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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 박신양,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해도...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싸인

'싸인' 박신양,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해도...

빛무리~ 2011. 3. 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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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종영을 앞둔 드라마 '싸인'은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으나 대체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은 수작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신선한 소재와 잘 짜여진 구성,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잘 어우러져서 긴장을 풀거나 지루할 틈 없이 계속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연기자 박신양에게는 별로 흡족하지 않은, 아니 어쩌면 오히려 아픈 기억의 출연작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신양의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은 '파리의 연인'에서부터 '쩐의 전쟁'까지의 시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역을 맡았던 여배우 김정은과 박진희도 인기를 얻기는 했으나 박신양의 막강한 존재감에 비한다면 미약한 수준이었지요. 한창 물이 올랐던 그 시절에는 "애기야, 가자!"를 비롯해 박신양의 유행어와 성대모사가 난무했고, 그의 가벼운 손짓이나 한 마디 목소리에서도 카리스마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쩐의 전쟁' 이후 출연료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골치아픈 일에 시달리면서 박신양의 번뜩이던 전성기는 조금씩 날이 무디어져 갔습니다.

'바람의 화원'에서도 아직 건재한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나이 어린 문근영의 존재감에 밀리는 느낌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컴백한 '싸인'에서도 초반에는 카리스마를 발산하는가 싶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출연자들의 기운에 밀리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종반으로 치닫는 현재, 박신양이 맡은 윤지훈보다는 상대역인 고다경(김아중)이 더욱 빛나고 있으며, 회마다 주목받는 인물은 주인공이 아니라 섬뜩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연쇄살인범들입니다.


사실 초반에도 박신양 연기에 대한 평가는 호평 일색이었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극과 극으로 갈렸습니다. 강렬한 카리스마는 여전했으나, 언제나 똑같아 보이는 버럭 연기에 싫증을 내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던 탓입니다. 사실은 저도 그랬습니다. 몇 년 전에는 그 버럭이 신선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박신양은 원래 모든 캐릭터를 '자기화'해서 연기하는 배우이니 그의 스타일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머리로 인정하는 거야 어렵지 않으나, 보면서 저절로 식상하다고 느껴지는 데는 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초반에 부각되던 주인공은 그의 눈앞에 닥친 사건들이 좀처럼 시원스레 해결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흘러가자, 그런 상황 만큼이나 답답한 캐릭터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주인공은 아무리 정의를 외쳐봐야 힘이 없고 열심히 노력해봐야 계속 좌절하는데, 악역들은 그가 쳐 놓은 올가미를 유유히 빠져 나가며 점점 더 기세등등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의 시선은 패배자보다는 승리자에게 향하는 것이 순리이니, 점점 더 주목받게 되는 것은 자꾸 실패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승승장구하는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들입니다.


게다가 드라마에서의 사이코패스는 그 특성이 뚜렷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표현하기가 비교적 쉬울 수도 있으니, 연기자로서 존재감을 어필하기에는 가장 좋은 역할입니다. 벌써 '싸인'에는 연쇄살인범이 무려 5명이나 등장했습니다. 긴박감 넘치게 표현되어서 전혀 지루한 줄은 몰랐는데, 하나하나 세어보니 너무 많이 등장한 감은 있군요..;; 그런데 5명의 연기자가 모두 훌륭한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일단 서윤형 살인 사건의 범인 강서연 역의 황선희는 생짜 신인으로서 이 드라마를 통해 완벽히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데 성공했지요.

두번째로는 사랑에 실패한 후 그 여자를 살해하고, 그러다가 살인에 재미를 붙여 트럭 연쇄살인범이 되었던 안수현 역의 최재환이 있었습니다. 세번째로는 자신의 기업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직원들을 연쇄 독살했던 정차영 역의 김정태입니다. 네번째는 요즘 신들린 연기로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는 망치 연쇄살인범 이호진 역의 김성오입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이호진의 공범으로서 그가 검거되어 있는 동안 살인 게임을 지속해 왔던 우재원 역의 오현철입니다. 18회에서 갑자기 등장한 오현철은 아직도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역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귀여운 얼굴에 슬며시 살인범의 미소를 띠는 바람에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하여튼 이 5명의 연쇄살인범들은 짧은 출연 분량에도 모두 폭풍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그런데 지금껏 주인공 윤지훈이 제대로 승리한 상대는 안수현 밖에 없군요. 고다경을 구하기 위해 승용차를 몰고 돌진하여 안수현의 트럭 옆구리를 들이받던 장면은 좀 멋졌습니다. 그러나 강서연에게는 아직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으며, 공범 우재원이 모두 뒤집어쓴 덕분에 살인게임의 창시자 이호진은 풀려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겨우 2회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패배의 연속입니다.

무엇보다 정차영 사건 때에 윤지훈은 죽은 스승 정병도(송재호)의 명예를 위해 치명적인 실수를 했습니다. 안티몬 중독사임을 입증할 수 있든 없든 자기의 소견을 올바르게 진술했어야 하는데, 자연사라고 위증을 했던 것입니다. 단 한 번 소신을 꺾었을 뿐이지만 결과는 처참했지요. 자기 약혼녀와 뱃속의 아이를 죽인 정차영이 아무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풀려나자 이철원은 정차영에게 독을 먹이고 자기도 함께 먹었으니, 윤지훈의 위증으로 인해 두 사람의 죽음이 초래된 것입니다. 승리하지 못한다면 정의감이라도 유지했어야 하는데 중간에 어이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의 캐릭터는 또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에 비해 언제나 솔직당당하고 한 번도 소신을 꺾은 적 없는 여주인공 고다경의 캐릭터는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빛이 나고 있습니다.


업무적인 면에서 실패를 거듭하니 멜로적인 면에서나마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는데, 윤지훈은 그렇지도 못합니다. 그의 러브라인이 고다경인 것 같기는 한데, 이 커플(?)은 도무지 발전 가능성조차 보이질 않는군요. 오히려 고다경은 과감한 순수성으로 윤지훈에 대한 호감을 틈틈이 표현하지만, 윤지훈은 감정이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고다경이 위험에 처했을 때 "제발 살아만 있어라!" 하고 절규하며 구하러 간 적은 있지만, 그거야 단순한 동료 사이에도 그럴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동생을 살릴 수 있는 기회마저 포기하고 증거를 확보한 고다경을 안고 위로해 준 적은 있으나, 그 또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에 비해 최이한(정겨운) 형사와 정우진(엄지원) 검사의 러브라인은 수시로 가슴콩닥콩닥한 장면을 선보이며 일사천리로 진행중입니다. 시원스레 사랑을 표현하는 최이한의 솔직한 모습은 윤지훈의 답답한 태도와 비교되어 더욱 더 멋있어 보입니다. 초반의 정우진은 아직도 옛 애인 윤지훈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조금씩 최이한에게 이끌리더니 이젠 결국 마음을 완전히 열고 사랑을 받아들였군요. 이렇게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도 한쪽에서는 달달한 멜로가 진행중인데, 주인공 윤지훈에게는 멜로마저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윤지훈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겠지만, 이제 와서 그 승리가 얼마나 임팩트가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만약에 강서연이 자기 아버지를 몰락시키기 위해서 연쇄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진다면, 최후에 주목받는 영웅은 윤지훈이 아니라 생뚱맞게 강서연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목적이 무엇이든간에 연쇄살인을 그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으나, 최고의 검은 권력자 강중혁 의원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딸에 의해 파멸하는 모습이란 시청자들에게 만만찮은 카타르시스로 다가올 테니까요.

게다가 이호진의 살인게임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죽을 사람은 벌써 거의 다 죽었고, 이제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최후의 희생양으로 지목된 고다경 뿐이에요. 당연히 그녀는 죽지 않고 살아나겠지만, 그렇다고 이 게임을 선(善)의 승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비록 모든 미션을 클리어하지는 못했어도 90% 가량을 성공한, 살인마 이호진의 승리라고 보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윤지훈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해도, 벌써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에 승리자의 밥상에 먹을 음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형국입니다. 차라리 세간에 떠도는 스포일러대로 윤지훈이 살해당하고 그의 죽음을 통해 고다경이 진실을 밝혀내는 방식으로 마무리된다면, 그것이 박신양에게는 최고의 엔딩이라 여겨집니다. 이제껏 미미했던 존재감을 비극적 희생으로 만회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박신양은 맡은 캐릭터도 난국에 처했고, 일각에서 제기된 식상한 연기 논란에 시달렸으며, 카메오를 비롯한 보조 출연자들의 존재감에 밀려 매력을 어필하지 못했습니다. '싸인'이라는 드라마 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과는 별개로, 박신양은 이번 작품을 통해 별로 얻은 것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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