이라고 볼 수야 없겠지만, 어쨌든 김병욱의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본 적 없는 독특한 전개인 것만은 확실하다. 아, 그런데 미처 감정이 무르익을 새도 없이 초고속으로 진행..
'유령'은 상당히 특이한 드라마입니다. 보통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1회에 총력을 기울이고 2회부터는 슬슬 힘을 빼는 법이죠. 그래야 첫방송에서 시청자를 사로잡기가 수월하니까요. 최근 시작된 '추적자'와 '각시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숨막힐 듯 진행이 빠르고 역동적이던 1회에 비해, 2회는 현저히 늘어지고 약간은 지루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실망하지는 않았어요. 원래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그런데 '유령'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1회는 첫방송치고 임팩트가 부족하다 싶을 만큼 평이하고 잔잔하더니만, 오히려 2회가 상상초월 대박이군요. 저는 편안히 누워서 보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벌떡 일어나 가슴을 졸이며 손에 땀을 쥐고 시청했습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이렇게까지 완벽 몰입해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다음 주 종영을 앞둔 드라마 '싸인'은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으나 대체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은 수작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신선한 소재와 잘 짜여진 구성,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잘 어우러져서 긴장을 풀거나 지루할 틈 없이 계속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연기자 박신양에게는 별로 흡족하지 않은, 아니 어쩌면 오히려 아픈 기억의 출연작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신양의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은 '파리의 연인'에서부터 '쩐의 전쟁'까지의 시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역을 맡았던 여배우 김정은과 박진희도 인기를 얻기는 했으나 박신양의 막강한 존재감에 비한다면 미약한 수준이었지요. 한창 물이 올랐던 그 시절에는 "애기야, 가자!"를 비..
'시크릿 가든'의 코믹한 김비서로 인기몰이를 했던 김성오가 새로 시작된 대작 '마이더스'에서 고정 배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싸인'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길래 깜짝 놀랐지요. 더욱 놀란 것은 출연 분량이 지극히 짧은 카메오인데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이 주연급 이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김성오가 '싸인'에서 맡은 배역은 오래 전부터 여성들을 상대로 묻지마살인을 반복해 온 싸이코패스입니다. 알고 보니 고다경(김아중)의 동생 다희도 그의 손에 희생되었군요. 동생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한 시신을 보고, 다경은 직감적으로 같은 범인의 소행임을 알아차립니다. 최근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된 남자(김성오)와 1:1로 마주한 고다경은, 5년 전 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한 여고생을 아느냐고..
한보배는 1994년생으로 올해 18세가 된 소녀 배우입니다. 2002년에 영화 '복수는 나의 것'으로 데뷔했군요. 요즘 아역배우들은 모두 연기를 너무 잘하기 때문에 그 중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쉽지 않은 일인데, 한보배는 제 머릿속에 매우 독특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006년에 김상경과 함께 출연했던 영화 '조용한 세상'에서였습니다. 사진작가 류정호(김상경)는 타인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초감각적 능력을 지녔으나, 그 때문에 학창시절 엄청난 불행을 겪게 된 후, 줄곧 세상에 마음을 닫은 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우연처럼 11세의 소녀 수연(한보배)을 위탁 보호하게 되면서, 그녀의 맑은 심성에 감화되어 차츰 다시 마음을 열게 되지요. 나중에 어린 소녀들만을 노리는 연쇄살인범에게 수연이 납치되어 ..
박신양은 원래 연기를 참 잘 하는 배우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신인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1996년작 드라마 '사과꽃 향기'에서 저는 그를 처음 보았습니다. 무려 15년 전이군요. 김혜수와 김승우가 주연을 맡았고, 김혜수의 예전 남자친구 역할은 배우 윤동환이었습니다. 그럼 박신양은 뭐였냐구요? 마치 동성 친구처럼 김혜수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아주 성격 좋은 베스트프렌드 역할이었지요. 메인 러브스토리는 오히려 좀 어둡고 칙칙하게 느껴졌는데, 이 친구만 등장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밝아졌습니다. 밝고 명랑하고 사려깊은 친구 역할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는지, 연기가 아닌 실제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그 후에도 박신양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여주며 배우로서의 탄탄한 입지를 쌓아갔습니다. 그랬는데 ..
김정은의 드라마 복귀와 만만치 않은 명품 조연들의 대거 출연으로 초반부터 관심을 갖고 시청하던 '나는 전설이다'가 예상보다 너무 안일한 전개로 기대에 못 미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안정된 연기력과 분위기 있는 비주얼은 역시 만족스러운 수준이지만, 기본 스토리의 진행이 자연스럽게 받쳐 주지 않는 드라마를 연기자들의 활약만으로 이끌어 나가기는 어려운 법이지요. 현재 '전설이다'의 스토리는 얼핏 보기에 잘 짜여진 것 같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적어도 생뚱맞지는 않을 만큼, 각자 끌어다 붙인 이유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필연성을 확보하기에는 그 이유들이라는 것이 너무 대수롭지 않고 단순하기 때문에, 얼개가 탄탄하게 짜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시청한 후에는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이..
'혼' 2회는 어설프긴 했지만, 내게는 다행히도 무난했다. 1회에서 받은 충격이 만만치 않았기에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2회를 시청했는데, 이번에는 어두운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내용도 거의 없었고 끔찍한 장면도 별로 없었다. 이렇게 되면 공포물로서의 가치가 많이 손상되기는 하겠으나, 내가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목적은 공포를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서진과 김갑수, 이진을 비롯한 출연진들의 연기를 보기 위함이므로, 스토리 진행과 구성 면에서 상당히 어설펐던 '혼' 2회에 나는 그런대로 만족했다. 어떤 점에서 구성이 어설펐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분의 포스팅에서 충분히 언급이 되었으므로 내가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더구나 내가 오늘 하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