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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이것은 명백히 황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쟁 이야기지만, 전쟁 속에도 사랑은 피어나게 마련이다. 더욱이 사랑은 모든 예술작품의 영원한 테마가 아니던가? 치열하고도 복잡한 전쟁 스토리에 집중하다가도 처음부터 예고된 야수와 공주의 사랑이 언제 시작될까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총 24부작의 드라마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좀처럼 사랑의 불꽃은 타오르지 않았다. 장태주(고수)와 최서윤(이요원)은 형식적이나마 결혼을 했고 무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은 방을 쓰며 살아왔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엔 오직 황금의 제국을 향한 욕망뿐인 듯, 서로를 향한 인간적 관심은 아예 차단된 상태로 줄곧 냉랭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종영까지 불과 5회를 남겨둔 시점에서, 공주님의 오만한..
'추적자 THE CHASER'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박경수 작가가 1년만에 신작 '황금의 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추적자'는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폐단이라 할 수 있는 '뒷심 부족'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보기 드문 수작이었죠.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려 온 차기작인데, 아무래도 평온한 마음으로 즐겁게 시청하기는 그른 듯 싶군요. 홈페이지를 둘러 본 느낌부터 쎄하더니 첫 방송을 시청한 후에는 더욱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하긴 돌이켜 보면 '추적자'도 맘 편히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전혀 아니었죠. 볼 때마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 답답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이끌림에 빠져들게 되는 묘한 작품이었습니다. 너무도 가감없이 표현되는 잔혹한 현실은 차라리 눈 감은 채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
강렬하고 자극적인 에피소드의 향연, 게다가 빠르고 역동적인 전개는 제법 흥미진진한 시청을 가능하게 하지만, 드라마 '다섯 손가락'의 완성도는 별로 높지 않아 보이네요. 개연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설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서 일부러 짜맞춘 듯한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점은 그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 시청자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진짜 매력적인 캐릭터가 한 두 명쯤 존재하고 스토리의 개연성을 조금만 더 확보했다면,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가 늘 그렇듯이, 막장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높은 인기를 얻었을텐데 말이죠. 피아노라는 중심 소재가 꽤나 신선하고 매혹적이어서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7회까지 시청한 현재의 ..
정말 고마웠습니다. 끝까지 기운을 잃지 않고 꿋꿋이 버텨 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드라마가 용두사미꼴의 아쉬운 결말을 면하기 힘든 현실인데,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초심을 밀고 나가며 실망스럽지 않은 최고의 결말을 마련해 주어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우리 가슴 속 희망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내용으로 마무리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로써 대중적 인기를 끄는 톱스타 한 명 없이 조촐하게 출발했던 '추적자'는 놀랍게도 한국 드라마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금자탑을 세우게 되었군요. 정신도 멀쩡했고 법에 어긋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노라고, 잘못이라는 건 알지만 또 다시 그런 상황에 닥친다 해도 자신은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진술..
최정우(류승수) 검사는 참으로 듬직하고 매력적이며 희망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는 서지원(고준희)와 더불어 가진 자이면서도 못 가진 자의 편에서 함께 싸워주는 젊은이죠. 국내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와 검찰청에 선후배 동문이 수두룩하고, 그의 부친은 한 때 대법관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쟁쟁한 집안이니, 서지원에 필적할만한 부자는 아니더라도 그만하면 평범한 인생과는 거리가 먼, 상위 1%의 엘리트 인생을 영위해 왔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과거 최정우는 자기 아버지의 대수롭지 않은 비리를 적발하여 대법관 후보의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정작 그의 아버지 대신 대법관이 된 것은 장병호(전국환) 같은 썩어빠진 인물이었습니다. 혈육의 정도 무시하고 엄격한 법을 적용한 것은 조금이나마 깨끗한 세상을 만들려는 열혈청년..
제 생각에 요즘 '추적자'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서회장(박근형)입니다. 주인공 백홍석(손현주)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강동윤(김상중)의 존재감이 강해지긴 했지만, 아무리 몸부림쳐 봐야 서회장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 그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소록소록 전해지는군요. 거의 표정 변화 없이 냉철하고 강인한 남자의 기상을 풍기는 강동윤의 얼굴도, 늘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서회장의 능글맞은 얼굴과 마주치면 삽시간에 그 빛을 잃고 맙니다. 게다가 연륜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서회장의 기막힌 대사들이라니, 요즘은 박근형이 입만 뗐다 하면 저절로 명언 퍼레이드가 되고 마네요. 분명히 악역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는 회를 거듭할수록 서회장의 캐릭터에 푹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회장에게도 부인..
'추적자 THE CHASER'는 상당히 남성적이고 굵은 터치의 드라마이며 핵심 배역도 모두 남자들입니다. 처음에는 백홍석(손현주)과 강동윤(김상중)이라는 양대 기둥이 이끌어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오그룹의 노회한 구렁이 서회장(박근형)의 존재가 히든카드였군요. 게다가 평범하고 정이 많으면서도 적당히 속물적인 중년 서민의 전형같은 황반장(강신일)과 거칠지만 정의로운 젊은 지성을 상징하는 최정우(류승수) 검사 등, 탄탄한 연기력의 조연들은 잘 짜여진 대본에 힘을 더해주며 시청자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그런데 이 남성적인 드라마 속에서도 여성 캐릭터들의 빛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습니다. 무릇 남성 위주의 드라마에서 여성들이란 그저 예쁘기만 한 민폐덩어리거나 존재감 없는 쩌리 신세에..
'추적자 THE CHASER' 제9회는 정말 슬펐습니다. 이 드라마는 1회부터 지금까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슬픔으로 가슴을 후벼팠지만, 9회는 특히 더 슬펐습니다. 차라리 백홍석(손현주)이 조금이라도 얍삽한 인간이었다면 보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속상하진 않을텐데, 어떤 상황에서든 정면돌파를 고집할 뿐 요령이라고는 전혀 피울 줄 모르는 그 우직함이 저는 너무도 슬펐습니다. 우직하기만 하면 그래도 좀 나으련만, 지나치게 선량하기까지 한 백홍석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못 견디게 괴롭더군요. 주위를 살펴보면 백홍석 같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가진 것도 없으면서 퍼주기 좋아하고 너무 착해서 만날 손해만 보면서도, 남들이 안타까워하면 자기는 그렇게 사는 것이 좋다며 씨익 웃는 사람들... 백홍석은 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졌다는 속담이 이렇게나 절묘하게 들어맞는 상황이 있을까요? 한오그룹 총수 서회장(박근형)과 그의 사위로서 차기 대권을 노리는 강동윤(김상중)의 대결구도에 정말 우연찮게 소시민 백홍석(손현주)이 휘말려들면서 그의 가정은 완전히 파탄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의 목숨이 억울하게 스러져갔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당한 놈만 억울하고 약한 놈만 서러운 격이라, 절대 다수의 소시민에 속하는 시청자들은 모두 백홍석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그와 함께 울고 웃습니다. 그가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납치 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시청자는 언제나 백홍석의 편이 되어 그를 응원하고 있지요. 성경 속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에게 승리했지만 이 시대의 현실 속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알기에, 죽은 아..
'추적자' 5회의 내용은 굵직하게 '혜라의 활약' 과 '창민의 배신' 으로 요약될 수 있겠군요. 강동윤(김상중)이 그토록 막아보려 했지만, PK준(이용우)이 촬영한 동영상은 결국 서회장(박근형)의 아들인 서영욱(전노민)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백수정(이혜인)의 죽음의 진실에 대해 영원히 함구할 것을 명하는 강동윤의 모습과 음성이 생생히 담긴 그 동영상이 공개될 경우, 강동윤은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꿈에 그리던 대선 출마와 대통령 당선은 커녕, 살인교사죄가 발각되어 옥살이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수년 전에 강동윤에게 된통 당했던 서영욱은 이번 기회에 그를 짓밟아 버리기로 작정하고, 그 동영상을 강동윤의 정적(政敵)인 유태진(송재호) 의원에게 전달하려 합니다. 위기 일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