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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일단 한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나중에 실망스런 스토리 전개를 보이거나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어 가더라도 상관없이, 초심을 잃지 않고 꿋꿋한 충성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꽤나 많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게 좀처럼 안 됩니다. 초반에 홀딱 반해서 끝까지 사랑하리라 마음먹었던 드라마도 점점 변질되어가는 것을 보면 쉽게 마음이 식어버리더군요. '드라마 = 인간' 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실망스런 모습을 발견했다 하여 곧바로 차갑게 돌아서는 셈이니 정말 못됐다고 할만 하겠죠. 하지만 드라마는 사람이 아니니까, 좀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드라마에 대해서도 변함없이 꿋꿋한 사랑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면, 빛무리가 이제껏 팬의 탈을 쓰고 행세해 왔을 뿐 사실은 '적도의 남자' 안티였다고..
복수극의 지존이라는 엄태웅의 칭호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차가운 복수심에 불타는 남자의 내면을 이보다 더 리얼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있을까요? 특히 이번에는 처음으로 맹인 연기에 도전함에 있어 많은 연구와 노력을 했음이 엿보입니다. 눈을 뜨고 있되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공허한 눈동자를 얼마나 실감나게 표현했는지, 각종 포털의 인기 검색어에는 '엄태웅 동공연기'라는 단어가 떠올랐군요. 엄태웅은 눈동자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과 언어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갑작스레 눈이 멀어버린 사람의 절망과 공포를 나타냈고, 차츰 기억이 떠오르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 싹트기 시작하는 통렬한 분노와 복수심을 형상화시켰습니다. 엄태웅의 명품 연기와 더불어 '적도의 남자' 5회는 방송 시간..
2012년 3월21일 수요일, 공중파 3사에서 일제히 새로운 수목드라마가 방송되며 제2차 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제1차 대전에서는 MBC의 '해를 품은 달'이 싱거울 만큼 큰 편차로 경쟁작들을 따돌리며 압승을 차지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2차 대전의 결과가 더욱 궁금합니다. 제가 선택한 1순위는 KBS '적도의 남자'이고, MBC '더킹 투하츠'가 그 뒤를 잇습니다. '더킹 투하츠'도 놓치기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꼬박꼬박 볼 생각인데, 아무래도 SBS '옥탑방 왕세자'까지 욕심내기는 힘들 것 같군요. '적도의 남자'는 김인영 작가가 2008년 화제작 '태양의 여자'를 남성 버젼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첫방송을 볼 때는 '태양의 여자'보다는 김지우 작가의..
1회를 보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현재 '시티헌터' 속의 이윤성(이민호)은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선량한 영웅입니다. 자고로 복수의 화신이라면 먹구름이 드리운 듯 어두운 카리스마를 풍겨야 하는 법인데, 이윤성은 오히려 눈부실 만큼 흰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차라리 1회를 시청하지 않고 2회부터 보았다면 좀 더 적응하기가 쉬웠을 텐데...... 저는 3회까지 시청한 지금도 아직 어리둥절한 상태입니다. 1회는 분명히 어둡고 진지한 복수극이었으며, 그 와중에 정치와 역사적 사실까지 맞물려 있어서 드라마가 굉장히 묵직했거든요. 그래 놓고 2회부터는 갑자기 새털처럼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바뀌어 버리는 바람에 저는 너무나 당황을 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같은 드라마가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도 2회의 당황스러움을 ..
복수극 중에서도 왠지 독특한 복수극이 될 것 같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일일연속극 '황금물고기'가 그야말로 어이없는 종영을 맞았습니다. 하긴 중반쯤부터는 별 재미도 없었고 좋은 작품으로 끝맺게 될 가능성은 더욱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기왕 보던 김에 본다는 식으로 계속 시청하고 있었지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되실 겁니다!" 라는 말이 최근 예능에서 나왔었는데 (제 기억에는 아마도 '남자의 자격'에서 윤형빈이 박칼린을 향해서 했던 말 같습니다. 처음 만나서 멤버들의 노래 실력을 테스트하던 그 때였어요^^) 그 말은 과연 이 드라마 '황금물고기'의 종영에 꼭 어울리는 말이었습니다. 추측컨대 작가는 고민 끝에 처음의 의도대로 엔딩을 끌고 간 것 같습니다. 남녀 주인공 이태영..
조필연(정보석)은 이성모(박상민)와 이강모(이범수) 형제의 가장 큰 원수입니다. 그들 아버지의 친구였던 황태섭(이덕화)도 깊은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황태섭은 원래 친구를 죽일 생각이 없었으며, 그 위험한 자리에 나올 희생양이 바로 자기의 친구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발견하고 놀라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멀찌감치서 지켜보던 조필연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그들의 아버지를 죽였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타고 왔던 트럭 안에서, 이성모(아역 김수현)는 똑똑히 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성모는 당시 19세의 소년에 불과했으나, 우연히 숨어들어간 미군부대에서 조필연과 마주쳤을 때 침착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총에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던 아버지를 본 것이 겨우 며칠 전인데, 원수를 눈앞..
아무래도 결방의 영향이 너무 컸던 모양입니다. 마치 꿈을 꾸다 깨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무리 감미로웠던 꿈도 일단 잠에서 깨고 나면 급격히 빛이 바래는 것처럼, 초반에는 꽤나 강렬한 매력으로 저를 유혹하던 드라마가, 약 한달 동안 각성의 시간을 거친 후 다시 만나니 헛점 투성이로 보이는 겁니다. 예전에는 김남길과 김재욱, 그리고 한가인의 출중한 비주얼만으로도 아름답게 느껴졌고, 드라마 전체에서 은은히 풍겨나오는 비극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었지요. 그런데 꿈에서 깨어났다가 일부러 다시 꿈꾸어 보려 하니 잘 안 되더군요. 건조해져 버린 시선으로 그 예쁜 배우들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꽤나 아쉬웠더랍니다. 사실 명색이 복수극인데 주인공의 입장에서 반드시 해신그룹을 상대로 복수를 해야 ..
요즘 드라마 중에는 유난히 복수극이 많고 배신자도 많습니다. 그리고 복수의 대상은 항상 돈과 권력을 지닌 강자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했던 주인공이 파렴치한 강자들의 것을 야금야금 빼앗으며 복수해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신문의 칼럼을 읽으니 이러한 현상은 '자기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부정적 사회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더군요. 자기의 힘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니,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이며, 그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복수'라는 설정이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수극의 내면에는 자신도 나쁜 놈이지만 상대방을 '더 나쁜 놈'으로 만듦으로써 자기의 욕망을 합리..
'황금물고기'의 주인공 이태영(이태곤)이 드디어 복수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일일연속극 치고는 꽤 빠른 템포로 진행되어 가고 있군요. 지루하지 않은 점은 좋은데, 그러다 보니 캐릭터의 급격한 변화가 충분한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듯 싶습니다. 특히 두 사람의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이태영이야 원래 마음 따뜻한 캐릭터로 설정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해도, 저는 한경산의 변화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더군요. 말하자면 은혜와 의리, 그리고 원한과 복수의 사이에서 이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외면과 복수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 본성의 냉혹함과 추악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공감하기 어려운 그들의 변화는 섬뜩하기만 합니다. 1. 이태영(이태곤..
지난 주에 종영한 '살맛납니다'의 뒤를 이어 MBC의 새 일일드라마 '황금물고기'가 첫 전파를 탔습니다. 솔직히 벌써부터 "자칫하면 막장이다" 라는 분위기를 솔솔 풍기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드라마의 대략적인 시놉시스를 미리 접하게 되면서, "아, 그래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어제 일부러 기다리고 있다가 첫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우선 첫 느낌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어요. (저는 스포를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즐기는 편이다보니, 이 리뷰에도 꽤 많은 스포가 들어가 있군요. 이제 막 시작되는 드라마에 처음부터 김빠지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여기서 접으셔도 좋습니다..^^) 1. 매혹적인 중견배우들의 유혹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었던 박상원이 '미워도 다시한번 2009' 에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