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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내 사랑' 김갑수의 충격적인 아줌마 변신 본문

드라마를 보다

'몽땅 내 사랑' 김갑수의 충격적인 아줌마 변신

빛무리~ 2011. 1. 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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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시트콤 '몽땅 내 사랑'은 작품성 면에서 보았을 때 크게 흥미로운 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시트콤은 드라마보다 더욱 캐릭터가 중요시되는 장르지요. 드라마는 전체적인 스토리가 탄탄하게 짜여져 있으면 개별적 캐릭터가 매력없더라도 흥미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트콤은 호흡이 짧고 각 회마다 별개의 에피소드를 소화해야 하므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스토리보다 캐릭터의 힘입니다.

시트콤의 캐릭터는 매력적일 뿐 아니라 설득력이 있어야 하며,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지붕뚫고 하이킥'의 황정음, 신세경, 이지훈(최다니엘), 정준혁(윤시윤) 등은 모두 제각각 다른 스타일로 뚜렷한 개성을 지녔는데, 다양한 시청자들은 저마다 자기의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골라 심취할 만큼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붕킥'이 시트콤에 최적화된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창조해냈다는 뜻입니다. '지붕킥'의 캐릭터들은 조금씩 과장되긴 했어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살아 숨쉬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몽땅 내 사랑'의 캐릭터들은 시청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 못합니다. '몽땅'의 등장인물들은 그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있는 배우들로만 보일 뿐입니다. 각각의 특성이 부여되기는 했는데 너무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어 있어서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매력적으로 표현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연기본좌 김갑수조차도 이미 설정된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갑수 원장은 미니재벌이라 해도 좋을 만큼 부자이면서도, 단돈 몇 천원이 아까워서 벌벌 떠는 구두쇠 캐릭터입니다. 그가 돈을 아끼기 위해 벌이는 행각들은 매우 치사스럽고 지저분합니다. 설정 자체만 놓고 보면 웃긴데, 왜 그렇게까지 얼마 안 되는 돈에 집착하는지를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원래 성격이 그렇다고 넘어가기에는 모든 상황이 너무나 과장되어 있으니, 아무리 김갑수가 실감나는 연기의 대명사라 해도 무대 위의 광대처럼 보이곤 합니다.

박미선, 황금지(가인), 황옥엽(조권) 이 세 가족의 특징은 '이기심'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박미선은 그저 가난한 생활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속임수까지 써 가면서 김갑수와의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황금지의 관심사는 온통 자기의 쌍꺼풀 수술에만 집중되어 있고, 사수생 황옥엽은 매일 사고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습니다. 윤승아는 너무 착해서 천사 같기만 하고, 전태수는 나름대로 까도남의 매력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지만 나무토막처럼 뻣뻣해 보입니다.


말하자면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전체적으로 모든 캐릭터가 너무 단순화되어 있습니다. 캐릭터의 뚜렷한 개성을 설정했으면, 시청자들이 그 인물의 감정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틈틈이 섬세한 내면을 표현해 주어야 하는데, '몽땅 내 사랑'은 그 부분이 매우 취약합니다. 그렇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김갑수라는 배우의 연기를 놓친다는 것은 매우 아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붕킥' 때처럼 높은 충성도를 보이지는 않더라도 시간이 되면 '몽땅 내 사랑'에 채널을 고정하는 편입니다. 김갑수는 걸음걸이 하나에서도 품위라고는 전혀 없는 구두쇠의 찌질한 인품을 드러낼 줄 아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가끔 "저 사람이 바로 '신데렐라 언니'의 구대성이었지..."라는 생각이 떠오르면 새삼 신기해서 킥킥 웃기도 합니다.

그런 김갑수가 1월 5일 방송된 '몽땅 내 사랑' 33회에서는 연기 변신의 또 다른 한 획을 그었습니다. 여자로 분장하고 브아걸의 '아브라카다브라'에 맞춰 춤을 추는 김갑수의 모습은, 겨우 10%의 시청률로 만족하기에는 너무도 기막힌 명장면이었습니다. 분장부터가 얼마나 절묘했는지 김갑수라는 것을 모르고 보았다면 영락없이 섹시한 중년 여성으로 착각하겠더군요. 물론 분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갑수의 뇌쇄적인 눈빛이었지요. 그 도도함과 시크함이라니, 중년의 팜므파탈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유연한 몸놀림과 춤 솜씨였습니다. 실제 아이돌인 조권, 가인과 한 무대에서 춤을 추는데도 제가 보기에는 크게 밀리지 않더군요.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웨이브마저 제법 부드러운 곡선으로 살아나고, 엎드렸다가 다리를 펼치고 일어나는 브아걸 특유의 섹시 댄스도 올해 55세의 김갑수가 너끈히 소화했습니다. 오랜 시간 노력하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었을, 놀라운 실력이었습니다. 

여장을 하고 '아브라카다브라'를 소화하는 김갑수는, '지붕킥'에서 '네버엔딩 스토리'를 열창하던 76세의 이순재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는 수많은 연기 변신을 하겠지만, 이 정도로 새롭고 충격적인 모습을 또 다시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 귀한 기회를 모르고 놓칠 뻔 했는데 '몽땅 내 사랑'을 시청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배우는 이렇게 작품을 위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좋은 배우는 혼자의 힘으로 부족한 작품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만큼의 저력을 지녔다는 것을 저는 느꼈습니다. 정말 좋은 배우는 나이가 들어도 육체의 한계에 갇히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르지 않는 열정은 때때로 기운을 잃는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을 불태우게 합니다. 그래서 아줌마로 완벽히 변신한 김갑수의 모습은 결코 우습지 않았고, 오히려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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