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기생 (8)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구가의 서'(九家의 書) 제1회에서 주인공 최강치(이승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비극적 운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최강치는 아직 이 세상에 첫 숨결을 내뱉기도 전이건만, 아비 구월령(최진혁)의 마음속에 어미 윤서화(이연희)에 대한 사랑이 싹트는 순간, 이미 그의 모진 운명은 잉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태초부터 미리 계획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가장 뜨거운 용기와 긍정의 힘으로 절대 금기를 넘어 사랑을 이루는 최강치의 모습을 통해, 신은 이 땅의 나약한 인간들을 깨우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이 세상의 어떤 금기(禁忌)도 장벽도 사랑보다 강한 것은 없음을, 신분의 고하도 남녀의 차별도 심지어 인간과 짐승의 구별조차도 사랑보다 우선할 수는 없음을, 이 세상에 태어..
한동안 본의 아니게 민폐녀로 찍혔던 여주인공 목단(진세연)의 캐릭터가 드디어 제 역할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터뜨린 한 방이 무척이나 시원했던지라, 앞으로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따지고 보면 이제껏 별로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목단이 민폐녀처럼 보였던 것은 그녀 때문에 남자 주인공들이 수차례씩이나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죠. 여인으로서도 용감무쌍한 것은 얼마든지 좋으나 스스로 자신을 지킬 능력도 없으면서 걸핏하면 대책없이 튀어서 위험에 빠지니, 그녀를 사랑하거나 정의감에 넘치는 조선 남자들은 별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서 목단을 구해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를테면 이공의 장례식에서 다짜고짜 영정에 돌을 던진 목단은 요령있게 달아나지도 못하고 즉시 체포될 위기에..
여주인공 세령(문채원)은 이제 슬슬 민폐 캐릭터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승유(박시후)의 형수와 조카딸 아강이는 노비의 신세가 되어 원수의 일당 중 한 명인 온녕군(윤승원)의 집에서 일하게 되는데, 세령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가엾은 모녀를 구해 승법사로 피신시킵니다. 역적의 수괴로 몰린 김종서(이순재)의 가족을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다른 사람이라면 죽을 위기에 처할 것이나, 수양대군(김영철)의 딸인 세령으로서는 자신의 안위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요. 하지만 어쨌든 이 정도의 활약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령은 더 이상 민폐 캐릭터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김승유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자기 목에 칼을 들이대고 죽겠다는 협박(?)으로 아비를 설득하려던 모습도..
단공주(백옥담)는 그 동안 제가 '신기생뎐'에서 매우 예뻐하던 캐릭터입니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젊은이들의 캐릭터가 건실하게 자리잡혀 갔지만, 돌이켜보면 초반에는 다들 좀 이상했습니다. 단사란(임수향)은 너무 얄미울 만큼 여우같은 기질을 보였고, 금라라(한혜린)는 이기적이고 전형적인 공주였으며, 아다모(성훈)는 오갈데 없는 자뻑왕자였습니다. 그래서 단공주의 시원시원한 기질이 더욱 돋보였지요. 그녀의 생모 지화자(이숙)는 팥쥐엄마보다 더 못된 계모였지만, 단공주는 그런 엄마를 전혀 닮지 않아서 더 예뻤습니다. 의붓언니 단사란이 부용각으로 들어가 기생이 되겠다고 했을 때 안된다고 울며불며 매달리다가, 자기 힘으로 말릴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급기야 언니의 손등을 물어뜯으면서까지 결사적으로 만류하던 단공주의 모..
'신기생뎐'이 아주 많은 문제점을 지닌 드라마임은 확실합니다. 가장 큰 막장요소로 지적받고 있는 것은 역시 '기생'이라는 여주인공의 직업으로 인해, 현실에 존재하는 텐프로들의 삶이나 팁 문화 등이 모두 정당한 것으로 미화될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혹시라도 막장드라마의 필수 요소를 하나라도 빠뜨릴까봐 신경쓴 것처럼, 여기저기 복잡한 출생의 비밀과 불륜 코드마저 세심하게 채워넣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고전에서나 볼 수 있던 식상한 설정으로, 의붓딸을 구박하는 못된 계모마저 등장합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신기생뎐'은 욕 먹어 마땅한지도 모르겠군요. 이 드라마에 관한 기사만 떴다 하면, 온통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의 지독한 비방으로 댓글란이 채워집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드라마를 왜 빨리 끝내지 않느냐는 식..
저는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자극적이고 막장스럽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재미있고 독특해서 좋더군요. 무언가를 새로이 만들어낼 때 식상하지 않게, 뻔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임성한의 드라마는 언제나 소재에서부터 보기 드문 독특함을 자랑합니다. 괴상한 인물들도 참 많이 등장하고,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도 많아서 그때마다 욕을 먹곤 하지만, 어쨌든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온갖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그 중에 정말 재미있는 것을 찾기란 백사장에서 금조각 찾기인지라, 맑고 고상하지는 못해도 일단 재미있는 임성한의 드라마를 저는 매번 기다리곤 했습니다. 때로 악역을 맡은 인물이 청산유수로 풀어놓는 대사들은 상당히 억지스럽고 궤변스러워서 기를 막히게 하..
'신기생뎐'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온갖 혹평이 난무하며 막장 논란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임성한 작가 특유의 톡 쏘는 재미를 기대하며 좀 더 지켜볼 생각입니다. 홈피를 장식한 문구는 "전통을 지켜나가는 자존심 강한 그녀들" 이지만, 아직까지 저의 인식은 "그래봤자 해어화(解語花)"라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야 문화가 그러하니 사정이 달랐다 하겠지만, 이 시대에 자존심 강한 여성이 선택할 직업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따지면 소재 자체에 거부감이 든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 풀어 나갈지가 궁금하기에 저는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 막장 드라마답게(?) 초반부터 이 작품 전체를 휘어싸고 있는 것은 '출생의 비밀'입니다. 그것도 단순하지 않게 몇 겹으로 포개져서 좀처럼 그 ..
'성균관 스캔들' 5회와 6회를 온통 단조로운 활쏘기 장면으로 메꾸게 만들었던 대사례가 드디어 7회에서 끝이 났다. 역시 장원은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악의 세력을 물리친 탕평접이었다. 탕평접이란 노론 이선준, 소론 문재신, 남인 김윤식이 함께 함으로써 당색을 뛰어넘은 팀이라는 뜻이다. 악의 세력을 대표하는 장의 하인수는 최고의 실력을 지녔으나 기생 초선에게 한눈을 팔다가 마지막 화살이 빗나가 5점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김윤희는 하인수의 지시를 받은 임병춘이 활시위에 온통 유리가루를 묻혀 놓은 탓에 손이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으나, 초선이가 감아 준 손수건의 힘을 입어 이를 악물고 홍심을 명중시킨다. 초선이는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던 걸까? 필요 이상으로 오래 끌던 대사례가 이렇게 극적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