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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제대로 맘 먹고 나온 것이 확실하다. 어쩐지 확 달라 보이는 외모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이마에 길게 흘러내렸던 앞머리를 짧게 쳐올리니 순정만화틱한 미소년의 얼굴은 70% 가량이나 사라져 버렸다. 훨씬 투박하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변한 얼굴에 결연한 눈빛과 리얼한 흉터 분장을 더하니, 얼마 전까지 '일말의 순정'에서 보았던 샤방한 꽃소년 준영이가 바로 이 녀석이라고는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중견 배우도 쉽지 않을 감정 연기를 제법 그럴싸하게, 능청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게 표현해낸다. 이원근... 이제 그 이름이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앞으로는 작품 자체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최소한 1~2회 정도는 시청하게 될 것 같다. 콩나물이 크는 것처럼 쑥쑥 성장해 가..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과 '내 딸 서영이'가 연이어 5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대박을 기록한 후, 그 축복의 시간대에 '최고다 이순신'이라는 제목의 새 드라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그 시간대에는 달리 볼만한 공중파 드라마가 없을 뿐 아니라, KBS 주말드라마는 원래 주 시청층의 연령과 충성도가 높은지라 이번에도 별 무리없이 중박은 장담해도 되지 않을까 싶군요. 하지만 전작들이 워낙 대박을 쳤던지라, 그 바통을 이어받고도 중박에 그치면 찬사는 커녕 비웃음만 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최고다 이순신'에 임하는 배우들과 제작진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첫 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일단 남주인공이 여러모로 아주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신준호라는 캐릭터 자체도 신선하고 매력적이지만..
영화에서는 감독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드라마에서는 작가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영화 시나리오는 연출자인 감독이 직접 쓰는 경우도 많지만, 드라마 대본은 전문 드라마 작가가 아닌 이상 쓰기 어렵죠. 영화에서의 '스토리'가 영상미나 배경음악 등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드라마에서는 '스토리'가 작품 전체의 80% 이상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스토리의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며 예외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장르의 특성이 그러한지라 저는 드라마를 선택할 때 연출자보다는 작가의 이름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허준'과 '대장금'의 눈부신 대성공에 힘입어, 1944년생의 노익장 이병훈 감독은 이 ..
새로 시작하는 월화드라마 중 일찌감치 '사랑비'를 정해 놓고 기다리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남주인공 '서인하'의 캐릭터였습니다. 여성 시청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멜로드라마의 특성상 남주인공의 캐릭터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고, 또래 남자 배우들 중 최강으로 손꼽히는 장근석의 안정적인 연기력이 더해진다면 진짜 멋있을 듯 싶었거든요. 게다가 상대역인 윤아는 외모에서부터 순정만화 여주인공의 모습 그대로이니, 저는 오랜만에 복고풍 정통 멜로에 푹 젖어들 생각을 하며 벌써부터 약간 설레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이런 종류의 감성 멜로 드라마를 볼 수 없었기에, 2006년 '봄의 왈츠' 이후 6년만에 재결합한 오수연 작가와 윤석호 PD가 다시 한 번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기를 소망하고 있었지요. 일단 미적(美的) 감각..
요 며칠간 느닷없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1O84'에 푹 빠져서, 놀랍게도 TV와 컴퓨터를 거의 꺼 놓은 채로 지냈습니다. 알○○ 적립금을 이용해서 1,2,3권 세트를 한꺼번에 구입해 놓은 것이 벌써 지난 여름인데, 그 두께를 보니 도통 엄두가 나질 않는 겁니다. 그리고 초반에는 그다지 끌리는 부분을 발견하지 못해서 몇 페이지 읽다가 먼지 쌓이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인데, 요즘 고질병인 비염 치료를 위해 꽤 먼 곳에 있는 병원을 오락가락하다보니 자연스레 차 안에서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그러다가 제1권의 중간부터 정신없이 빠져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십여년쯤 전에 '하루키 중독자'를 자칭하고 다닌 사람 중 한 명이 저였더군요. '태엽 감는 새' 이후로는 뭔가 예전같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고,..
홍자매와 이승기의 이름 때문이었을까요? 처음부터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시청했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였습니다. 솔직히 2회까지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는데, 아무런 기대 없이 시청했던 3회에서는 의외로 감동을 느끼며 눈시울까지 젖어 오더군요. 역시 무엇에든 너무 큰 기대를 걸면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했습니다. 1회부터 2회까지 구미호 신민아가 했던 대사 중에 압도적으로 많았던 말은 "나는 구미호니까!" 였습니다. 늘 함께 다니면서도 차대웅(이승기)이 좀처럼 자기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니까 명백히 깨우쳐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재주 하나를 드러낼 때마다 과시하듯이 "나는 구미호니까!" 라고 되풀이하는 구미호는 참 매력없게 느껴졌어요. 이 드라마에서 표현하는 구미호가 원래..
'지붕뚫고 하이킥' 35회에 특별출연한 정일우를 보았습니다. 황정음의 첫사랑이며, 정음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반려견 '히릿'의 옛주인으로 말이지요. 새 봄처럼 젊은 나이에, 눈물겹도록 화창한 날에 아련한 추억만을 남기고 불치병으로 스러져간 첫사랑... 그야말로 더 이상 식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식상함의 전형이지만, 아무리 뻔한 스토리라도 순정만화는 영원히 소녀들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우유빛깔 정일우'가 표현해내는 첫사랑의 이미지는 자못 매혹적이었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정일우는 삽시간에 톱스타의 위치로 올라서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저도 그 때 담임선생님 서민정을 향해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던 학교짱 윤호를 무척이나 사랑하던 누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 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