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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보자면 많이 허술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악역 조관웅(이성재)의 너무 쉬운 몰락과 최후는 실소를 금할 수 없을 만큼 허탈했다죠. 이제껏 그 놈 하나 때문에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모진 고통을 받아 왔는데, 막상 이순신(유동근)이 좌수영 군사들을 이끌고 백년객관으로 들이닥치자 속수무책, 저항다운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 바쁘더군요. 물 건너 일본에서 왔노라며 마치 끝판왕이라도 되는 양 온갖 폼을 다 잡던 궁본 사람들, 재령과 가케시마 노조도 별 수 없었습니다. 분노한 이순신의 한 방에 강아지처럼 겁 먹고 짐 싸서 다시 물 건너 도망쳐 버렸죠. 이렇게 쉬운 거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상처입고 피 흘리면서 그들의 온갖 악행을 견디어 왔던 건지...
초반 1~2회의 애절함에 너무도 푹 빠졌던 나머지 3회부터는 오히려 적응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인 나라를 구하러 나서는 이순신(유동근)의 모습이 비칠 때면 이보다 더 장중한 드라마는 없는 것 같다가도, 주인공 최강치(이승기)와 그 주변 인물들이 나오면 갑자기 무게감이 절반으로 줄면서 아무리 비감한 장면이 나와도 별로 슬프지 않았거든요. 코믹한 와중에 진지함인지, 진지한 와중에 코믹함인지, 제가 보기에는 두 가지 분위기가 적절히 어우러지지 못하고 제각각 따로 노는지라, 좀처럼 몰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전개 과정 중에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작위적인 설정들까지 보이면서 제 마음은 조금씩 멀어져 갔었는데, 이를테면 박무솔(엄효섭)이 최강치를 대신하여 조관웅 수하의 칼에 찔려 죽..
인간의 딸을 사랑하여 인간이 되고자 했던 신수(神獸) 구월령(최진혁)의 간절한 소망은 '구가의 서' 제2회에서 꺾이고 말았습니다. 전설의 여주인공으로는 너무도 현실적이었던 윤서화(이연희)의 사랑은 구월령의 정체를 알게 되자마자 무너져 내렸고, 그녀의 배신은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죠. 만일 윤서화의 뱃속에 잉태된 생명이 없었다면, 구월령이 담평준(조성하)의 칼에 찔리는 그 순간 모든 희망은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구월령은 '구가의 서'를 얻어 인간이 되기 위해 꼬박 90일 동안이나 무사히 금기를 지켜 왔지만, 경솔하게도 혼자 나물을 캐러 나갔던 윤서화는 관군에게 붙잡혀 버렸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금기를 깨지 않을 수 없었죠. 꿈을 이룰 수 있는 100일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이었지만, 처참히 끌려..
홍자매의 작품치고 이렇게 몰입도가 떨어지는 드라마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의 다른 작품들은 비록 시청률이 최고는 아니었더라도 매번 열광적인 매니아층이 형성되면서 화제몰이를 했고, 주요 캐릭터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비교적 높은 편이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된 셈인지 드라마가 중반에 이르도록 매니아층이 형성될 기미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차가운 무관심 속에 한자릿수 시청률의 굴욕을 맛보고 있습니다. 가끔씩 뜨는 관련기사조차도 요즘 어딜가나 핫이슈인 '수지'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주인공인 공유나 이민정에 관한 내용은 찾아보기도 어렵네요. 경쟁작인 '추적자'와 '빛과 그림자'가 워낙 탄탄한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는 되겠지만, 작품 내부에 문제가 없다면 결코 이런..
기본적으로 영화는 남주인공 이승민(엄태웅)의 감정선을 따라 진행됩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아련한 첫사랑을 추억하는 남자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긴 여운을 되짚어 볼수록 이 영화의 초점은 오히려 객체로 표현된 여주인공 양서연(한가인)에게 맞춰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느 분의 칼럼을 읽으니 남자의 기억 속에 첫사랑이 '여신'이면서 동시에 '쌍년'이기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의식적인 자기보호막 때문이라더군요. 아직 어렸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미숙했던 시절, 세월이 흐른 후 돌이켜 보면 등골에 식은땀이 흐를 만큼 못나고 찌질했던 시절의 자신을 차마 그대로 인정할 수 없기에, 잃어버린 첫사랑에 대한 책임은 온통 그 '쌍년'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거라고 말이죠. 어쩌면 영화 속 이승민은 남자들의 그러한 심리를..
100회 콘서트를 앞두고 나는 말했다. "아빠... 인생이라는 게 말야, 참 재미있는 것 같아." 아빠는 어이없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녀석, 네가 인생을 알아?" 아니, 나는 인생을 모른다.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오히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우리는 꿈을 꿀 수 있다. 베일에 가리워진 미래... 그 어슴프레한 막을 걷어내면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도 내 마음은 설레며 그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상상한다. 이제 내가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지금의 아빠보다 더 나이가 든다 해도 언제까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8년 전에 내가 꾸던 꿈은, 줄리어드에 진학하여 조수미와 같은 세계적 소프라노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못된 어른들로 인해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린예고의 꿈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윤백희(함은정)를 구하기 위해 소속사 사장을 폭행한 진국(택연)은 잠시 나락에 떨어졌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와의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벽을 허물어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백희의 말처럼, 자신의 것을 남기지 않고 모두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큰 기쁨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제이슨(장우영)과 김필숙(아이유)의 러브라인은 가장 예쁘고 상큼하게 진행중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해서 애태우던 시간이 지나고, 이제 눈만 마주쳐도 행복감에 짜릿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군요. 한편 고혜미(수지)는 송삼동(김수현)과 진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기의 마음이 ..
처음부터 아이돌 연기 실습의 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드림하이'에 대한 기대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과연 1~2회를 본 소감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드라마는 온통 황당한 스토리와 어색한 연기의 향연으로 뒤덮였고, 그나마 볼거리가 될 거라고 예상했던 출연자들의 노래 실력조차 모두 립싱크로 처리하는 바람에 쓴웃음만 나왔습니다. 본업이 가수가 아닌 배우들도 연기를 위해 불철주야 노래 연습을 해서 라이브를 선보이는 시대인데, 실제 가수들이 주인공을 맡고서도 노래는 립싱크로 처리하다니 도통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특히 여주인공을 맡은 수지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엄청난 악평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연기를 못하는 수준이면 짜증이 날텐데, 수준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을 보여주니 저는 오히려 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