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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최종회, 그들은 용서하고 행복해졌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글로리아' 최종회, 그들은 용서하고 행복해졌다

빛무리~ 2011. 1. 3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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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드라마 '글로리아'가 시청률 면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조용히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모처럼의 가슴 떨림과 행복을 전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다소 전형적이었던 권선징악의 메시지와 해피엔딩도 싫지 않았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던 그들은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결국 이겨냈고, 행복해졌습니다. 그들에게 승리와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 용서할 줄 아는 마음이었습니다.

처음에 이강석(서지석)은 나진진(배두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대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재벌가 회장의 서자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존재에 회의감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그의 내면에는 뿌리깊은 상류층의 기질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아침마다 더운 물도 나오지 않는 공동화장실 앞에서 발을 동동거려야 하는 나진진의 척박한 삶에 진정어린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은 스스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푼수떼기처럼 밝게 웃으며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리는 서른 살의 나진진에게, 이강석은 거짓말처럼 푹 빠져 버렸습니다.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인간적으로 대해 주고 염려해 준 첫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감정 없는 나무토막처럼 살아가던 이강석이 자기 안에 돋아나는 낯선 감정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섬세하게 표현되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가 힘겨웠을 뿐, 받아들이고 나자 이강석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습니다. 이제껏 마음을 닫고 살아왔기에, 처음으로 열린 그 마음은 대책없이 강렬했습니다. 그는 폭풍같은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그 외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돈과 지위만이 아니라 자존심까지도, 진진을 향한 사랑에 방해가 된다면 그에게는 쓰레기처럼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진진을 향한 이강석의 사랑은 가히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라 할만했습니다.

아름다운 재벌가의 서녀 정윤서(소이현)가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깡패 출신의 하동아(이천희)에게 자신을 올인하며 바친 사랑도, 추측컨대 많은 남성들의 로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하지만 정작 마음은 텅 비어서 외롭기 한량없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못 가졌지만 마음은 따뜻한 온기로 채워진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가면서 행복하게 사랑하는 것... 가장 이상적이지만, 어쩌면 가장 비현실적인지도 모르겠군요.

당연히 그들의 사랑은 쉽지 않았습니다. 집안의 반대를 비롯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강석의 이복형인 이지석(이종원)의 존재였습니다. 이지석은 20년 전, 유부남의 몸으로 나진진의 친언니인 스무살의 나진주(오현경)를 유혹해서 사랑에 빠지게 했으나, 그것은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불륜 현장을 덮친 그의 아내는 우발적 사고로 이지석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자수를 권하는 나진주가 부담스러웠던 이지석은 그녀마저 죽여 입을 봉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조작된 사고의 결과 나진주는 머리를 다쳐 5세 지능의 어린아이로 퇴화했고, 그녀의 부모가 대신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10세에 불과했던 나진진은 그렇게 부모를 잃고, 장애인이 된 언니를 떠맡으며 소녀가장이 되었습니다. 서른 살이 되도록 그녀의 꿈은, 먼 훗날 언니와 함께 시설 좋은 요양원에 들어가 평화롭게 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버거운 생활 속에 다른 꿈은 꾸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 바로 이지석이었지요.

이강석을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다른 모든 장벽은 걷어낼 수 있었으나 그의 친형이 이지석이라는 사실은 마지막까지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니라 타살이었고, 그 범인이 이지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진진은 독하게 사랑을 접으려 했습니다. 자기의 남은 삶을 송두리째 내던져서라도 복수를 하겠다 결심했으니 강석에 대한 사랑을 지속할 수 없었지요. 진진의 마음을 이해하는 이강석은 감당할 수 없는 이별마저 아픔을 삼키며 받아들였고, 자기 집안을 향한 그녀의 복수에 스스로 이용당해 주었습니다.

뉘우침 없이 악행을 계속하던 이지석은 결국 무너져내렸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살인용의자가 되어 쫓기던 그는, 나진주를 찾아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자결하고 맙니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모든 원한은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미워해야 할 일도, 복수해야 할 일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강석의 아버지 이회장(연규진)은 비극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다며 참회합니다. 아내를 둔 몸으로 다른 여자를 사랑하여 아이를 낳게 했던 과오가 이 모든 일을 불러왔다는 것이지요. 친엄마에게서 자라던 강석은 7살 되던 해에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갔지만, 배다른 동생을 받아들일 수 없던 사춘기의 지석은 그 때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심성이 나약한 그를 못마땅해 했고, 상대적으로 똑똑한 데다가 정말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강석에게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토록 미워했던 형이지만, 죽고 난 후에 강석의 머릿속에 남은 지석의 기억은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즐겨 올려다보던, 꿈 많고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원한의 매듭은 한 순간에 잘려나갔습니다. 라틴어로 '영광'을 뜻하는 '글로리아'... 그 이름처럼 나진진은 가수로서의 명성과 여자로서의 행복을 동시에 얻으며, 찬란한 영광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생각하면 이 또한 매우 비현실적이고 어려운 일입니다. 비록 당사자는 죽었지만, 엄연히 이강석은 철천지 원수와 피를 나눈 동생이니까요. 그와 결혼함으로써 나진진은 부모를 죽인 원수의 가족들을 자기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셈입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이것이 어찌 쉬운 결정일까요?


복잡하게 생각하면 결코 할 수 없는 용서를, 이 단순한 사람들은 무모할 만큼 쉽게 해 버립니다. 사랑하니까, 당연히 용서한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하동아의 어린 조카 어진이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 되든, 군고구마 장사가 되든, 저는 사람들한테 '저 사람은 정말 착한 사람이다'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진이의 이 말은 이 드라마의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착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쉽게 타인을 용서하지요. 용서하는 것은 행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만약 용서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사랑도 행복도 얻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초반부터 애정을 갖고 꾸준히 지켜보면서도 그 동안 리뷰를 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해질 만큼, '글로리아'는 착하고 예쁜 드라마였습니다. 특히 실감나게 표현되었던 이강석의 진실한 사랑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 막을 내린 '글로리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줍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고, 쉽지는 않겠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더 너그러워지고 착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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