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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해피엔딩' 구해준(권율)의 사랑이 안타까운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한 번 더 해피엔딩' 구해준(권율)의 사랑이 안타까운 이유

빛무리~ 2016. 3. 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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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1, 2회를 보았다가 의외로 빠져들어 꾸준히 시청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 더 해피엔딩'이 한국드라마의 고질병인 뒷심 부족을 극복할 수는 없을 듯하다. 생각지도 못한 로코의 재미에 흠뻑 젖게 만들었던 초반에도 사실 우려되는 부분은 있었다. 분명 남주인공은 송수혁(정경호)인데, 조연인 구해준(권율)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매력적으로 그려졌던 것이다. 어차피 여주인공 한미모(장나라)와 연결되지 못할 것을 아는데 너무도 심쿵하게 멋져 보이니, 이후의 전개가 설득력을 확보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아 보였다. 

우려는 적중했다. 물론 송수혁도 충분히 멋있지만 초반의 구해준 만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지는 못한 탓에, 한미모와 송수혁의 달달한 연애가 시작되었어도 나는 그에 빠져들기보다 구해준을 향한 안타까움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송수혁은 자상하고 섬세하고 헌신적이다. 게다가 외모와 능력까지 받쳐준다. 아내와 사별한 홀아비로서 아들이 하나 딸렸다는 것이 조건상으로는 빠지는 부분이지만, 그 아들이 워낙 의젓하고 속 깊으니 좋게 생각하면 오히려 플러스 요인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송수혁은 흔한 완벽남이라는 얘기다. 

그에 비해 구해준은 생각할수록 독특한 캐릭터다. 초반의 그는 친절하면서도 맺고 끊음이 분명한 젠틀맨이었고, 연애를 비롯한 인생의 신호를 정확히 지키는 모범 시민(?)이었으며, 일단 푸른 신호가 들어오면 과감히 돌진할 줄도 아는 열혈 남아였다. 쿨하고 담백하면서도 열정적인 그 남자에게 반하지 않는 여자는 필경 마음이 굳은 목석이거나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처음에는 송수혁보다도 구해준이 훨씬 더 완벽남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구해준에게는 치명적인 결핍이 하나 있었다. 

그 한 가지 결핍 때문에 구해준은 송수혁에게 패하고 만다. 해준이 갖지 못한 그것을 수혁은 넘치도록 가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가 모르는가 하는 차이였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한다. 자기를 버려야만 그 빈 자리에 상대방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이 자기 자신으로 꽉 차 있으면, 그 곁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상대는 결국 떠나게 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놓지 못하는 사람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해서 어찌 용서받지 못할 죄일까? 방법을 몰랐지만 한미모를 사랑한 구해준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오래 전 그녀가 '엔젤스'로 활동할 때부터 해준은 미모에게 반했고, 생전 걸그룹 사진 따위에는 관심도 없던 그가 오직 그녀의 사진만은 고이 간직했다. 그 후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30대 중반의 돌싱이 되어 만났다. 이석증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왔던 미모는 의사 해준에게 한 눈에 반해 거침없이 다가섰고, 해준은 선망의 대상이던 그녀의 대쉬에 설레면서도 단호히 거부했다. 

이유는 친구인 송수혁과 한미모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술에 취한 해프닝이었지만 송수혁과 한미모는 혼인신고까지 감행하려던 사이였기에, 그 문제가 명확해지지 않는 한 구해준은 한미모의 대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 마음이 끌린다 해서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빨간불인지 노란불인지 초록불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구해준의 반듯함과 신중함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시각에 따라서는 열정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남이야 상처받든 말든 자기 사랑만 소중하다는 식의 태도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수혁이 좀 더 일찍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면, 미모와의 관계를 묻는 해준의 질문을 받았을 때 좀 더 오래 생각하고 답변했더라면, 세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준은 자기 주변의 인간 관계를 언제나 말끔히 정리해 놓고 싶었지만, 언제나 남의 마음은 내 맘 같지 않고 인생이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신중한 구해준과 달리 한미모와 송수혁은 성급했다. 금사빠 기질이 다분한 한미모는 다가서는 속도가 너무 빨랐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동안 움츠러든 송수혁은 아니라고 부인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스물 한 살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아내를 잃는 그 모든 일을 경험한 송수혁은 일찍 철들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들이 찬란한 20대의 청춘을 만끽하고 있을 때, 아내도 없이 홀로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고 밤새 보채는 아기를 업어 재우며 수혁의 마음속에는 어떤 감정들이 오갔을까? 수혁이 감당해야 할 현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애 딸린 젊은 홀아비 송수혁과 그 아들 민우의 존재를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바람둥이였다는 둥, 사귀던 여자가 애만 낳아놓고 도망갔다는 둥, 근거 없는 헛소문을 퍼뜨리며 입방아 찧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해명하기도 언제부턴가는 지쳐버린 상황이었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다 보니, 송수혁은 자연스레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자기를 버리고 상대만을 위하는 희생 정신이 너무 지나쳐서 문제일 정도였다. 반면 구해준은 명색이 남자친구면서도 한미모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별다른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물론 연예부 기자였던 송수혁과 입장이 달라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적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이유가 더 컸다.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어떻게 안아주어야 하는지를 해준은 알지 못했다.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을텐데. 

결국 해준의 곁에서 쉴 곳을 찾지 못한 미모는 떠나고 말았다. 부쩍 다가온 이별을 예감하고 있던 해준은 자기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며 쿨한 태도를 보인다.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부지불식간의 배려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이별한 후, 미모는 자기에게 끝없는 섬세함과 희생적 사랑을 쏟아주는 수혁에게로 가버렸다. 뭐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나는 쿨한 척하면서도 속으로 상처받은 구해준이 안타까웠다. 표현하지는 못해도 그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구해준의 전처 우연수(황선희)는 아직도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미모를 왜 사랑하느냐고 우연수가 물었을 때 "그녀는 나를 웃게 해." 라고 구해준은 대답했다. 사랑하면서도 여전히 마음 속 중심은 '그녀'가 아닌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해준의 답변을 듣고 연수는 긴 한숨을 내쉰다. "너는 여전하구나." 하지만 그의 차가움에 질려 먼저 떠났으면서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연수는 아마도 해준의 운명적 짝일 것이다. 남들이 모르는 해준의 모습을 가장 잘 알기에, 누구보다 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우연수가 구해준을 폭넓은 이해와 사랑으로 안아 주었으면 좋겠다. 쿨하고 담담하고 강해 보이지만, 사실 구해준은 참 많이 외롭고 아픈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표현하지 못해서 차가워 보일 뿐, 그의 내면에도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있다는 것을 꼭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혼자 애태우며 속 끓이다 헤어졌던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고, 얼핏 차가워 보이는 그 마음의 문을 꾸준한 인내심으로 두드려 주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 문이 열리는 날, 더할 수 없이 행복해질 그 날을 소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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