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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협상극'이라는 매우 생소한 장르를 표명하고 시작된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1회는 제법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했지만, 전개 과정에는 허술함이 많았다. 특히 여명하(조윤희)의 캐릭터는 적잖이 답답해 보여, 민폐 여주인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짙어 보였다. 하지만 '협상전문가'라는 남주인공 주성찬(신하균)의 직업과 캐릭터는 매우 신선하고 뚜렷해서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소통 부재의 시대가 낳은 괴물 '피리부는 사나이'의 정체는 궁금증을 자극함과 동시에 진한 비극의 페이소스를 예감케 한다. 잔인한 세상과 소통할 방법이 없는 약자들에게 '피리부는 사나이'는 '폭력'이라는 통로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릇된 방식의 소통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오직 파멸뿐이기에, '피리부는 사나이'와 손잡은 약자들은 가장 먼저 희..
결국 본방사수의 우선 순위를 '아빠 어디 가'에서 '슈퍼맨이 돌아왔다' 쪽으로 바꾸었다. '아빠 어디 가'의 초반에 워낙 깊은 정을 주었던지라 웬만하면 바꾸지 않으려고 했지만, 점점 더 재미와 감동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시즌1에서는 아빠와 아이들이 서먹했던 관계가 차츰 가까워지는 과정을 통해 훈훈한 감동을 참 많이 받았었는데, 시즌2에서는 그런 부분이 거의 사라졌다. 김성주와 성동일과 윤민수는 시즌1의 경험을 통해 '아빠 공부'를 벌써 많이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발전을 보여줄 부분이 없고, 류진과 정웅인은 아이와의 관계가 처음부터 꽤 좋아 보였으며, 초반에 약간 서툴러 보였던 안정환도 예상외의 코믹 기질을 선보이며 매우 빠르게 적응했다. 아이들 역시 이젠 어느 정도 방송을 ..
'괜찮아 사랑이야' 최종회에 관해서는 별로 길게 쓸 말이 없다. 15회 말에 장재열(조인성)이 자기의 분신과도 같았던 한강우(디오)를 떠나보내면서 이 작품의 결론은 이미 내려졌기 때문이다. 16회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살았답니다" 하는 식의 에필로그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따스한 행복감을 주었던 이 드라마를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일종의 마침표를 찍는 예의가 필요할 것 같아서 아주 간단히 최종회의 리뷰를 쓴다. 지해수(공효진)의 엄마는 장재열의 정신분열증 때문에 두 사람의 결합을 극구 반대하고, 재열은 해수를 설득하여 유학을 보낸다. 하지만 그 후 1년 동안 꾸준히 병을 치료받은 재열은 완치 단계에 이르고, 해수가 유학에서 돌아오자 그들은 축복 속에 결혼을 ..
종영을 하루 앞둔 '괜찮아 사랑이야' 15회에서는 그 어떤 호러 영화나 전설의 고향보다도 훨씬 무서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장재열(조인성)이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이제껏 믿어왔던 한강우(디오)의 존재가 환시임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다. 나는 영상 속 공포에는 비교적 대범한 편인데, 그 장면을 볼 때는 등골이 오싹하도록 서늘한 한기와 심장이 옥죄는 듯힌 갑갑함을 느끼며 극한의 공포에 시달렸다. 처음 볼 때도 그렇더니만,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네 앞의 강우를 똑똑히 봐... 머리부터 밣끝까지 아주 아주 천천히... 숨을 멈추고 천천히... 모든 환시에는 반드시 모순이 있어!" 지해수(공효진)의 말을 떠올리며 장재열이 한강우의 모습을 시선으로 훑어내릴 때, ..
장재열(조인성)의 정신분열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다양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조동민(성동일)과 이영진(진경)은 정신과 의사로서 객관적 판단과 차분한 결단력을 보였다. 그들 역시 장재열과의 친분이 있었기에 충격을 면할 수는 없었지만, 가족이나 연인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기에 한 발 물러서서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장재열의 죽마고우인 양태용(태항호)은 지극히 친구다운 태도를 보였고, 재열 모(차화연)는 지극히 엄마다운 태도를 보였다. 너무나 슬프고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에 차츰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을 찾아갔다. 투렛 증후군으로 오래 고통받은 박수광(이광수)은 아파 본 사람으로서 깊은 연민을 느끼며 장재열의 곁을 지키고, 동생에게 복수심을 품고 있던 장재범(양익준)은 무표정..
'아빠 어디 가'를 시청하다 보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귀여움에 저절로 웃음을 머금게 되는데, 가끔은 그 단순한 즐거움이 감동으로 변할 때가 있다. 어른들도 갖기 힘든 배려심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아이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그 때다. 특히 성동일 아들 성준, 윤민수 아들 윤후의 천사같은 배려심은 시즌1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는데, 차분히 살펴보면 시즌2에 새로 합류한 아이들에게서도 놀라운 배려심을 엿볼 수 있다. 성동일의 큰 딸인 7세 빈이는 김진표 부녀가 하차하기 전에 가장 어렸던 5세 규원이를 언니로서 가장 살뜰히 챙겼으며, 안정환의 아들 리환이는 동갑내기 빈이가 물웅덩이에 넘어져 옷이 젖은 채 떨고 있자 "에어컨 꺼 주세요!" 하고 큰 소리로 요청하는 섬세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한편..
'괜찮아 사랑이야' 7회가 방송된 후 다수 시청자의 반응을 보면 서로 사랑하면서도 평생 끝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이상한 형제, 장재열(조인성)과 장재범(양익준)의 처절한 스토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 형제의 모습에 서늘한 두려움을 느꼈을 뿐, 공감이나 감동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장재범이 주사한 액체는 수액에 불과했기 때문에 장재열은 정신이 멀쩡한 상태였고 육체적으로도 충분히 형을 제압할 힘이 있었지만, 아무런 저항 없이 형의 가혹한 주먹질과 발길질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폭행 장면을 실제로 목격할 때보다 영상을 통해 접할 때 더욱 큰 영향을 받는다는데, 가족간의 일방적 폭행과 무력한 피해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끔찍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난장판이 된 폭행 현장을 목..
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음이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녀 주인공 장재열(조인성)과 지해수(공효진)는 인기 추리소설 작가와 유능한 정신과 의사로서 빼어난 지적 능력과 출중한 외모를 지닌 선남선녀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마음이 병든 그들은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장재열과 지해수뿐 아니라 이 작품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마음이 병든 사람들로서,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매일처럼 자기 안의 자신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타인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자기만의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그 싸움은 매우 치열하여, 매일 아침 방문을 열고 나설 때면 피투성이가 되어 있지만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이기에,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함을 가장하며 평범한 일..
사춘기라면 몰라도 고작 7~8세 정도 어린 꼬마아이들의 러브라인이란 보통 장난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냥 '친구'와 '이성친구'의 경계선이 아직은 모호할 때라선지, 이 녀석을 좋아하다가 금세 저 녀석을 좋아하기도 하고, 함께 놀 때는 그렇게 좋아한다더니 눈에서 멀어지면 금세 잊어버리기도 한다. 많이 좋아하던 이성친구를 더 이상 자주 만날 수 없게 되어도 어른들처럼 큰 충격을 받거나 극심한 서운함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윤민수의 아들 윤후는 시즌1에서 거의 1년 동안이나 송종국의 딸 지아를 향한 일편단심을 드러냈으나, 송종국 부녀가 시즌2에 합류하지 않고 하차함으로써 두 아이의 러브라인(?)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윤후의 반응은 덤덤했다. 물론 방송에 비춰지지 않는 모습들이라든가,..
'호기심'이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니, 본질적으로는 좋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중에도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는 사람은 생기있어 보이지만, 세상 일에 별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어딘가 칙칙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호기심'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호기심 중에는 좋은 호기심 못지 않게 쓸데없는 호기심과 못된 호기심도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왔던 탓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별 상관도 없는 남들의 개인사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데, 아름다운 일보다는 추한 일에 더욱 큰 호기심을 보인다. 세상의 온갖 뜬소문과 가십거리는 언제나 그 '못된 호기심'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솔직히 궁금하긴 하다. 남들의 실수나 잘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