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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대상, 유재석 비로소 제 자리를 찾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SBS 연예대상, 유재석 비로소 제 자리를 찾다

빛무리~ 2011. 12. 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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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연말마다 각 방송사에서 개최되는 연기대상이나 연예대상 등의 시상식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평소 TV 연예에 관심이 많고 드라마와 예능을 무척 좋아하지만, 저 같이 평범한 시청자 입장에서 시상식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언제부턴가 하기 시작했거든요. 어차피 그들만의 공간에서 그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일...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동료들끼리 서로 힘내라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1년에 한 번씩 여러가지 상을 만들어 골고루 나눠갖는 것... 시상식을 그런 정도로 인식하면서, 저는 그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나 예능 등의 작품을 즐기면 그뿐이지, 누가 상을 받고 안 받는 문제까지 신경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좀 뒤늦은 관심이 생기더군요. KBS 연예대상에서 '1박2일'이 대상을 차지하며 일어났던 갖가지 불협화음이 우선 호기심을 끌었습니다. 개인이 아닌 프로그램에게 대상을 준 경우가 KBS에서는 최초였을 뿐 아니라, 미리 발표되었던 대상 후보 명단에도 '1박2일'은 올라 있지 않았다는 점... 출연자는 다섯 명인데 트로피는 한 개였다는 점... 명실상부한 달인이며 '개그콘서트'의 영웅으로서 강력한 대상 후보였던 김병만이 무참하게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점... 유재석 뿐만 아니라 그가 진행하는 '해피투게더' 팀이 한 개의 상도 받지 못함으로써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점 등등, 올 연말 KBS 연예대상은 유난히 뒷말도 많고 후폭풍이 거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짐작컨대, 한 개의 대상 트로피에는 아마도 이승기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겠느냐 하더군요. 강호동의 잠정 은퇴 후, 국민예능 '1박2일'의 메인 MC 자리를 이어받아 무리없이 이끌어 왔으니 그 공로를 치하하고, 또한 시즌2를 대비하여 붙잡아 두려는 뜻이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승기가 '1박2일' 시즌2 합류를 단호히 거절하고 타 방송사의 새로운 예능에 출연을 약속했다는 강력한 소문이 돌면서, 부랴부랴 그의 단독 대상을 취소하고 '1박2일' 팀 전체에게로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냐고들 했습니다. 김병만이 푸대접을 받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KBS에 몸 담고 있던 개그맨으로서 기존의 공로가 크지만, 그 또한 점차 타 방송사로 활동 무대를 옮기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배신자처럼 낙인이 찍혔을 거란 얘기죠.

이런 짐작들이 과연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지만,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원래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들끓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방송사 입장에서 볼 때, 이미 떠난 사람이라고 간주되면... 즉 이제까지의 공로가 아무리 크다 해도 앞날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면, 굳이 그 연예인에게 대상의 영광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굉장히 치사하고 공정하지 못하지만, 세상이 뭐 그런 거지 싶기도 했습니다. 다만 괘씸죄가 적용될 이유도 전혀 없는 유재석이 푸대접을 받은 것은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그의 '해피투게더'는 공중파 방송 3사를 통틀어 거의 최장수 예능으로서 아직도 건재한 위상을 뽐내며,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는데 말이죠. 

시상식에 워낙 별 관심 없는 저는 그 다음에 방송된 MBC 연예대상도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상식이 끝난 후 엄청난 비난과 뒷말들이 난무하기 시작한 것은 MBC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상은 원래 개인에게 주는 것이 명백한 관례였는데 갑자기 프로그램에게 주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는 사실이 우선 도마에 올랐습니다. 올 한 해 MBC의 짭짤한 수입원이었던 '나는 가수다'에 상을 돌리기 위한 꼼수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나가수'는 사실상 예능의 탈을 쓴 음악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지라, 그 중 누구 한 사람을 콕 집어서 대상을 줄 수가 없었을 테니까요. 출연 가수들 중에서도, 개그맨 매니저들 중에서도 결코 연예대상에 적합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가수'의 대상 수상보다 더 큰 잡음의 원인은, 유재석에게 최우수상을 준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무게에 걸맞지도 않는 최우수상은 오히려 유재석을 모욕한 거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대상을 주지 않을 거면 차라리 무관의 제왕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였는데, 최우수상을 준 것은 유재석을 두 번 죽이는 행위였다고들 하더군요. 유재석 본인도 무척이나 민망한 기색을 내비쳤다고 합니다. 본의 아니게도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다른 누군가를 자신이 밀어내게 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유재석 뿐만 아니라 그 외 '무한도전' 멤버들도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무시당하는 형국이었다더군요. 하지만 최근 시사 풍자적인 예능으로 걸핏하면 방통위의 견제를 받는 '무한도전' 이니만큼, 방송사의 그러한 처사는 어쩌면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KBS와 MBC 양사에서 모두 푸대접을 받고 희생양이 되어버린 유재석의 입장은, 나중에서야 그 뉴스들을 접한 제 마음속에도 적잖은 불쾌감을 일으켰습니다. 유재석의 공로가 방송 3사 어느 곳에서도 무시당해서는 안 될 수준의 것임을, 이성적으로 따지면야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원래 시상식에 별 관심도 없고 그들끼리 나눠갖는 상 따위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아무리 치사한 세상이라지만, 유재석 같은 사람을 이렇게 대접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SBS 연예대상을 일부러 시간 맞춰 챙겨 본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는 그래도 유재석의 대상 수상이 거의 확실시된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적어도 한 군데에서만은 그 이름에 걸맞는 대접을 받는 모습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다행히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예상했듯이 2011년 SBS 연예대상은 '런닝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유재석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작년 여름에 시작된 '런닝맨'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낮은 시청률과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였지만, 유재석은 특유의 끈기와 성실함으로 결국 존폐의 위기까지 몰렸던 프로그램을 멋지게 일으켜 세웠습니다. 지금 '런닝맨'의 출연진들은 한류 열풍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며 K팝 가수들의 인기를 능가하고 있더군요.

유재석의 수상 소감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현재까지 줄곧 함께 달려온 동료들 뿐만 아니라 예전에 함께 하다가 그만둔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잊지 않고 언급하던 부분이었습니다. "힘든 시기에 고생만 하다가 간 리지와 송중기에게도 정말 감사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좀 더 버틸 수만 있었다면 지금의 이 영광도 함께 나누었을텐데, 그러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떠난 것이 못내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어조였습니다. 그의 모든 말 속에서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진심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멤버들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한편 최우수상은 '키스앤크라이' 및 '정글의 법칙'의 김병만과 '강심장'의 이승기에게 돌아갔습니다. 유재석과 더불어 대상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역시 그들에게 꼭 맞는 자리는 최우수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친정격인 KBS에서 매섭게 팽 당하고 무척이나 서러웠을 김병만에게는 이 상이 적잖은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본인도 수상 소감을 할 때 "다른 방송사 와서 프로그램 하면 신인상부터 시작하는데 너무나 큰 상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고 말하더군요.

'붕어빵'과 '힐링캠프'를 진행하며 마지막 대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이경규는 프로듀서 MC 상을 받았는데, 이 또한 적절한 수상이었다고 판단됩니다. 올해 방송 3사의 연예대상 중에서는 확실히 SBS가 가장 공정하고 깔끔하고 훌륭한 시상식을 치러낸 듯 싶습니다.

유재석이 방송 중에는 좀처럼 아내를 향한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렇게 좋은 상도 받았으니 모처럼 아내에게 영상 편지를 띄워 보라고 MC들이 짖궂게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유재석은 평소의 능수능란한 모습과 달리 몹시 쑥스러워하더군요. 한 손에 트로피를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늘 시켜만 봤지, 제가 이런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라며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아주 간신히, 경직된 어조로 짧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나경은 씨, 고맙고 사랑합니다!"

그러고도 어찌나 민망해하는지, 그 순간만은 유재석이 국민 MC도 아니고 연예대상 수상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투박하고 짧은 사랑 고백에 아내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아니, 아내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만큼...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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