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고해' 작곡 논란, 임재범은 왜 대응하지 않았을까? 본문
가수 임재범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열띤 환호성과 더불어 갖가지 논란이 따라다닙니다. 그가 입을 열어 몇 마디 말을 하거나 심지어 손가락 하나만 까딱 해도 여기저기서 각양각색의 다양한 반응과 예상치 못했던 잡음이 일어납니다. 한 가지 루머가 잠잠하게 해결되었나 싶으면 곧이어 제2탄, 3탄, 4탄의 더욱 혹독한 루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합니다. 이쯤이면 그만 멈추어도 될 듯 싶은데, 임재범을 흔들어대는 모진 바람은 도대체 아무리 기다려도 끝날 기미가 없군요. 한 사람의 존재가 이토록 어딜가나 태풍의 눈이 되다니, 확실히 범상치는 않은 운명입니다.
'나는 가수다'에서 하차한 것이 지난 5월 말의 일이니 벌써 7개월이나 흘렀는데, 아직도 '나가수'와 임재범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기만 하면 세상은 온통 시끄러워지니 기막힐 노릇이네요. 이번에 또 한 건이 아주 제대로 터지고 말았습니다. 새로 합류한 박완규가 2차 경연에서 부를 노래로 임재범의 '고해'를 선택하면서 이미 사건의 씨앗은 잉태되었군요. 임재범의 모든 노래가 거의 그렇지만 특히 '고해'는 임재범 특유의 색깔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임재범 아닌 다른 사람이 불러서는 그만큼의 감동과 만족을 줄 수 없기에, 모두의 기피곡 1순위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최고 난이도의 노래입니다. 박완규다운 겁없는 도전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소화해야 할 것인가는 크나큰 과제로 남았습니다.
박완규는 도움을 청하러 원곡 가수 임재범을 찾아갔고, 임재범은 기꺼이 후배를 맞아들여 몇 마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문제가 된 부분을 일단 미뤄두고,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깊게 들었던 임재범의 멘트를 먼저 언급해보고 싶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해'를 떠올리면 폭발적인 샤우팅으로 강력하게 부르짖는 남자의 목소리를 생각하는 듯한데, 오히려 임재범은 이 노래를 부를 때 "모든 힘을 빼야 한다"고 박완규에게 조언했습니다.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이건 질문이잖아. 고통을 이기다 못해 신 앞에 꿇어앉아 제가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묻는 거잖아. 이런 기도는 지쳐 쓰러져서 하게 되는 거지, 강력하게 할 수는 없어. 신 앞에 대항할 수는 없는 거니까, 모든 기도는 강력하지는 않아."
특별히 위의 멘트가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저 또한 신앙인이기 때문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떼어놓고 본다 해도 임재범의 조언은 뮤지션으로서의 박완규에게 알토란 같은 가르침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완규가 부르는 '고해'가 당당하게 사랑을 요구하는 승리자의 느낌을 주었다면, 임재범이 맛보기로 들려주는 '고해'는 허락받지 못한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는 패배자의 느낌을 주더군요. 물론 곡의 해석은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노래를 만들 때 원곡자가 지녔던 감정과 너무 동떨어지게 되면 감동은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박완규가 부디 찰떡같이 알아듣고 좋은 무대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지요.
그런데 방송 다음 날, 아주 짧은 몇 마디로 지나갔던 '작곡'에 대한 부분이 논란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임재범은 이 노래를 만들 때 우울증으로 몹시 힘든 상태였고, 회사와의 약속으로 앨범을 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급하게 곡을 쓰다 보니 겹친 설움에 한꺼번에 멜로디가 터져나왔다고 했습니다. 작곡을 '나 혼자' 했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자막에도 그렇게 표현되지는 않았습니다. 특별히 공동 작곡자 송재준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방송의 맥락상 느닷없이 그런 내용이 들어갔다면 무척이나 이상했을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송재준 작곡가는 다음과 같이 대응했습니다. 그는 일단 주장하기를, '고해'는 본인이 작곡한 노래로 1996년도에 가수 미정일 때부터 준비를 하던 곡이라고 했습니다. 이후 1년 뒤인 1997년. 임재범을 만나 같이 작업하면서 임재범의 '고해'로 재탄생됐다는 것입니다. 이 곡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임재범과 공동 작곡으로 명기되어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처음 임재범 소속사에서 공동 작곡으로 요구를 해왔지만 불가 통보를 했었고, 한때 신변상 문제로 오랫동안 해외에 나갔다 들어왔는데, 이후 확인을 해보니 공동으로 저작권 등록이 돼 있었다. 황당했지만 세월이 지났고 가수와의 친분으로 묵과해 왔다" 고 설명했군요. 이 말이 모두 맞다면 임재범과 그 소속사는 파렴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적 재산 도둑들'이 됩니다.
송재준은 임재범 혼자서 '고해'를 작곡한 것처럼 방송에 내보낸 '나가수'에 분노를 표출하며, '고해'의 저작권자로서 '나가수' 방송프로그램의 노출과 리메이크 사용을 금하고 재편곡 작업 역시 금해주길 당부한다고 (처음에는) 그렇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혹시라도 그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충분히 분노할만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 임재범이, 방송 중에 그렇게 뻔하고 망신스런 거짓말을 했을까? 어차피 머지않아 들통날 일인데, 무슨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태연한 얼굴로 남이 작곡한 노래를 자기가 만들었다고 했을까? 아무래도 임재범의 이미지와는 너무 걸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주먹을 휘둘렀다는 루머가 더 믿을만했어요..;;
또 이상한 부분은 이렇듯 강경하던 송재준 측에서, 그 날 저녁에 곧바로 태도를 바꾸며 '나가수' 제작진과 좋게 해결하기를 바란다는 방향으로 급선회를 한 점이었습니다. "박완규씨가 '내 노래'를 불러 주어서 사실은 기쁘게 생각한다. 선배 작곡가로서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지 말라는 뜻에서 나선 것일 뿐, 악의는 없다" 는 식의 온유한 대응으로 갑작스레 바뀐 것은 좀 이상했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당당하지 못해서 그러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당시 '고해'의 음반 작업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관련 기사 링크) '고해'의 멜로디 라인은 분명 임재범이 만들었으며, 임재범이 악보를 그리지 못해서 작곡가 송재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임재범을 만나기 1년 전부터 '고해'를 혼자 작곡했다는 송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그는 밝혔습니다. 더우기 그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당시 유명 작곡가도 아니었던 송재준이 앨범에 참여하게 된 이유조차 임재범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임재범의 소속사 측에서는 처음부터 송재준에게 공동 작곡자 역할을 요구했고, 송재준 역시 합의하에 앨범 작업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곡이 발표되기 1년 전부터 단독으로 작곡했었다는 주장을 펼치니 어이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러자 송재준 측에서는 재빨리 말을 바꾸었습니다. (관련 기사 링크) "임재범이 '고해' 공동 작곡가로 표기돼 있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멜로디를 그렸다고 모든 것을 작곡한 것처럼 언급한 임재범과, 이를 편집해서 내보낸 '나가수' 제작진에게 섭섭함을 표출한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1년 전부터 혼자 작업했던 노래라는 둥, 임재범 측에서 공동 작곡자 제의를 했지만 거절했다는 둥, 해외에 나갔다 돌아오니 떡하니 그렇게 되어 있었다는 둥, 억울했지만 가수와의 친분 때문에 꾹 참았다는 둥 했던 이전의 말들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습니다.
송재준의 구구절절한 변명은 수없이 또 이어졌지만 (관련 기사 링크) 이에 관해서는 제가 언급할 말이 없습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고해야 하는지를 누가 모릅니까? 탄생한 작품은 그 모두의 것입니다. '실미도' 촬영에 참여했던 말단 조명 스태프 한 명이 "실미도는 내가 만든 영화다" 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대중예술은 원래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합쳐져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말단 스태프도 이름없는 엑스트라도 '자신의 영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이건 내가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어차피 공동 작곡자임이 공식적으로 명기되어 있는 상황에서, 임재범의 말 때문에 누가 오해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이 난리를 쳐야 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사실상 음표를 그리고 디테일을 추가한 사람보다야 기본 멜로디를 생각해낸 사람을 더 작곡자라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정말 답답한 것은 말이죠. 이렇게 억울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맨 처음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임재범은 '할 말 없다' 면서 일체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명을 쓰고도 스스로 해명하지 않으면 '묵인'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세간에 '싸움'과 관련된 이미지로 비춰지기는 더 이상 싫었던 걸까요? 대응을 하면 싸우게 되니까,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맞고만 있자... 그랬던 걸까요?
급기야 '고해'의 작사를 담당했던 채정은마저 나서서 임재범을 변호하며 (관련 기사 링크) 이번 사건은 대충 일단락되는 듯 싶습니다. 채정은 작사가는 비록 완곡한 표현으로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이 격해지지 않도록 조절하고는 있지만, "난을 치는 선비 곁에서 몇 날 며칠을 잠도 안자고 먹을 갈았다 해서, 그 난을 본인이 친 것이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는 발언으로, 송재준의 역할도 분명 있기는 했지만 역시 '고해'의 작곡자는 임재범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증언해 주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임재범은 이런저런 잡음에 휘말리며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걸까요? 물론 본인의 범상찮은 성격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심합니다. 그저 팔자려니 운명 탓을 하기에도 이 정도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세상이 그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임재범을 사랑한 세상, 독수리를 새장에 가두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 세상은 그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질투도 하고 있었군요. 사랑과 질투는 언제나 함께 붙어 다니는 거라서 어쩔 수 없는 걸까요?
노래 속에 영혼을 담고 싶어도,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글 속에도, 그림 속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안의 끓어 넘치는 감정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능력이 없어서 그걸 못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질투심이 생기지요. 노래쟁이 중의 노래쟁이... 타고난 음색과 훌륭한 창법과 기타 등등을 모두 제외한다 해도, 그 목소리 안에 영혼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능력만으로도 모두가 질투할 수밖에 없는 노래쟁이 임재범... 그래서 이렇게나 매일매일 시끄럽고 위태롭고 힘든 걸까요?
하지만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임재범의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되면, 질투심에 그를 괴롭히던 사람들은 속이 시원할까요? 강렬한 미움과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진대,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들이 가장 허전하고 슬프지 않을까요? 좀 생뚱맞은지도 모르지만, 문득 김용택 시인의 싯귀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그러게요. 사람들은 왜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른다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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