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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사랑이야' 사랑스런 강우를 꼭 안아주고 싶던 그 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괜찮아 사랑이야

'괜찮아 사랑이야' 사랑스런 강우를 꼭 안아주고 싶던 그 날

빛무리~ 2014. 9. 11.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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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을 하루 앞둔 '괜찮아 사랑이야' 15회에서는 그 어떤 호러 영화나 전설의 고향보다도 훨씬 무서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장재열(조인성)이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이제껏 믿어왔던 한강우(디오)의 존재가 환시임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다. 나는 영상 속 공포에는 비교적 대범한 편인데, 그 장면을 볼 때는 등골이 오싹하도록 서늘한 한기와 심장이 옥죄는 듯힌 갑갑함을 느끼며 극한의 공포에 시달렸다. 처음 볼 때도 그렇더니만,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네 앞의 강우를 똑똑히 봐... 머리부터 밣끝까지 아주 아주 천천히... 숨을 멈추고 천천히... 모든 환시에는 반드시 모순이 있어!" 지해수(공효진)의 말을 떠올리며 장재열이 한강우의 모습을 시선으로 훑어내릴 때, 내 심장은 마치 튀어나올 듯 쿵쾅거리고 있었다.

 

 

강우의 존재가 환시임을 인정할 수 없는 재열은 적극적으로 병을 치료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다만 사랑하는 지해수 앞에 못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퇴원을 고집했던 것뿐이다. 재열이 엄마(차화연)에게 간절히 애원하자 엄마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그렇게 퇴원한 장재열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벅차서, 해수는 물론 형제처럼 친하던 조동민(성동일)과도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더 이상 치료를 늦출 수 없다고 생각한 지해수는 전화를 걸었고, 장재열이 전화를 곧바로 끊어버리자 다시 걸어서 단호하게 말했다. "의부 사건이 일어나던 날 동민 선배는 네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거라고 이해하지만 아니, 너는 그 날 아주 큰 잘못을 했어. 널 믿는 형과 변호사와 상의하지 않은 것. 이번에도 너는 아주 큰 잘못을 하고 있어. 날 버리고 간 것. 내 도움을 거부한 것!"

 

이대로 전화를 끊으면 두 번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협박(?)하자 비로소 장재열이 솔직히 털어놓는다. "강우는 있어, 해수야... 강우는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어. 뭐가 착각이고 모순인지 찾아지질 않아!" 지해수가 울먹이며 말했다. "강우가 보일 땐, 너랑 나랑 사랑하던 때를 그 순간을 기억해. 내가 너를 만지고 네가 나를 만지고, 내가 네 품에서 웃고 울 때 그 순간, 그것만이 진짜야!" 그녀가 다시 차분히 말했다. "찾을 수 있어. 너는 찾을 수 있어. 네 앞의 강우를 똑똑히 봐. 머리부터 밣끝까지 아주 아주 천천히... 숨을 멈추고 천천히... 모든 환시에는 반드시 모순이 있어. 자세히 보면 모순이 찾아질 거야. 모든 환자들이 그렇게 찾으니까 너도 할 수 있어. 그 착각과 모순이 찾아지면 나한테 와. 내가 기다릴게. 정말 많이 사랑해!"

 

 

"이 전화를 끊고 나면 아마도 넌 강우가 또 보일 거야..."라고 했던 지해수의 말 그대로 재열의 눈 앞에 다시 강우가 나타났다. 언제나처럼 피투성이 맨발에 교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와서 재열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다. 재열이 말했다. "넌 가짜야. 해수 말이 맞아!" 그러자 강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정말요? 조박사님 말처럼 그럼 내가 작가님이라고요?" 말도 안 된다는 듯 강우가 웃는다. "나는 나지, 내가 어떻게 작가님이에요? 난 작가님일 수가 없죠. 우린 생긴 것도 너무 다른데...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작가님이 맞고 있을 때 다들 모른 척 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나 같은 애는 관심도 없으니까 그냥 날 봐도 모른 척하라고..." 너무나 그럴듯하게 자신의 존재를 역설하는 한강우. 위험하다.

 

그 순간 장재열은 놀랍게도 지해수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사랑의 힘이다. "네 앞의 강우를 똑똑히 봐... 머리부터 밣끝까지 아주 아주 천천히... 숨을 멈추고 천천히... 모든 환시에는 반드시 모순이 있어!" 재열의 시선이 강우의 맨발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 교복 상의의 명찰에 머문다. (그 장면에서 음악은 또 왜 그리 스산한지 정말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몰입이 지나쳤나보다..;;) "나 모른 척하지 마세요, 작가님!" 해맑게 애원하는 강우에게 재열이 묻는다. "너랑 나랑 만난지 몇 년 됐지, 강우야?" 강우가 대답한다. "3년이요!" 재열이 다시 묻는다. "너 몇 학년이니, 강우야?" 강우가 대답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요!" 드디어 모순을 찾아냈다. 3년 전, 처음 만나던 그 날에도 강우는 똑같은 차림새로 재열을 찾아와 말했었다. "저는 작가님 팬 한강우예요. 고등학교 2학년!"

 

 

3년이 지나도록 고등학교 2학년에 머물러 있는 한강우... 재열의 눈 앞에 문득 어린 시절의 자신이 보인다. 계부의 폭행에 시달리던 16세의 장재열은 맨발로 집을 도망쳐나와 두 발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다시 한 쪽을 보니 역시 피투성이 맨발의 강우가 달려오고 있다. 똑같은 상처를 지니고 똑같은 차림새를 한 두 소년이 양쪽에서 달려오더니, 어느 순간 그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강우에게서 모순을 찾아내고 환시임을 깨닫게 되자, 비로소 강우가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재열은 그대로 해수를 찾아가 쓰러지듯 안기며 애원한다. "해수야, 강우는 가짜야. 강우는 절대 나일 수 없는데, 그 애는... 나야... 해수야, 나 좀 도와 줘. 나 좀 도와 줘!"

 

간절히 도움을 요청할 때 기꺼이 도와 주겠다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지해수는 눈물 범벅이 되어 장재열을 얼싸안는다. "잘했어, 잘했어, 이제 됐다, 장재열, 이제 됐다!" 얼마 후 재열은 적극적인 치료를 위해 다시 병원에 입원하고, 해수는 그에게 당부한다. "오늘 강우 만나면 꼭 전해 줘. 그 동안 많이 외로웠을 내 남자를 지켜줘서 내가 많이 고마워한다고... 그리고 이제는 자기 곁에 내가 있으니까 편안히 가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재열. 하얀 병실에 밤이 찾아오고 장재열이 홀로 있게 되자 어김없이 한강우가 또 나타났다. 피투성이 맨발을 애잔히 바라보다가 재열이 말한다. "발 씻자, 강우야!" 상처와 핏자국으로 얼룩진 두 발을 따뜻한 물로 조심스레 씻겨 주고, 해수가 선물한 깨끗한 양말과 운동화를 신겨 준다.

 

 

그런 장재열의 모습을 글썽한 눈으로 바라보던 한강우는 무언가 결심한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작가님, 이제 나... 오지 마요?" 그 해맑은 얼굴을 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껏 몇 차례나 느꼈지만 디오... 도경수...  연기 참 잘 한다. 아이돌인데다가 연기 경험도 없어서 전혀 기대 안 했었는데...) 장재열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던지 한강우를 바라보는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더없이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가엾고 미안하고...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가슴을 스쳐갔다. 왜 그랬던 걸까? 어쩌면 한강우는 어린 시절의 장재열일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동민이 장재열에게 말했다. "열 여섯 살 때 네 형을 범인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던 너 자신을 이해해야만 지금의 강우를 떠나보낼 수 있어. 잘잘못을 떠나 열 여섯 살의 네 행동을 이해 못 하면 강우는 또 나타날 거야!" 16세의 장재열은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친형 장재범(양익준)을 계부 살해범으로 지목했고 그 때문에 평생토록 죄책감에 시달렸다. 죄책감을 다른 말로 하면 '자신에 대한 미움'일 것이다. 애써 밝고 자신만만한 척 했으나 사실 장재열의 가슴 속은 썩어문드러진 자기 혐오의 감정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사정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의 이해를 받고, 좀 거칠었지만 형의 용서도 받고 나니, 스스로도 조금은 자신을 이해하며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니,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이란 얼마나 무력하고도 가여운 아이였던가! 미워하는 감정을 털어내고 보니, 그 아이는 전혀 혐오스럽거나 괴물같은 아이가 아니었다. 이렇게 작고 힘없고 무방비했던 그 아이를 오랫동안 미워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지경이다. 미안한 만큼 애틋하고, 애틋한 만큼 사랑스럽다. 상처투성이 발을 씻겨준 것은 바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용서한다는 뜻이었다. 그것만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기에... 언젠가는 나도 한강우 만큼이나 사랑스런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을, 내 가슴 속에 한평생 웅크리고 숨어 살아가는 그 작은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눈물이 쏟아진 이유는 아직 만나지 못한 그 아이가 문득 그리워져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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