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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물고기' 망측한 결말, 구석기시대 드라마였나?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황금물고기

'황금물고기' 망측한 결말, 구석기시대 드라마였나?

빛무리~ 2010. 11. 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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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극 중에서도 왠지 독특한 복수극이 될 것 같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일일연속극 '황금물고기'가 그야말로 어이없는 종영을 맞았습니다. 하긴 중반쯤부터는 별 재미도 없었고 좋은 작품으로 끝맺게 될 가능성은 더욱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기왕 보던 김에 본다는 식으로 계속 시청하고 있었지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되실 겁니다!" 라는 말이 최근 예능에서 나왔었는데 (제 기억에는 아마도 '남자의 자격'에서 윤형빈이 박칼린을 향해서 했던 말 같습니다. 처음 만나서 멤버들의 노래 실력을 테스트하던 그 때였어요^^) 그 말은 과연 이 드라마 '황금물고기'의 종영에 꼭 어울리는 말이었습니다.

추측컨대 작가는 고민 끝에 처음의 의도대로 엔딩을 끌고 간 것 같습니다. 남녀 주인공 이태영(이태곤)과 한지민(조윤희)은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의 상대였는데, 선대의 원한에 얽혀들며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누었다가,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맺어진다는 내용이 아마도 최초의 플롯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런데 문제는 매일 30분 가량의 방송 시간을 채우려다 보니 엄청난 무리수가 수없이 등장했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미 남녀 주인공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점이었지요.


한지민이 복수를 위해 문정호(박상원)와 결혼을 감행하는 순간, 이태영과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 것이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만, 가족적 윤리관을 중요시하는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더구나 한지민은 비록 유산되기는 했지만 문정호의 아이까지 가졌습니다. 아무리 헤어졌다 해도 그 두 사람이 부부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태영과 문현진(소유진)의 관계는 더욱 끈끈한 부부사이였지요. 문현진은 누구보다 진실하게 헌신적으로 남편을 사랑했으며, 이태영 또한 그녀의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뭐래도 이태영과 한지민은 사위와 장모 관계입니다.

작가가 정말 한지민을 최후에 다시 이태영과 맺어주고 싶었다면, 문정호와 결혼까지 시키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 때부터 모든 것이 어긋났어요. 콩가루 집안이 되는 거야 나중 문제라 하더라도, 일단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부터가 그렇습니다.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복수심 때문에 자기의 장모 자리까지 차지한 옛 애인이라니, 아무리 오랫동안 사랑했던 여자라 해도 너무 끔찍해서 오만정이 다 떨어질만한 설정 아니겠습니까? 여자의 입장에서도 자기 집안을 몰락시키고 아버지를 쓰러뜨려 폐인으로 만든 것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깊었으면, 단지 고마운 사람일 뿐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더구나 아버지뻘 되는 사람과 결혼할 만큼 그런 결정까지 했을까 싶지요. 이태영과 한지민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완전히 악에 받쳐 있었습니다.


그 정도 되면 이미 사랑보다 원한이 깊은 상태입니다. 아무리 봐도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은 커녕 털끝만한 의리조차 남아 있질 않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태영이 자기 집안을 무너뜨린 이유가 단지 돈과 명예욕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한지민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였지요. 자기 엄마가 그의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정확히는 사고였지만)을 알고서, 한지민의 마음은 삽시간에 180도 달라집니다. 이제껏 그토록 증오하던 이태영을 모두 이해하고 모두 용서하며 일방적으로 용서를 빌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녀가 그렇게 납작 엎드리니 이태영의 마음도 그냥 스르르 풀려 버리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런 한지민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자기 엄마에 대한 원한이 깊다고 해도, 아무 잘못 없는 다른 가족들에게까지 그토록 비인간적인 복수를 했는데 어떻게 모두 이해되고 용서되고 미안해질까요? 혈육 하나 없이 고아원에 버려질 운명이었던 이태영을 거두어 성인이 될 때까지 유복한 환경에서 키우며 의사가 되도록 이끌어 주었던 아버지와, 그를 친형처럼 따랐던 남동생과, 수십년간이나 남매처럼 연인처럼 사랑을 키워 왔던 자기에 대한 모든 의리를 저버리고 짓밟은 이태영인데 말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화해가 이루어졌으면 그쯤에서 대략 마무리를 해야 했습니다. 기왕 문씨 집안과 얽혀서 이쪽 저쪽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이제는 좀 부자연스럽더라도 그냥 사위와 장모 관계로 쭉 지내도록 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거예요. 그런데 작가는 두 사람을 어떻게든 다시 붙여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한 듯 합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습니까? 별 수 없이 '칼'이 등장합니다.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 그냥 잘라버리겠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이태영의 암이었습니다.


먼저 사이코패스 할머니(정혜선)는 문정호와 한지민을 끝내 이혼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지민을 놓지 않으려던 문정호였지만, 노모가 자살 소동까지 벌이는 데야 어쩔 수 없었지요. 시종일관 사이코패스 성향을 유지하던 할머니이니 그 설정은 소름끼치긴 했어도 나름 설득력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헤어질 이유가 없는 이태영과 문현진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도 떼어 놓아야만 최종적으로 남녀 주인공을 붙여 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이루어지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등장한 '녹슨 칼'은 드라마를 완전히 만신창이로 만들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남편의 최후 소망이 '지민이와 일주일만 살아보는 것'임을 몰래 엿듣고 알았는데도 싫다고 거부하며 끝까지 그의 곁에 있으려던 문현진은, 결국 점점 초췌해져가는 이태영을 보다 못해 한지민을 자기 자리에 대신 부르고 물러나 줍니다. 그래서 이태영의 최후를 함께 하는 여자는 한지민이 되었군요. 이것이 죽음으로밖에 이룰 수 없었던, 애절하고 운명적인 사랑인가요? 코웃음만 나오는군요.


가장 웃겼던 것은 한경산(김용건)이 문정호에게 전화를 걸어서 "미안합니다. 저... 지민이와 태영이, 허락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없었다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었어요. 어차피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 두 사람의 관계를 꼭 규정해야만 했을까요? 그저 한때는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이) 최후를 지켜준다는 차원에서 끝내면 안 되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한지민의 아버지가 공식적으로 두 사람을 허락했다고 멘트를 날리는 바람에, 그들은 최종적으로 부부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대사처럼 아주 먼 길을 돌고 돌아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습니다. 남매였다가 연인이었다가 부부였다가 (둘이 몰래 도망쳐서 결혼했었으니까) 그 다음에는 사위와 장모였다가 이제는 또 다시 부부가 되었군요. 이거야 원 망측해서 입에 담기도 꺼려집니다.


한편 두번째 아내를 사위에게 뺏긴 문정호는 다시 첫번째 아내와 재결합할 모양입니다. 지금껏 이세린(김보연)이 문정호에게 미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수없이 나왔지만, 문정호는 한 번도 이세린에게 마음이 남은 듯한 기색조차 보인 적 없었는데, 갑자기 그 무심한 전남편 앞에서 춤을 추며 사랑을 고백하는 중년의 전처 모습은 또한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젊은 아내를 사위에게 뺏기는 정도의 충격을 받았으니 이제 웬만하면 받아 줄 거라는 계산이었던 건가요? 생각할수록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민망함을 덜기 위해서는 '황금물고기' 자체를 구석기시대 드라마 쯤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모두 함께 어우러져 공동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누군지 확실하지만 아빠는 누군지 확실치 않았다는 그 시대 말입니다. (제가 문화인류학도가 아니라서 정확한 지식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학교 때 국사 시간에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군요^^)


이렇게 사위와 장모가 다시 부부의 연을 맺을 거라면, 사이코패스 할머니가 한지민 뱃속의 아이를 이태영의 아이라고 오해하며 가혹하게 굴었던 것도, 결과적으로 볼 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는 실제적으로 문정호의 핏줄이 맞았겠지만, 이태영과 한지민은 명백히 서로를 잊지 못했고 마음 속으로는 그 둘이 부부였던 것 아니겠습니까? 문현진의 딸도 자기 딸로 받아들인 이태영인데, 한지민의 아이도 그럴 수 있었겠지요. 결국 이렇게 될 정도로 깊은 사랑이 남은 거였다면, 각자 헤어지지 않고 살았다 해도 이태영은 줄곧 장모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며 틈만 나면 그 아이의 아빠 노릇을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남녀의 사랑도 중요하겠지만, 가족의 개념 자체를 이렇게까지 무너뜨려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름 신선하게 출발했으나, 사상 최대의 민망함과 망측함으로 끝나버린 2010년형 구석기시대 드라마 '황금물고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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