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지리산 (9)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윤종빈 감독이 악역 조윤(강동원)의 캐릭터에 너무 심취했던 것일까? 조윤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캐릭터와 전체적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무게의 비극과 장중함에 비한다면 다소 가볍게 처리된 느낌도 있다. 하지만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민초(民草) 들의 한(恨)이라면 그 메시지는 충분히 어필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주인공 도치(하정우)의 캐릭터가 지극히 단순했기 때문에 표현이 극대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도치는 원래 '돌무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쇠백정이었다. 배운 거라고는 고기써는 칼질뿐이요, 가진 거라고는 황소같은 힘과 돌처럼 단단한 육체뿐이다. 복잡한 생각이나 고민 따위를 할 줄 아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 ..
'구가의 서'(九家의 書) 제1회에서 주인공 최강치(이승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비극적 운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최강치는 아직 이 세상에 첫 숨결을 내뱉기도 전이건만, 아비 구월령(최진혁)의 마음속에 어미 윤서화(이연희)에 대한 사랑이 싹트는 순간, 이미 그의 모진 운명은 잉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태초부터 미리 계획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가장 뜨거운 용기와 긍정의 힘으로 절대 금기를 넘어 사랑을 이루는 최강치의 모습을 통해, 신은 이 땅의 나약한 인간들을 깨우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이 세상의 어떤 금기(禁忌)도 장벽도 사랑보다 강한 것은 없음을, 신분의 고하도 남녀의 차별도 심지어 인간과 짐승의 구별조차도 사랑보다 우선할 수는 없음을, 이 세상에 태어..
윤시윤의 특별 출연이 예고되며 기대를 모으던 88회가 드디어 방송되었습니다. 지금껏 등장한 모든 카메오들 중, 윤시윤의 존재감은 단연 압도적이었군요. 다른 카메오들의 출연은 모두 극의 흐름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독립 에피소드로 마련되었던 것에 비해, 오직 윤시윤은 주요 여성 캐릭터인 박하선의 첫사랑으로 등장하여 '지하커플'의 미래에 청신호를 켜주는 막강한 역할을 담당했으니까요. 저는 '제빵왕 김탁구' 이후로 윤시윤의 출연작을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 친구의 꽃미모는 그 사이에 더욱 샤방샤방해졌군요..ㅎㅎ 마냥 수줍기만 하던 국문과 신입생 박하선이 생각지도 않은 암벽등반 동아리에 가입한 이유는, 그 동아리에 있는 선배 윤시윤을 보고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그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짝사랑을 ..
2010년 KBS 연예대상은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이경규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최근 김성민 사건으로 인해 타격이 컸던지라 그 영향으로 좀 어렵지 않을까 염려를 했었는데, 다행히 프로그램의 근간이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바라던 후보에게 상이 돌아가서 매우 기쁘고 흐뭇합니다. 방송인 이경규를 보면 대한민국 코미디와 예능의 근현대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브라운관에서 그를 보았지요. 지금은 비교적 후덕한 모습으로 변했지만 젊은 시절의 이경규는 이윤석과 비슷할 정도로 굉장히 깡마른 모습이었습니다. 언젠가 주병진과 더불어 콩트를 하던 중에 이경규가 종아리를 맞는 설정이 있어서 바지를 걷어올렸는데, 다리가 얼마나 앙상하던지 주병진이 "아니, 왜 물구나무를 서셨습니..
아직도 '1박2일'에 대한 애정으로 꾸준히 본방사수를 하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지난번 '혹서기 캠프'를 기점으로 조금씩 마음이 멀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나영석 PD가 복귀하면서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기미가 보이는가 싶었는데, 자꾸만 여러모로 삐그덕거리는 것이 눈에 띄면서 좀처럼 회복이 되지를 않네요. 마치 냉장고 안에서 차갑게 보관되어 있던 사이다가 밖으로 꺼내지고 뚜껑까지 열린 듯한 느낌입니다. 시원하던 냉기는 찌는 듯한 더위에 속절없이 식어가고 이제는 김도 빠져서, 미지근한 설탕물이 되어버리기 직전이에요. 게다가 요즘 M방송사에서 새로 시작한 '오늘을 즐겨라' 쪽에 자꾸만 관심이 끌리기 시작하니 조금씩 고민이 됩니다. 지리산 둘레길을 체험하는 것은 좋은데, 반드시 그런 고가의 장비들이 동원되어야 했는..
승승장구의 새 MC로 결정된 4명의 이름을 들었을 때, 첫 느낌은 어리둥절함이었습니다. 김승우 본인도 어디까지나 배우일 뿐 전문 MC가 아닌데, 최화정과 김신영이 하차하고 나서 새로 투입되는 인물 중에 그가 믿고 의지할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재용은 케이블에서 MC를 본 적이 있었지만 공중파에서는 본 적이 없고, 그나마 한동안 활동을 쉬고 있었다 하니 감각이 예전같지는 않을 터였습니다. 김성수는 약간 말솜씨 좋은 배우... 뭐 그 정도의 이미지로 김승우와 너무 비슷한 캐릭터 같아서 난감하더군요. 태연과 우영이 맡았던 승승돌은 이기광이 바통을 이어받으면 되겠지만, 아무래도 혼자이다 보니 태연의 역할까지 감당하기는 무리일 듯 싶었구요. 김신영을 대신하여 분위기를 띄울 사람도 일단은 보이지 않..
'남자의 자격' 출범 초반에 이윤석의 위치는 상당히 애매했고, 그의 모든 노력 또한 그저 안스럽기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완전히 침체기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남격'의 실질적 에이스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는데, 뜻밖이면서도 굉장히 반가운 일입니다. 예전에 '남격'에서 추진했던 에피소드는 '극도로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프마라톤, 전투기 체험, 지리산 등반 등... 웬만한 체력을 가지고는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의 강도 높은 미션들이었지요. 자타 공인 평균 이하의 체력을 갖고 있는 이윤석으로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기 어려웠던 것이 당연합니다. 게다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국민약골..
'남자의 자격'에서 드디어 대한민국 예능계의 20년 숙원(?)을 풀었습니다. 예능의 대부이며 눈치 100단의 베테랑인 이경규, 몰래카메라의 상징인 그를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촬영하는 데 성공한 것이지요. 사실 이 말은 그들이 스스로 한 말이고, 저는 그게 뭐 20년 숙원이라고까지 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언제나 속이는 쪽이었던 사람이 속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약간 신선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유쾌함보다 불편함이 더 큰 방송이었습니다. 화면에서 오버스럽게 표현된 것처럼 이경규를 속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즐겁고 통쾌했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별로 못 느끼겠더군요. 그의 나이가 이제 51세인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하루를 꼬박 굶는 미션이 과연 건강에 무리를 가..
1월 31일에 방송된 '남자의 자격, 아날로그편'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블로거 기사를 보았습니다. 저는 평소 언제나 그분의 글을 감탄하며 읽곤 하지요. 어제도 그 설득력 있는 글솜씨에 빨려들어가며, '남자의 자격'이 혹시라도 '패떴'처럼 침몰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제까지만 해도 그 방송을 못 본 상태였거든요. 뒤늦게서야 방송을 보았습니다. 그 기사에서 읽었던 대로 '아날로그'편에서 출연자들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냥 퍼질러 앉아서 자기들의 옛 추억이나 곱씹으며 수다판을 벌이다가, 밥을 지어서 먹고 쉬고... 그러고 그만이었습니다. 만약 이게 정상적인 방송분이었다면, 그야말로 제작진이고 출연진이고 제정신이 아니라 할만했지요. 그러나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