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피리부는 사나이' 신하균, 괴물과의 전쟁을 시작하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피리부는 사나이' 신하균, 괴물과의 전쟁을 시작하다

빛무리~ 2016. 3. 8. 13:23
반응형

'협상극'이라는 매우 생소한 장르를 표명하고 시작된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1회는 제법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했지만, 전개 과정에는 허술함이 많았다. 특히 여명하(조윤희)의 캐릭터는 적잖이 답답해 보여, 민폐 여주인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짙어 보였다. 하지만 '협상전문가'라는 남주인공 주성찬(신하균)의 직업과 캐릭터는 매우 신선하고 뚜렷해서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소통 부재의 시대가 낳은 괴물 '피리부는 사나이'의 정체는 궁금증을 자극함과 동시에 진한 비극의 페이소스를 예감케 한다. 

잔인한 세상과 소통할 방법이 없는 약자들에게 '피리부는 사나이'는 '폭력'이라는 통로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릇된 방식의 소통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오직 파멸뿐이기에, '피리부는 사나이'와 손잡은 약자들은 가장 먼저 희생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자신의 원수 및 가해자에게는 별다른 피해도 입히지 못하면서, 아무 죄없는 애꿎은 희생자들을 추가로 양산해내기까지 한다. 결국 복수나 한풀이는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아무 소득 없이 죽어가며 저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중동 인질극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던 정현호(고윤)가 '피리부는 사나이'의 첫번째 먹잇감이었다. 

중동 파견 근무 중이던 K그룹의 직원 5명이 무장테러단체에 납치된다. 테러범들은 인질 5명의 몸값으로 500만 달러를 요구하는데, K그룹의 서건일 회장(전국환)은 자신의 최측근인 주성찬(신하균)을 보내 테러범들과 협상하게 한다. 그런데 서회장이 주성찬에게 내어준 가방 속에는 테러범들이 요구한 금액의 1/5에 불과한 100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황에서 주성찬은 나름 최선(?)의 계책을 짜낸다. 적은 금액에 분노한 테러범들이 충동적으로 인질 1명을 살해하면, 그것을 약점삼아 협상을 성공시키고 남은 인질 4명이라도 구해낸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주성찬의 예상대로만 진행되는지, 가방 속 돈의 액수에 분노한 테러범은 홧김에 인질 중 한 명인 정찬호를 쏘아 죽인다. 하지만 일을 저지르고 보니, 자칫 협상이 결렬되면 그나마 한 푼도 못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후회가 되는 모양이었다. 주성찬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훅 찔러 들어갔다. "당신이 인질을 쏜 순간 우리 거래는 끝났어!" 테러범이 말했다. "그래, 내가 물건 하나를 망쳤어." 주성찬이 외쳤다. "내가 사려고 한 물건은 5개가 한 세트야!" 테러범이 말했다. "깎아 줄게. 1개 값에 나머지 다 가져가!" 계획은 완벽히 성공했다. 

협상의 주도권을 잡은 주성찬은 인질 4명과 100만 달러를 교환하는 대신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협상 금액은 철저히 비밀에 부칠 것이며, 정찬호는 협상 중에 사살된 것이 아니라 풍토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발표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K그룹 서회장으로서는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다. 착한 회장님은 불쌍한 직원들을 구하기 위해 500만 달러씩이나 되는 거금을 쏟아부으며 테러범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구금 기간 중에 평소 앓고 있던 풍토병이 악화되어 죽은 사람은 물론 안타깝지만 회장님의 잘못은 아니었다. '서회장의 개' 주성찬은 눈부신 솜씨로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한 셈이다. 

정찬호의 시신은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두개골에 총상을 입은 시신은 그 자체가 거짓말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풍토병 전염을 두려워한 테러범들미 정찬호가 사망한 즉시 매장하고 말았다."며 주성찬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한 마디로 인터뷰를 마쳤다. 그러나 완벽할 수 있었던 작전에 한 가지 빈틈이 존재했다. 유가족이 진실을 몰랐다면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운 나쁘게도 정찬호의 친동생인 정현호가 그 참살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서 형의 죽음을 목격하고 협상 내용을 모두 들었던 정현호는 분노한다. 그 분노의 칼끝이 향한 대상은 바로 주성찬이었다.


주성찬의 애인 주은(김민서)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만나기 위해 주성찬이 그 곳을 방문하는 순간 레스토랑은 참혹한 테러의 현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폭탄 십여 개가 주렁주렁 매달린 조끼를 입은 정현호는 주은을 포함한 5명을 인질로 잡고 주성찬과 대치한다. "난 회사나 테러범들보다 네가 더 역겨워!" 정현호는 외쳤다. "나는 이 5명 중에 한 명을 죽이고 네 명만 풀어 줄거야. 누굴 죽여야 할지 네가 결정해!"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주성찬은 침착하게 협상을 진행했다. 

정현호의 심성 자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재빨리 간파한 주성찬은 그의 약한 마음을 이용했다. 죽일 사람보다 살릴 사람부터 정하자고, 5분마다 한 명씩 인질을 내보내는 것으로 협상하여 시간을 번 후 일단 어린애부터 구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나오다가 경찰청의 위기협상팀과 맞닥뜨리면서 오히려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위기협상팀의 오정학 팀장(성동일)은 가차없이 주성찬을 협상에서 제외시켰다. 인질범이 주성찬에게 화가 나 있다면 오히려 그가 눈앞에 없는 편이 나을 것이고, 게다가 애인이 붙잡혀 있는 상태에서는 냉정한 이성을 지키기가 어려울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아이를 데려간 후 주성찬이 돌아오지 않자 정현호는 더욱 분노하기 시작했다. 또 속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보기에도 그 협상은 계속 주성찬이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주성찬은 오정학 팀장의 명을 받은 경위 여명하(조윤희)에게 붙잡혀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남자 못지 않은 완력으로 주성찬을 제압하는 여명하를 보며 나는 정말 답답했다. 저 사람 빨리 돌아가서 다시 협상해야 하는데... 힘도 세고 일도 열심히 하는 여형사가 멋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몹시 멍청해 보였다. 여명하의 캐릭터는 눌변가이지만 공감 능력이 뛰어난 협상가라는데, 과연 얼마나 빛을 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정학 팀장이 정현호와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바깥쪽에 억류되어 있던 주성찬은 의문의 전화를 한 통 받게 되는데, 음산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피리부는 사나이'였다. 짐작컨대 정현호를 조종해서 정확한 시간에 맞춰 호텔 레스토랑으로 보내고, 구하기 힘든 폭탄까지 잔뜩 제공해 준 사람이 바로 그였을 것이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주성찬에게 협상 조건을 제시했다. 현장에 출동해 있는 방송사와 즉시 인터뷰를 진행하여, 중동에서 벌어졌던 인질극의 진실을 생방송으로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주은의 목숨을 염려한 성찬은 곧바로 인터뷰를 자청하여 '피리부는 사나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가감없는 진실을 고백함은 물론 진심어린 사과도 함께였다. 

하지만 그 인터뷰는 방송에 나가지 못했다. K그룹에서 빛의 속도로 막았기 때문이다. 주성찬은 최선을 다했지만 '피리부는 사나이'의 요구는 들어주지 못하게 된 셈이었다. 그 순간 폭탄이 일제히 폭발했고, 정현호는 물론 근접한 거리에 있던 주은과 오정학도 함께 즉사했다. 이 처참한 비극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중동 테러단체? 서회장? 주성찬? 정현호? 아니면 피리부는 사나이? 모든 상황과 인물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 한 쪽에만 책임과 원인이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주성찬은 애인을 잃었고, 여명하는 아버지처럼 존경하던 오정학을 잃었다. 하지만 '피리부는 사나이'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2의, 제3의 정현호를 조종하여 사건을 만들어낼 것이다.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폭력을 써서라도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피리부는 사나이'의 신념이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소통을 거부당한 약자들에게 '폭력'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현호 사건에서 증명되었듯이, 폭력을 이용한 소통은 또 다른 비극을 양산해낼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주성찬과 여명하는 힘을 합쳐 '피리부는 사나이'와 싸워야 한다. 과연 그들은 괴물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