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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서지석과 소이현, 서글픈 교집합의 운명들 본문

드라마를 보다

'글로리아' 서지석과 소이현, 서글픈 교집합의 운명들

빛무리~ 2010. 8. 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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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강석(서지석)과 정윤서(소이현)는 커플이 아닙니다. 이강석은 나진진(배두나)과, 정윤서는 하동아(이천희)와 커플이죠. 앞으로는 그렇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시적으로나마 자기들끼리 커플이 될 것 같은 낌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자기의 진정한 삶과 행복을 포기해 버린 젊은이들만이 할 수 있는 선택, 오직 부모의 결정에 따라 아무런 감정도 없이 결혼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소개로 만나자마자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재벌가의 서자와 서녀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풍족하게 자라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마음이 누구보다 공허한 까닭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완벽히 녹아들 수 없는 서글픈 교집합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단순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세상 사람들을 구분할 때,
그들은 이쪽에도 속해 있고 저쪽에도 속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가진 자' 쪽에 속해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들 교집합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얼핏 상류사회에 속해 있는 듯 하지만, 그 안에서 끝없이 멸시당하고 짓밟히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어머니 쪽의 핏줄을 따라 '못 가진 자' 쪽에 설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합니다. 우선 아무리 핍박을 받는다 해도 어쨌든 일단은 손에 주어진 특권인데,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스스로 포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만약 부와 권력을 소유한 아버지를 버리고 밑바닥 사회로 뛰어든다 해도, 그 사회 또한 그리 만만치가 않습니다. 워낙 아버지가 유명한 사람이니 만큼 끝까지 자기의 정체를 숨기는 것도 어려울 것이며, 일단 출신 성분이 알려지게 되면 온갖 구설수와 질시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장 과정이 풍족했던 만큼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을 감당한다는 것은 스스로 쉽지 않을 것이기도 합니다.

이쪽에도 속해 있고 저쪽에도 속해 있는 교집합이지만, 이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저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이들의 운명(?)입니다. 이강석과 정윤서는 그토록 슬픈 교집합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입장이 어떤 것인지를 아주 극명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고급스럽고 멋진 스타일의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놀랍게도 극도의 외로움과 소외감입니다. 이들은 그 누구에게도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서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지우 작가의 인물 표현력은 참 대단합니다.

이들은 벌써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철없는 반항을 할 시기는 지났습니다. 과거에는 반항도 해 보았겠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진심으로 무언가를 원해 봐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기 삶에 진정한 행복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포기해 버렸습니다. 좀 이상한 말인지 모르지만 차라리 '생존'이 문제라면,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발버둥치다 보면 또 다른 힘이 솟아오를 수도 있을 듯한데, 이 사람들은 너무 풍족해서 '생존' 자체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보니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만 것입니다.


강한 자존심을 지닌 여자 정윤서는 자기 어머니가 첩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을 너무 숨김없이 드러내는 어머니의 핏줄 자체를 혐오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정회장의 딸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너는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신부감이야!" 라고 말하는 어머니(정소녀)에게 윤서는 조용히 대꾸합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딸이기도 하잖아요." 그녀의 어조에는 깊은 슬픔과 자괴감이 깃들어 있었으나, 단순하고 속물적인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정윤서는 어려서부터 발레리나의 꿈을 키우며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다리 부상으로 그 길을 접게 되면서 삶의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습니다.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솔직히 그 설정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정윤서를 한심하고 웃기는 여자로 만들어 버렸어요. 정말 죽을 결심을 했다면 실패하지 않고 단번에 성공할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그렇게 여러 번 실패했을 리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주변 사람들에게 시위하면서 떼쓰고 싶었던 거예요. 정윤서라는 인물은 겉보기에 매우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짜증나는 자살쇼를 여러 번이나 벌였던 일을 생각하면 그 유치한 심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원래 정윤서를 유치한 인물로 설정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면, 자살쇼는 벌이지 않도록 했어야 해요..)


이강석은 비교적 야심이 있는 인물로 보이는군요. 아버지의 집에서 큰어머니와 이복형 지석(이종원)에게 은근한 멸시와 냉대를 받으면서도 꿋꿋이 함께 살고 있으며,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내색하지 않는 완벽한 자기 통제력을 자랑합니다. 의도적으로 감정을 메말려 버린 듯한 인물이에요. 그의 아버지 이회장(연규진)은 가수였던 그의 어머니 여정난(나영희)을 사랑하여 붙잡았습니다. 보통 이러한 커플의 경우는 여자 쪽에서 매달리게 마련인데, 이 사람들은 참 특이합니다.

여정난은 원래 이회장에게 마음이 없었지만 그의 끈덕진 올가미(?)에 걸려 벗어날 수 없었고, 제발 아이 하나만 낳아 달라는 이회장의 애원을 받아들여, 강석을 낳아서 그의 팔에 안겨 준 뒤 홀가분하게 떠나려 했지만 이회장은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어했던 여정난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회장의 여자로, 그렇게 음지에서 30년을 지내왔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떠나고 싶어하지만 이회장은, 나는 너를 그리워하느라 너무 애를 태워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내가 죽은 후에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며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강석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지독한 집착적 사랑에 완전히 질리고 말았습니다. 정회장의 서녀 정윤서와 꼭 한 번 만나보고 결혼을 결정했다는 아들의 말에 기막힌 여정난은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하고 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하고 물었지만, 아들은 "사랑 그 까짓 게 뭐라고, 그것에 매달려서 쩔쩔 매며 살아가는 거, 그거 하기 싫어서요." 라고 대답하더군요.

강석 : 데이트는 열 번 정도로 하죠. 결혼까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윤서 : 다섯 번이라도 상관 없어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라도 상관 없구요.
강석 : 우린 잘 맞는 파트너가 될 것 같군요.
윤서 : 그렇지 않을 거예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그냥 아내 자리를 지키는 여자 노릇 뿐일 거예요.
강석 : 제가 원하는 파트너의 자질이 그겁니다. 나 역시 정윤서씨에겐 남편이라는 이름의 남자 노릇밖엔 못할 테니까, 괜찮지 않겠어요? 서로 아무런 기대가 없으니 실망할 것도 없을 테고.
윤서 : 우리, 꽤 서글픈 커플이 될 것 같지 않으세요?
강석 : 그게 싫습니까?
윤서 : 아니요. 싫을 건 없어요. 단지...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지 않을까... 그게 겁날 뿐이에요.


처음 만난 이 젊은 남녀의 황량한 대화 내용을 보십시오. 특히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을까봐" 그게 두려울 뿐이라는 정윤서의 대사에는,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참고 견디어 가는 사람의 심리가 정확히 내포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빨리빨리 흘러가서 노인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이 고통스런 세상을 떠나도 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마음이 저릿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기엔 참으로 한심하겠죠? 네, 물론 한심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든 투명한 유리벽 안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 그런 느낌을 한 번이라도 받아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유리벽은 스스로 쌓아올린 것일 수도 있고 주변에서 둘러 놓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원인은 여러가지이나, 일단 보이지 않는 유리벽 안에 갇히면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본인이 내면적으로 겪는 절망감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은 스스로를 더욱 비참하고 무력하게 만들지요. 그런데 가끔씩은 기적적으로 그 유리벽을 열고 뛰쳐나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강력한 계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요.


이강석에게는 나진진이, 정윤서에게는 하동아가 그 계기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는 진진과 동아, 그 생활력 강하고 거칠고 시끄러운 아이들이, 조용한 일상 속에 고여 있다가 급기야 썩어들어가고 있는 이 허울좋은 아이들을 구원해 주겠군요.

설정 자체를 보면 결코 신선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모든 인물이 살아 숨쉬는 듯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기에 결코 식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의 대사에도 감칠맛이 넘칩니다. 강석과 윤서를 둘러싸고 있는 그 숨막힐 듯한 유리벽을, 진진이와 동아가 얼른 활짝 열어 젖혀 주기를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첫방송의 느낌도 좋았지만, 볼수록 더 빠져들게 되는 드라마 '글로리아' 입니다. 


▷ 오늘은 포스팅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제 블로그의 이름을 자주 언급하게 되었군요. '유리벽 열기' ㅎㅎㅎ
    무슨 의미인지 혹시 궁금하셨던 분들께는, 아주 약간이나마 답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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