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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사랑이야' 자신과 화해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괜찮아 사랑이야

'괜찮아 사랑이야' 자신과 화해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빛무리~ 2014. 8. 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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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음이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녀 주인공 장재열(조인성)과 지해수(공효진)는 인기 추리소설 작가와 유능한 정신과 의사로서 빼어난 지적 능력과 출중한 외모를 지닌 선남선녀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마음이 병든 그들은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장재열과 지해수뿐 아니라 이 작품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마음이 병든 사람들로서,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매일처럼 자기 안의 자신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타인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자기만의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그 싸움은 매우 치열하여, 매일 아침 방문을 열고 나설 때면 피투성이가 되어 있지만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이기에,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함을 가장하며 평범한 일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괜찮은 척할 뿐 결코 괜찮지 않은 그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괜찮아, 사랑이야!" 그러므로 이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의 이야기다. 결국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명약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는, 약간은 식상한(?) 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대본과 연출과 연기의 삼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드라마는 매우 강한 흡입력으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특히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 필연성을 차곡차곡 증명해 가는 작가의 능력에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깊이 숨겨진 내면의 모습을 타인에게 들켰을 때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면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문은 더욱 굳게 닫힌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는 따뜻한 시선을 접한다면 그 순간부터 문틈은 넓어지고 상처는 치유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장실 안에서 웅크리고 잠든 모습을 지해수에게 들켰을 때, 장재열은 그녀가 깜짝 놀라며 이상한 시선으로 자신을 볼 거라 예상했었다. 이제껏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찜찜한 표정으로 슬슬 피하거나, 심지어 그가 없는 자리에서 남들에게 흉을 보거나, 그런 식으로 반응했으니까. 하지만 지해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나와, 가자!" 라고 말할 뿐이었다. 잠시 후 놀랐을텐데 왜 아무 말이 없느냐고 재열이 묻자 해수는 픽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아는 어떤 강박증 환자는 개집에서도 자!" 그러니까 화장실에서 자는 것쯤은 별 일도 아니라고, 너는 아주 조금 아플 뿐 절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그 순간 장재열의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다.

 

 

 

 

장재열과 장재범(양익준) 형제의 불행은 의붓 아버지의 폭력에서 시작되었다. 장재열의 어린 시절 기억은 매일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계부를 피해 도망다니던 일로 채워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계부가 죽었고, 재열의 형 재범이 그 살인자로 지목되어 십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 복역 중이다. 최근 장재범은 정신과 의사 조동민(성동일)과의 상담 중 살인 사건의 범인이 동생이라고 주장하며, 엄마(차화연)의 위증 때문에 자기가 대신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원망 가득한 말을 털어놓았다. 그 날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소한 장재열이 의붓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이니, 이로써 장재열은 삼중의 고통을 품은 채 살게 되었다. 폭행당한 어린 날의 상처, 계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망가진 형의 인생에 대한 죄책감.

 

이런 장재열에겐 그의 팬을 자칭하며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는 소년 한강우(디오)의 존재가 있다. 작가 지망생인 한강우는 장재열의 어두운 과거를 재료삼아 소설을 써서 읽어 달라며 보내기도 하고, 스스로 가정 폭력의 고통이나 짝사랑의 아픔을 겪을 때마다 장재열에게 찾아와 매달리는 귀찮은 존재다. 이런 한강우를 대하는 장재열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증오'에 가까웠다. 강우의 행동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 소년인데, 지나칠 만큼 매정하게 대하는 장재열의 태도는 심상치 않았다. 마치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의붓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찾아온 강우를 재열은 매몰차게 밀어냈다. "때리면 도망치라고 했잖아, 왜 맞고만 있었어?"

 

 

 

 

한강우가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재열이 퍼부었다. "엄마 데리고 같이 도망치면 되잖아!" 상처받은 소년을 감싸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장재열의 모습은 심히 냉혹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강우가 모처럼 밝은 표정으로 찾아왔다. "내가 그 사람을... 쳤어요. 이젠 나를 만만하게 여기지 않을 거예요!" 그러자 장재열은 처음으로 한강우를 품에 안고 토닥이며 달래 주었다. "괜찮아. 너는 아버지를 친 게 아니야. 그냥... 폭력을 막은 거야!" 두 사람은 통쾌하게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밤 거리를 질주한다. 한강우를 바라보는 장재열의 눈빛이 더없이 따스하다. 두 사람이 원래 저렇게 친했나? 하는 순간, 장재열은 홀로 달리고 있다. 아무도 없는 옆자리의 빈 공간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 표정으로 손짓까지 하면서 말을 건넨다. 

 

한강우는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장재열의 내적 자아였다. 장재열에게만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매우 인상적이었던 4회 엔딩 장면을 나는 단지 한강우의 정체를 알려주기 위한 설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5회에서는 장재열의 병증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임이 드러났다. 한강우와 대화를 나눈답시고 혼자 중얼거리며 병원에 들어선 것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간호사를 불러 '한강우' 이름으로 진료 예약을 했는데 왜 한참 동안 부르지 않느냐며 따지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정신분열 환자였다. 일부러 한강우라는 가상의 존재를 설정해 놓고 자신을 위로하는 도구로 삼는 줄 알았는데, 장재열은 자신의 내적 자아를 실존하는 객체로 인식할 만큼 병이 깊어져 있었던 것이다.

 

 

 

장재열에게 한강우는 어린 시절의 자신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화해해야 할 대상이다. 사실 대부분 마음의 병은 '죄책감'에서 비롯된다. 학대받고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 속에는 원망과 증오뿐만 아니라 죄책감도 깊이 새겨진다. 왜냐하면 폭력에 거듭 노출되며 극한의 공포에 시달려 온 사람은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폭력의 가해자들 중 "내가 나쁜 사람이라서 죄 없는 너를 때리는 거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폭력을 휘두르면서 끝없이 피해자를 욕하고 탓한다. '지금 네가 당하는 일은 모두 네 잘못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도 희생양을 죽이기 전에 항상 그런 대사를 했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이지만, 거듭된 폭력과 공포로 쇠약해진 정신은 어느 새 가해자에게 세뇌를 당하고 만다. 이를테면 의처증 남편으로부터 학대받는 아내의 경우 "옆집 남자한테 네가 눈짓을 하면서 살살 꼬리 쳤잖아!" 라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며 무자비한 매질을 당하다 보면 어느 새 "내가 진짜 그랬는지도 몰라" 생각하면서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폭력의 피해자가 된 상황에서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폭력의 가해자가 부모일 때, 피해자가 느끼는 무조건적 죄책감은 최고치에 이른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말은 절대적이기에 부모가 "네 잘못이야!"라고 말하면서 때리면 "정말 내 잘못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중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판단력에 장애가 생긴다. 객관적으로 부당한 일을 겪었으면 그 즉시 항의하거나 정제된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상황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당황하고 멈칫거리면서 "내 잘못 때문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항의할 시기를 놓치고 속절없이 불이익을 당한 채 집으로 돌아와 계속 생각하다 보면 한참 뒤에야 결론이 내려진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어. 항의를 했어야 했는데...화를 냈어야 했는데..." 그러면서 억울한 심경이 가슴 속에 잿더미로 가라앉는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나중엔 별 것 아닌 일로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하며 큰 사고를 저지르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지속적인 폭력을 당한 것만으로도 죄책감의 이유는 충분한데, 장재열의 경우는 계부의 죽음과 형의 옥살이까지 얽혀 있으니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할지는 차마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지경이다. 비록 화장실에서만 잠을 잘 수 있는 강박증과 한강우의 존재를 실재로 인식하는 착란증을 겪고 있으나, 그만큼이라도 멀쩡하게 성장한 것이 오히려 놀랍다. 심약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정신병원에 갇히고 말았을텐데, 장재열은 무척 강인한 내면을 지닌 사람인가 보다. 하지만 그 역시 죄책감의 올가미를 벗어 던지지는 못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찾아온 한강우를 매몰차게 밀어내며 꾸짖던 장재열의 모습은 아직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왜 맞고만 있었어? 엄마 데리고 같이 도망가면 되잖아!"

 

 

 

의붓 아버지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엄마 손 잡고 함께 도망치면 되었을텐데, 무력하게 맞고만 있었던 자신을 그는 용서하지 못했다.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의붓 아버지를 죽이는(?) 일도, 형이 감옥에 가는 일도 없었을텐데... 계부가 죽은 것도 형이 감옥에 간 것도 모두 자기 탓인 것만 같다. 죄책감이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지독하게 좀먹는 것인가! 매일같이 자기 내면의 한강우를 질책하고 싸우며 장재열은 지쳐갔다. 그러나 한강우가 의붓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반항하던 날, 그를 품에 안고 "네 잘못이 아니야" 하며 토닥이던 장재열의 모습은 자신과 화해하고 싶은 열망을 드러낸다. 어쩌면 평생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서 간절히 듣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자신과의 화해는 장재열에게만 주어진 숙제가 아니다. 무의식 속에서 이유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것은 지해수도 마찬가지다. 지해수의 엄마(김미경)는 병약한 남편을 두고 평생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불륜을 일삼았다.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들과 수시로 잠자리를 갖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어린 딸 해수의 내면에는 육체에 대한 혐오감이 아로새겨졌다. 엄마의 불륜이 더러운 만큼 남녀간의 잠자리는 그 자체가 더러운 것으로 인식되었고, 엄마가 미운 만큼 엄마의 딸인 자신도 미워졌다. 어느 덧 그녀도 어른이 되었고 연애를 시작했지만, 육체 관계에 대한 혐오감은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육체 관계를 회피한다고 해서 무조건 정신 장애로 간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요즘 세상에 매우 소수이긴 하지만 아직도 혼전 순결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개인적 소신에서 비롯된 행동일 뿐 절대 병이 아니다. 반면 지해수는 연인과의 육체 관계를 원하지만 심리적 거부감 때문에 잘 안 돼서 고민하고 있으며, 스스로 그것을 병이라 인식하여 치료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병인 것이다. 이처럼 육체 관계를 거부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가 핵심인데, 잘못 해석하여 타인의 정상적인 소신을 병이라 우기는 바보들이 행여나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은 자신과 화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수많은 여자들과 연애하면서도 진심은 주지 않는 장재열의 헛된 바람기... 자칫 비호감으로 보일 만큼 까칠하고 안하무인인 지해수의 언행들... 이 모두는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마음의 병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그들은 사랑을 시작할 것이고, 사랑을 통해 서로의 빈 곳을 채워가며 상처를 치료할 것이다. 상처가 치유되면 그들은 비로소 자신과 화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후에는 또 다른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귓가에 "괜찮아, 사랑이야!" 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나무토막 같던 지해수가 장재열의 키스에 열정적으로 응하며 제 손으로 그의 뺨과 어깨를 감싸던 모습을 떠올리니 절로 가슴이 설렌다. 오랫동안 상처에 짓눌려 갇혀있던 마음들이 이제 빗장을 풀고 눈부신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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