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라디오스타' 로커 김경호가 국민언니 된 이유 본문
'무릎팍도사' 한테 10~20분 가량의 시간을 빌어 간신히 셋방살이하는 것처럼 보이던 '라디오스타'가 일약 1시간 짜리 프로그램으로 재편성되었을 때, 과연 그 특성을 잘 유지하며 재미있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현재 '라디오스타'는 예전보다 훨씬 재미있고 화려한 메이저 예능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전반부의 토크에 이어 후반부의 '고품격 노래방'이 추가되면서, 예전부터 농담삼아 자부해 왔던 '고품격 음악 토크쇼'의 분위기도 제대로 살아나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국민로커 김경호와 발라드의 신 김연우를 초대하여 깨알같은 토크와 질 높은 음악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었던 이번 주 방송은 속속들이 재미로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개그맨 정성호와 장재영도 함께 출연했지만, 명실상부한 토크의 중심은 김경호였습니다. 한 때 개그맨 시험을 본 적도 있었다는 김경호의 예능감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여느 때처럼 4MC들의 독한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재치있게 받아내는 김경호의 유려한 말솜씨는 역대 어느 출연자보다 돋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김경호가 노래부를 때 "그럴 듯했어"라는 부분을 약간 사투리 섞인 발음으로 "그럴 드댔어" 라고 불렀다며 윤종신이 콕 집어서 놀리자, 한 술 더 떠서 "그래서 저는 노래할 때마다 조심해야 해요. 특히 '어' 발음이 들어가면 '어떻게'를 '으뜨케'라고 부르거나 '러브'를 '르브'라고 부를 때가 있거든요. 항상 조심해야 해요" 라고 받아내는 식이었습니다.
긴 생머리와 가냘픈 체격 때문에 여자로 오해받았던 수많은 경험들도 재미있는 토크 소재였습니다. 15년 전쯤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변태로 오해받아 경찰서에 끌려갔던 일이며, 지하철에서 성추행 당했던 일 등 결코 유쾌하지 않았을 경험들인데도 김경호는 특유의 유쾌한 어조로 풀어내더군요. 참다 못해 추행범의 손을 덥석 잡고 "아따, 취향 독특허쇼잉?" 하고 말했다는 부분에서는 정말 통쾌해서 폭소가 터지더군요. 가냘픈 아가씨 입에서 느닷없이 지방색 강한 남자의 거친 말투가 툭 튀어나왔으니, 추행범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다음부터는 그런 짓을 차마 못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긴 머리 스타일은 로커이기 때문에 고수하는 것일 뿐 내면적 성향은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이제는 자신을 '국민언니'보다 '상 남자'(?)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김경호는 말했습니다. 시스타 효린의 노래하는 모습이 가슴에 꽂혀 버렸다면서 그녀에게 짧은 영상편지를 보내기도 했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민언니' 캐릭터를 놓치고 싶지 않은 기색도 역력히 내비쳤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매력을 '중성틱한 면'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나가수'의 동료들 중 누가 가장 신경쓰이는 라이벌이냐는 질문에는 주저없이 인순이와 김윤아를 손꼽으며 여자 가수들에게만 경계심(?)을 드러냈거든요..ㅎㅎ
하지만 김경호의 본심이 가장 잘 드러났던 토크는, 과거 박완규와의 다툼을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두 사람은 데뷔 시기도 비슷하고 함께 고생했던 터라 막역한 사이였는데, 김경호가 걸그룹 핑클의 '나우'를 리메이크했을 때 박완규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답니다. 하지만 록도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흥겨운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김경호는, 로커들 스스로가 그것을 너무 대단한 음악인양 하는 것이 싫었다는군요.
"형이 어떻게 록 정신을 버리고 그럴 수가 있어?" 하며 흥분하던 박완규에게 김경호는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내 노력이 뭐가 잘못됐니? 난 너의 그 정신이 더 썩은 것 같아!" 라고 받아쳤답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순해 보이는 김경호에게 그런 면이 다 있었군요. 역시 로커는 로커인가 봅니다. 록이 결코 얌전하거나 순한 음악은 아니니까요..ㅎㅎ 그렇게 대판 싸우고 나서 연락마저 뚝 끊고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는데, 어느 날 박완규가 불쑥 찾아와서 말하더랍니다. "형, 나랑 같이 방송해요*^^*" 그렇게 화해는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지금 모두 알다시피 폼생폼사 로커 박완규는 '남자의 자격'을 비롯한 각종 예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요.
록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김경호의 모습은 상당히 진지했습니다. 언제나 대중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 음악이라는 그의 신념은 더없이 굳건해 보였어요. 그는 로커들이 자신의 음악에 대해 지나친 우월감을 갖거나 타 장르 음악을 무시하는 것을 매우 경계했으며, 심지어 대중음악에 있어서는 굳이 장르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부르며 춤을 추었을 때도 여기저기서 말이 많았지만, 김경호는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친 헤비메탈로 편곡했으니 대중이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춤을 추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록에 대한 좋은 반응도 이끌어낼 수 있었기에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중국집에 전화해서 음식을 시킬 때조차 꾸벅꾸벅 공손하게 인사하며 주문할 만큼, 일상 생활 속에서도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다는 친근한 로커... 자기 자신을 가리켜 상 남자라고 주장하지만 왠지 옆집 언니처럼 느껴지는 따뜻한 로커... 거친 헤드뱅잉과 폭발적인 샤우팅을 하고 있어도 무섭지 않고, 언제나 손만 뻗으면 친구처럼 붙잡을 수 있을 듯한 다정한 로커... 이렇게 특별한 로커 김경호의 색다른 매력을 듬뿍 만끽할 수 있었기에 참 즐거운 '라디오스타' 였습니다. 김경호가 결국 우리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의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여러분, 록은 결코 살벌하거나 무서운 음악이 아닙니다. 록은 우리를 즐겁게 하고, 미소짓게 하는 음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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