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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생뎐' 단사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그늘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신기생뎐

'신기생뎐' 단사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그늘

빛무리~ 2011. 3.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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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자극적이고 막장스럽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재미있고 독특해서 좋더군요. 무언가를 새로이 만들어낼 때 식상하지 않게, 뻔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임성한의 드라마는 언제나 소재에서부터 보기 드문 독특함을 자랑합니다. 괴상한 인물들도 참 많이 등장하고,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도 많아서 그때마다 욕을 먹곤 하지만, 어쨌든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온갖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그 중에 정말 재미있는 것을 찾기란 백사장에서 금조각 찾기인지라, 맑고 고상하지는 못해도 일단 재미있는 임성한의 드라마를 저는 매번 기다리곤 했습니다.


때로 악역을 맡은 인물이 청산유수로 풀어놓는 대사들은 상당히 억지스럽고 궤변스러워서 기를 막히게 하지만, 생각해 보면 현실에도 언제나 그렇게 뒤틀린 시각을 가진 채 확신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늘이시여'의 배득(박해미)과 같은 인물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있을법하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분명히 있었고, 평범한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거짓말같은 일들이 현실 속에서 버젓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임성한의 드라마는 겉보기에 매우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곰곰히 내용과 주제를 생각해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메시지를 던질 때가 많았습니다.


'신기생뎐'의 주인공 단사란(임수향)은 요즈음 막장스런 운명의 그늘로 급격히 내몰리는 중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기막힌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날까 싶어서, 말도 안되는 억지 설정이라며 욕이 튀어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긴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단사란처럼 삽시간에 일어난 비극적인 일들에 휘말려, 거짓말처럼 삶 자체가 바뀌어 버린 사람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사실 지금도 무슨 재난 영화 속에서나, 혹은 성경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인류 최대의 비극이, 바로 옆나라인 일본에서 천재지변으로 인해 실제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일들이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단사란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억지스럽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가슴이 섬뜩 내려앉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단순한 성품의 사람을 선호하는지라, 임성한의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보석비빔밥'의 궁비취(고나은)만은 유일하게 곧이곧대로인 성격을 지녔으나, 그 외에 임성한이 내세웠던 여주인공은 항상 눈치가 빠르고 처세술에 능한 여우 스타일이었거든요. 겉으로는 굉장히 얌전하고 참해 보이는데, 속으로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일 줄 아는 똑똑한 여자들 말입니다. 그녀들은 매우 다재다능한 매력을 지녔으며, 진짜 괜찮은 남자를 알아보는 안목도 지녔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도 알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특성들인데, 아무래도 저 자신이 융통성없고 뻣뻣한 스타일이다보니 그녀들의 유연함이 얄밉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후훗~


단사란을 보는 저의 눈길도 그리 곱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남주인공 아다모(성훈)의 마음을 사로잡아가는 과정에서 그녀는 얼마나 여우같았는지... 조용히 한 발 물러서는 척 하면서 성큼 두 발 다가서는 그녀는 내숭과 밀당의 고수로서, 적당한 시기에 고삐를 조였다가 풀었다가 할 줄을 알더군요. 제 눈에는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처세술이 능해도 불가항력적으로 몰아치는 운명의 바람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음을 보니, 얄밉다고 느끼던 감정은 눈녹듯 사라지고, 그녀를 가엾이 여기며 몰입하게 되더군요. 굉장히 이기적이고 치사스런 감정임을 인정하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저같이 눈치없는 곰팅이들도 어떻게든 이 살벌한 세상 속에 끼어들어 살아가야 하는데, 너무 똑똑한 사람들만 잘 되는 이야기를 보면 괜시리 서럽거든요. 후훗~  

단사란의 비극이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앞에까지 바짝 다가왔던 최고의 행복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그 대신 엄청난 불행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이 맞는 것인지, 마치 힘 센 누군가의 손이 동전을 삽시간에 뒤집어 버린 것처럼 단사란의 인생은 어이없이 뒤집혀 버렸습니다.


단사란은 갓난아기 때부터 기구한 운명으로 핏줄이 섞이지 않은 남의 집에서 자라기는 했으나, 지금까지는 꽤나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자신이 업둥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할 만큼 양부모에게서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명문가의 딸 금라라(한혜린)와 같은 대학 무용과에 다녔을 만큼 학벌도 좋은 편입니다. 집안이 좀 가난한 것만 빼면, 눈부신 미모에 참한 교양에 눈치빠른 처세술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재원이었습니다.

재벌의 아들인 다모는 그녀에게 홀딱 반해서 매달리는 중이고, 그 남자의 할머니가 사란을 특별히 예뻐하면서 꿈만 같은 결혼도 이루어질 수 있을 듯 보였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친아버지인 금어산(한진희)원장 댁에서도 핏줄을 찾아 헤매며 아주 가까이 손길을 뻗어 온 참이었습니다. 단사란은 부유한 병원장집 딸이라는 원래의 위치를 되찾음과 동시에, 재벌가의 외아들과 결혼하는 행운까지 이제 곧 누리게 될 찰나였습니다.


그러나 단사란을 손주며느리감으로 생각할 만큼 예뻐하던 아다모의 할머니는 갑자기 숨을 거두었고, 자기 뜻대로 결혼할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한 아다모는 단사란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한편 단사란의 얼굴을 보고 자기네 핏줄임을 확신하던 친할아버지 금시조(이대로)마저, 잃어버린 손녀를 찾으려고 밤낮으로 애태우던 중 돌연히 사망하고 맙니다. 하필 단사란이 혼자 그 임종을 지켰으니 소름 돋게 얄궂은 운명이군요. 어린 단사란을 직접 데려갔던 양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이제 단사란이 금씨 집안 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병원장집 딸도, 재벌가의 며느리도, 삽시간에 물 건너 갔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거의 손에 잡힐 듯 다가왔던 행운을 단사란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겁니다.

설상가상, 단사란의 새엄마는 부용각 주방에서 일하며 기생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보고 혹한 나머지, 의붓딸인 단사란을 기생으로 만들 결심을 굳힙니다. 원래 단사란의 양아버지는 작은 사업체를 순조롭게 운영하고 있어서 결코 가난하지 않았는데, 단사란의 양엄마가 병들어 죽고 새엄마를 맞이하면서 급격히 가세가 기울었던 것입니다. 이 탐욕스런 중년 여인은 무리하게 빚을 내어 식당을 운영하다가 전재산을 말아먹었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월세를 자그마치 120만원이나 내면서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단사란이 은성그룹 외아들과 교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새엄마는 뛸듯이 기뻐하며 지극정성으로 잘해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음을 알게 되자 못된 본성을 드러내며 사란에게 기생이 될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게 왜 은성그룹 아들을 놓쳐, 이 빙*아!"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지요. 고고한 성품의 단사란은 딱 잘라 거절하면서, 자기는 반드시 정식 무용가가 되어 무대에 설 거라고 단언합니다. 마음속으로는 아빠가 설마 새엄마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예고편을 보니 최후의 보루였던 아빠마저 단사란의 편이 아닌 모양입니다. "아빠... 정말 아빠 맞어?" 믿을 수 없다는 듯 울먹이며 아빠를 바라보는 단사란의 눈빛이 가슴 아프군요. 양아버지는 어린 사란을 데려다가 함께 키우면서 부부의 정을 나누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로, 핏줄이 섞이지 않은 사란에 대한 애정도 차츰 식어갔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지금의 아내와 금슬이 좋아 서로 닭살스런 애칭까지 부르며 지내는 처지이니, 베갯머리 송사에 곧장 넘어간 것이지요. 지금 보니 단사란의 새엄마는 수더분한 인상과 달리 탐욕스러울 뿐 아니라, 매우 약삭빠르고 말솜씨가 좋은 여인이었습니다. 의붓딸의 등골을 빼먹으려는 것은 '하늘이시여'의 배득과 꼭 닮았군요.


머지않아 단사란은 자기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부용각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 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멘토와 길잡이가 되어 줄 오화란(김보연)과 이도화(이매리)를 만날 것이고, 주방장으로 일하는 생모 한순덕(김혜선)과도 만나겠지요. 본격적인 '신기생뎐'의 스토리는 바로 그 때부터 시작될텐데, 저는 진심으로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과연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기생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요? 아무리 멋스럽게 포장한다 해도, 결국은 일종의 텐프로가 아니냐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할텐데 말입니다. 솔직히 저 역시도 그런 쪽의 시각을 갖고 있는 편이기에, 임성한 작가가 이 민감한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인지가 너무도 궁금합니다. 단사란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신기생뎐'의 가혹한 흥미로움은 더욱 짙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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