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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제가 이제껏 시청했던 모든 드라마 중 최악의 작품을 꼽는다면 지금부터는 망설임 없이 '청담동 앨리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한참 비뚤어진 주제의식을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합리화시킨 대본이 문제였죠. 배우들의 연기는 괜찮았고, 연출도 그만하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작가들의 썩 훌륭한 글솜씨는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말이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건데도 어찌나 교활하게 표현하는지, 얼핏 생각하면 그들의 논리가 맞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이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은 '된장녀의 하소연'이라 하면 적절하겠고, 결말은 '된장녀의 완벽한 환타지 실현'이라 하면 꼭 맞겠네요. 하지만 당최 주제는 뭔지, 작가들이 이 드라마를 쓰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차승조(박시후)가 정신질환의 일종인 조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초반부터 드러나 있었죠. 심지어 차승조의 가장 친한 친구 허동욱(박광현)의 직업은 정신과 전문의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는 친구이자 주치의로서 언제나 차승조의 정신 상태 변화를 예민하게 주시해 왔습니다. 10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받았던 충격... 아버지로부터 위자료를 받아내기 위해 승조를 이용하려 했던 어머니... 어린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여과 없이 털어놓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건 너를 이용하겠다는 뜻이다" 라고 가르쳤던 아버지... 그 후로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었지만,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하며 지내왔던 시간들... 그러다가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랑 서윤주(소이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녀..
사실상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런 부분이긴 합니다. 만약 이 드라마의 주제(?)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면, 저의 색다른 의견에 불쾌감을 느낄 사람도 그만큼 많을 테니까요. 하지만 같은 드라마를 보아도 사람마다의 생각과 감상이 다를 수 있듯이,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체험한 삶 자체의 내용과 느낌은 사람마다 천양지차일 수 있는 법이죠. 심지어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났어도 어떤 사람에겐 세상이 분홍빛인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짙은 회색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가난과 부모의 학대에 시달려 온 아이라고 해서 모두 불량 청소년이 되는 것도 아니며, 사이코패스 등의 끔찍한 범죄자가 늘어나는 것도 어떤 사회적 현상 때문이라고만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네, 저는 예전부터 항상 그랬습니다. 물론 사회적 문제도..
초반에는 기대를 좀 했었습니다. 물론 그 때도 스토리는 너무 유치하고 오글거렸으며 크게 재미있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풋풋하고 상큼한 느낌만으로도 아련한 향수를 즐기며 볼만은 했었어요. 아직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설프지만 각자 자신만의 꿈을 키우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열정적인 모습들이 예뻤고, 오랜만에 보는 대학가의 초록빛 풍경들이며, 정용화 박신혜를 비롯한 젊은 배우들의 비주얼도 참 예뻤습니다. OST도 제 마음에 꼭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좀 어설픈 그 노래들도 오히려 풋풋해서 좋았습니다. 그 예쁜 느낌들에 한동안 젖어 있고 싶어서, 웬만하면 다 좋게 생각하고 그냥 보려 했습니다. 오래 전에 손예진이 주연했던 '여름향기'도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스토리가 꼬여 갔지만, 초반의 상큼함과 ..
제가 많이 좋아하는 배우 엄태웅이 '1박2일'에 합류하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그래서 모처럼 이 기회에 배우 엄태웅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드라마, 저를 엄태웅의 팬으로 만들었던 드라마, 그리고 엄태웅에게 처음으로 '엄포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던 드라마, '부활'을 추억하며 포스팅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현재 입원중이며 수술 후 회복중이(겠)지만, 이 글은 미리 써 두고 예약 발행된 것입니다..^^ 엄태웅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배우이고 맡는 역할마다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 주었지만, 솔직히 2005년 여름에 방송되었던 '부활' 이외의 작품에서는 그때만큼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례로 '선덕여왕'에서도 답답하도록 우직하기만 했던 김유신의 캐릭터는 엄태웅의 이미지에 큰 도..
착한 드라마 '글로리아'가 시청률 면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조용히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모처럼의 가슴 떨림과 행복을 전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다소 전형적이었던 권선징악의 메시지와 해피엔딩도 싫지 않았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던 그들은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결국 이겨냈고, 행복해졌습니다. 그들에게 승리와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 용서할 줄 아는 마음이었습니다. 처음에 이강석(서지석)은 나진진(배두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대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재벌가 회장의 서자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존재에 회의감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그의 내면에는 뿌리깊은 상류층의 기질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아침마다 더운 물도 나오지 않는 공동화장실 앞에서..
배우 이현진은 1985년생으로 올해 26세이며, 브라운관에 데뷔한 것은 1997년 후반의 시트콤 '김치치즈스마일'을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이제껏 만 3년 동안 그가 출연한 작품을 거의 다 보았군요. 이현진 때문에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본 것은 아니고, 그냥 재미있는 작품을 고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었지요. 그만큼 이현진은 신인치고 아주 작품 운이 좋은 배우였습니다. 데뷔작인 시트콤 '김치스'는 그 전작인 '거침없이 하이킥'의 명성에 비한다면 미약했으나 그래도 나름대로의 고정팬을 갖고 있는 좋은 작품이었지요. 저는 그 작품을 통해서 엄기준이라는 배우를 처음 알았습니다. 이현진은 엄기준의 동생 역할이었는데, 대학생이며 동시에 수영선수였기때문에 모델 출신의 멋진 몸매도 항상 뽐낼 수 있었고(당시 신인배우였던..
요즘 제가 호감을 갖고 시청하는 드라마 '글로리아'의 주인공들이 '놀러와'에 출연해서 반가웠습니다. 네 명의 연기자가 모두 귀엽고 호감형이더군요. 그 중에도 배두나와 이천희에게서는 굉장히 순수한 매력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연예인이란 항상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자신'의 모습을 따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싶거든요. 그런데 배두나와 이천희는 그런 면에서 좀 연예인 같지 않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친구네 집에 놀러 온 사람들처럼, 그랬어요. '글로리아'를 촬영하면서 다들 어느 정도는 친해진 듯, 분위기가 매우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드라마 캐릭터상 매우 단아하고 얌전한 줄만 알았던 소이현의 엄청난 주량에 놀랐다고 이천희가 운을 띄우자, 소이현이 곧바로 이천..
사실 이강석(서지석)과 정윤서(소이현)는 커플이 아닙니다. 이강석은 나진진(배두나)과, 정윤서는 하동아(이천희)와 커플이죠. 앞으로는 그렇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시적으로나마 자기들끼리 커플이 될 것 같은 낌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자기의 진정한 삶과 행복을 포기해 버린 젊은이들만이 할 수 있는 선택, 오직 부모의 결정에 따라 아무런 감정도 없이 결혼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소개로 만나자마자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재벌가의 서자와 서녀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풍족하게 자라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마음이 누구보다 공허한 까닭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완벽히 녹아들 수 없는 서글픈 교집합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단..
'민들레가족'의 후속으로 방송되는 주말드라마의 제목이 '글로리아'라는 것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성가(聖歌)의 제목이었습니다. 'gloria'는 라틴어로 '영광'이라는 뜻을 지녔고, 가톨릭의 대표적인 미사곡 중 하나입니다. 저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어이지만 TV 드라마의 제목으로 접하니 좀 신기하더군요. 주인공 나진진은 앞으로 변두리 나이트클럽의 가수로 활동하게 될 것이며, 그녀가 사용하게 될 무대명이 바로 '글로리아'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름이지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주인공에게 작가가 굳이 '글로리아'라는 이름을 지어 준 뜻을 저는 이미 알 것 같습니다. '글로리아'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척박한 삶을 견디어내고 있습니다. 나진진(배두나)은 나이 서른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