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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하이킥3 - 짧은 다리의 역습'의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얼마나 더 독해지려고 초반부터 이렇게 심한 설정들이 등장하는지, 나중을 생각하면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설 지경입니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김병욱 PD의 칼날은 더욱 날카롭게 벼려진 것 같습니다. 사실 '지붕뚫고 하이킥'도 처음부터 만만치 않게 독한 작품이었지요. 어린 자매는 어느 날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모질게 내던져졌고, 아홉살배기 어린 신애는 전쟁고아처럼 비참한 몰골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걸어다녔습니다. 언니 세경의 손을 놓쳐서 잠시 떨어지게 되었을 때, 계속 울면서도 거리에서 눈에 띄는 음식만 있으면 몽땅 주워먹고 다니던 신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남의 집 대문 앞에 배달되어 놓여 있던 1000ml 짜리 우유..
봉영규(정보석)는 지적 장애인입니다. 남들이 바보라고 놀리면, 그는 바보가 아주 좋은 것이라면서 싱글벙글 웃습니다. 그의 나이는 어느 새 50을 훌쩍 넘겼으니 지천명(知天命)이라 할 것인데, 따지고 보면 하늘의 뜻을 그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며, 누구에게도 앙심을 먹지 않습니다. 햇님은 환하게 세상을 비추어 주니 고맙고, 새싹은 물만 먹고도 무럭무럭 자라서 예쁜 꽃을 피워 주니 고맙습니다. 온통 눈 마주치는 것마다 예쁜 것, 고마운 것 투성이입니다. 그는 어머니(윤여정)를 좋아하고 딸 봉우리(황정음)를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있어서 봉영규는 행복합니다. 참, 깜박 잊을 뻔했는데 좋은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바보라..
정말 아주 오랜만에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았습니다. 앤솔커플(앤디와 솔비) 시절에 아주 잠깐 보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게 벌써 3년 전이네요. 그 무렵 앤솔커플 이외에 알신커플(알렉스와 신애), 개미커플(크라운제이와 서인영), 쌍추커플(김현중과 황보) 등이 인기를 끌었지요. 그 이후 너무 어린 아이돌 스타 위주로 컨셉이 바뀌면서 저는 '우결'을 안 보기 시작했습니다. 스물 한두살의 어린 나이에 가상 결혼이라는 컨셉 자체가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더군요. 그러다가 지난 토요일, 2011년 4월 9일에 제가 '우결' 쪽으로 채널을 고정한 이유는 오직 김원준과 박소현 커플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우결' 출연이 확정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었거든요. 급격한 관심이 끌림과 동시에, 맨 처음 들..
'지붕뚫고 하이킥'이 마지막회 방송만을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 어느 정도씩 성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세경과 신애 자매의 영향으로 이순재옹을 비롯한 그 가족들의 변화가 두드려졌지요. 그러나 '지붕킥'이라는 시트콤의 가공할 위력에도 불구하고, 스쳐지나가는 단역들까지 성장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합니다. 아주 잠깐씩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역겨움을 참기 힘들었던, 지훈(최다니엘)의 후배 의사인 바로 저 인물입니다. 저 사람 외에 또 한 명의 동료 의사가 있었는데, 워낙 단역이다 보니 그들의 이름이나 행동을 구분할 수는 없지만, 하는 행동의 수준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한 명은 민선생, 한 명은 안선생이라고 불렀던 ..
'지붕뚫고 하이킥' 122회를 보고 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였습니다.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의 불교용어지요. 모든 것이 무상함을 나타내는 말인데, 왠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살짝 저려오는 이 단어는 김병욱표 시트콤의 결말에 참 잘 어울리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1. 세경 - 가녀린 그녀, 당차게 떠날 것을 결심하다 그녀의 아버지가 편지를 보내오신 나라는 남태평양의 어느 섬이었습니다. 부유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작고 가난한 나라였나봐요. 아빠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오히려 이곳에서의 생활보다 더욱 쪼들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정상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을지, 학교에 갈 수 있을지는 더구나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경은 꼬박 이..
'지붕뚫고 하이킥' 100회에서 신애가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는 누구나 그렇죠. 자기가 처한 입장이나 상황을 뚜렷이 깨닫지 못한 채,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현경의 생일에 온 집안 식구들이 합십하여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줄 거라는 행복한 기대를 하는 신애의 모습은 어린 아이기 때문에 안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세경은 집안 식구들에게 드러내놓고 생일이라고 자랑할 수도 없는 자신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동생이 꿈에 젖어 있는 동안, 언니는 항상 각박한 현실과 싸워야 했으니까요. 세경은 신애를 데리고 나가 떡볶이와 자장면을 사주고, 예쁜 머리핀도 사주고, 케잌에 촛불도 켜서 작은 생일파티를 마련해 주지만, 언니와 단둘이 보내는 생일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지붕뚫고 하이킥'은 이제 종영까지 2개월을 채 못 남겨둔 시점에서,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부딪치며 성장하고 화합해 나아갈 것인지, 94회에서 그 전초전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의 시선에는 그 충돌과 화합의 과정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보여지더군요. 1. 객식구들의 이념적(?) 충돌 - 세경과 광수, 인나 메인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 가족 간의 충돌보다 먼저 몸풀기 게임처럼 객식구들의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한 봉지에 100만원 가량이나 하는 르왁커피를 둘러싼 세경과 광수, 인나의 한판 대결이었지요. 사실 이들은 앞으로 같이 살게 될 운명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굳이 화합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고 그냥 충돌 과정만 표현했는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만만치 않은 대립각은 앞으로 이 가족이 겪어 나..
옛날 옛날에... 아니, 그렇게 옛날은 아닌지도 모르겠는데... 해리라는 어린 공주님이 살았어요. 공주라고 하니까 아주 예쁘고 사랑도 듬뿍 받았을 것 같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리 공주는 그렇지를 못했어요. 해리 공주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큰 회사의 사장님과 부사장님이에요. 임금님처럼 돈이 많아요. 그래서 언제나 해리 공주는 예쁜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냥 그것뿐이었어요. 해리네 나라보다 더 가난한 이웃나라 왕자님과 공주님은 모두 가족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노는데, 그 커다란 궁궐같은 집안에서 해리 공주는 늘 혼자예요.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아빠와 엄마는 해리를 혼자 놔두고 둘이서만 저녁을 먹으러 나갔어요. 할아버지도, 삼촌도 모두 여자친구가 있어서 자기들만 행복했을..
'지붕뚫고 하이킥' 82회는 언제나처럼 두 갈래의 에피소드를 보여주었지만, 묘하게도 그 안에서 보여준 감정은 하나였습니다. 바로 '질투'였지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멋지기만 한 그 남자, 신애의 첫사랑인 '발냄새 왕자님' 줄리엔 아저씨가 그만 악동 해리의 눈에 제대로 꽂히고 말았습니다. 하교길에 우연히 만난 신애에게 목마를 태워주는 줄리엔을 보자 해리는 자기도 목마를 타고 싶은 욕망에 불타게 되지요. 집에 와서 자기 아버지 정보석에게 목마를 시도해 보지만 허약한 보석은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어쩌면 보석이 너끈히 해리를 어깨 위에 태우고 일어섰더라도 해리의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이미 키 크고 건장하고 멋진 서양 출신 우등 말(馬) 줄리엔을 목격한 이후였는걸요. 자기가 시험에서 100점..
우리 아빠는요, 매일 밤 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요. 백설공주보다도, 오즈의 마법사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어요. 나는 깊은 산 속, 깊은 어둠 속에 누워서 아빠의 이야기를 듣다가 스스르 잠이 들곤 했지요. 텔레비젼도 없고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지만, 나는 조금도 심심하지 않았어요. 아빠와 함께 있으면 나의 작은 세상은 온통 재미있는 일 투성이였거든요. 그 이야기들이 모이면 아빠는 나에게 동화책을 만들어 주셨어요. 아빠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끝이 없었고, 아빠가 만들어 준 동화책 속에서 나는 행복했는데... 이제 아빠는 내 곁에 없네요. 나는 그리워서, 너무 그리워서 해리의 동화책을 펼쳐 보았지만 그 속에도 아빠는 없었어요. 자기 물건에 손을 댔다고 또 나를 구박하는 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