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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 이원근의 놀라운 연기, 아역의 저주 발생할까? 본문

드라마를 보다

'열애' 이원근의 놀라운 연기, 아역의 저주 발생할까?

빛무리~ 2013. 10. 6.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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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맘 먹고 나온 것이 확실하다. 어쩐지 확 달라 보이는 외모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이마에 길게 흘러내렸던 앞머리를 짧게 쳐올리니 순정만화틱한 미소년의 얼굴은 70% 가량이나 사라져 버렸다. 훨씬 투박하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변한 얼굴에 결연한 눈빛과 리얼한 흉터 분장을 더하니, 얼마 전까지 '일말의 순정'에서 보았던 샤방한 꽃소년 준영이가 바로 이 녀석이라고는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중견 배우도 쉽지 않을 감정 연기를 제법 그럴싸하게, 능청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게 표현해낸다. 이원근... 이제 그 이름이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앞으로는 작품 자체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최소한 1~2회 정도는 시청하게 될 것 같다. 콩나물이 크는 것처럼 쑥쑥 성장해 가는 신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더없이 흐뭇하고도 재미있는 일이니까.

 

 

이원근은 '해를 품은 달'에서 왕의 호위무사 '운'의 아역으로 데뷔했다고 한다. 연기 경험도 없고 오디션도 처음이라 전혀 기대를 안 했는데 덜컥 붙는 바람에 오히려 당황했었다고 한다. 설상가상 드라마는 사상 초유의 대박을 쳤고, 이원근은 여진구, 이민호, 임시완과 함께 '꽃도령 4인방'으로 인기를 끌며 팬카페까지 생겼으니, 첫 작품에 그 정도면 흔치 않은 행운을 거머쥐었던 셈이다. 하지만 다른 세 명보다 비중이 현격히 적었던 탓인지, 그 이후의 행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드라마 '유령'에서는 홍콩 해커 집단의 일원으로 등장하여 지능형 범죄자의 섬뜩한 면보를 보여주었으나, 역시 분량이 너무 적어서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트콤 '일말의 순정'에서는 모처럼 큰 비중의 역할이 주어졌지만 17세의 고등학생 캐릭터라 마음껏 연기 욕심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열애'의 강무열은 좀 달랐다.

 

물론 여기서도 이원근의 포지션은 아역이며 고등학생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교생이라도 하루종일 장난이나 치며 뒤늦은 사춘기를 앓던 '일말'의 최준영과는 차원이 다르다. 강무열은 불화한 가정 속에서, 자기를 아들로 인정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아버지 강문도(전광렬) 슬하에서 본의 아니게 눈치꾸러기로 자라났다. 집안에 아무리 돈이 넘쳐나도 무열에겐 기쁨이 아니었고, 식구들이 많았지만 전부 자기 생각에만 골몰할 뿐 어린 무열을 진심으로 챙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 성장한 강무열은 어둡고 시크한 성격이 되었으며, 어린 나이에 벌써 허무주의자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런 강무열에게 어느 날 갑자기 폭풍처럼 많은 일들이 벌어지며 변화가 시작된다.

 

 

할아버지 양태신(주현)과 함께 자장면을 먹으며 나눈 대화를 통해 강무열은 자신이 깊이 사랑받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때마침 그는 아름다운 연상의 여인 한유림(서현)과 첫사랑을 시작하고 있었다. 춥고 외롭던 삶이 순식간에 따스한 사랑으로 가득찼다. 할아버지의 자애로운 사랑과 한유림의 감미로운 사랑을 받으며 강무열은 인생 최고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좋은 날은 길지 않았다. 얼떨결에 대학생이라 속이고 유림을 만나던 무열은 거짓말이 탄로나면서 그녀에게 버림받을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건강이 좋지 않던 할아버지는 아버지 강문도와 격렬한 말다툼 끝에 쓰러져 그대로 죽고 말았다. 얄궂게도 강무열은 현장에서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엄마를 미워하고 자기를 의심하며 친자 검사까지 의뢰했던 아버지를 강무열은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장면까지 목격하고 말았다. 아버지를 보는 무열의 눈빛에는 솟구치는 증오가 가득하다. 그러나 증오보다 강한 것은 괴로움이다. 아무리 미워도 십여 년 동안이나 아버지라고 불러 온 사람이니까 (친자 관계는 아직 불명확), 사랑하며 존경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무열은 괴롭다. 이 시점에서 강무열이 느끼는 감정은 매우 복합적이다.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안타까움, 한유림을 향한 사랑과 애틋함... 이 감정들을 시의적절히 표현하려면 아주 깊고도 섬세한 감정 연기가 필요하다. 좋은 캐릭터지만, 경험이 일천한 신인에게는 벅찬 미션이었다.

 

하지만 이원근은 엄청난 집중력과 감정 몰입으로 강무열의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생생히 살려냈다. 숨을 거둔 할아버지의 병상에서는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아버지와 대치할 때는 한없이 밉지만 그저 미워할 수만도 없는 괴로운 심경을... 싸늘한 유림에게 다가가 용서를 청할 때는 애틋한 사랑과 그녀를 잃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을... 이원근은 눈빛과 표정 속에 정확히 담아내고 있었다. 발음 발성도 좋고 대사 처리도 나무랄 데 없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신인답지 않게 능란하고 원숙한 표정 연기였다. 이건 대박이다. 철저한 준비와 무수한 연습을 거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비록 아역이지만 연기 인생에서는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이원근은 알아차렸던 것일까?

 

 

이쯤에서 염려되는 것은 아역의 저주다. 강무열의 성인 배역을 맡은 성훈의 연기력이 아직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라서 몹시 불안해지는 것이다. 임성한 작가의 낙점을 받아 '신기생뎐'의 히어로가 되었지만, 성훈의 앞길에는 좀처럼 탄탄대로가 열리지 않았다. 외모는 거의 완벽하나, 좀처럼 늘지 않는 연기력 때문 아니었을까? 같은 작품의 히로인을 맡았던 임수향은 '아이리스2'의 여전사 역할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으나 연기 변신에는 제법 훌륭히 성공한 셈이었다. 그러나 성훈은 '신기생뎐' 이후의 활동이 거의 기억에 남지 않았다. '신의'에서 천음자라는 독특한 역을 맡았으나 그저 어색함에 민망할 뿐이었고, 가족드라마에도 작은 역으로 출연했던 모양인데 나는 안 봐서 모르겠다.

 

만일 그 동안 각고의 노력이 없었다면, 성훈의 연기력은 아직도 뻣뻣한 수준에 머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신기생뎐'에는 아역이 없어서 비교할 대상도 없었으니 좀 뻣뻣해도 그런가보다 하면서 천천히 배역에 젖어들도록 기다려 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아역 이원근이 출중한 연기력으로 벌써 시청자의 마음속에 '강무열'이라는 캐릭터의 그림을 생생히 그려놓은 까닭이다. 이원근이 표현하는 '강무열'에 몰입해 버린 시청자들은 바통을 이어받은 성훈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 엄청난 분노를 쏟아낼 것이다. '해품달'의 여주인공이 아역에서 성인으로 교체되었을 때, 그 황홀하게 고조된 몰입이 와장창 깨어지던 순간의 분노를 체험해 본 시청자라면 어떻게 두렵지 않겠는가?

 

 

부디 '열애'에서는 그 끔찍한 아역의 저주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소망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죽은 장인의 회사와 전재산을 가로채려던 강문도의 야욕은 양태신의 진짜 유언장을 들고 나타난 한성복(강신일) 때문에 암초에 부딪히고, 그 찢어진 유언장을 발견한 강무열은 할아버지가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할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강무열은 아버지와 대적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것이다.

 

어느 인터뷰 기사를 보니 이원근은 평소 성격이 조용한 편이라서, 밝고 통통 튀는 역할보다는 웃음기가 사라진 역할을 맡아 내면에 잠재된 모습을 꺼내보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강무열이야말로 그가 꼭 바라던 역할인데, 이제 곧 퇴장해야 한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창 물 오른 그의 연기를 감상하며 푹 빠져 있던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그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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