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눈먼 새의 노래 (4)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처음부터 1~2회 연속 방송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을 만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걸고 있는 방송사의 기대감이 큰 모양입니다. 더구나 같은 날 시작되는 '아이리스2'는 무려 170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니만큼 더욱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겠지요. 다행히 첫 방송 후의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이른바 감성멜로 전문 콤비라 불리는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PD의 만남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깔끔한 짜임새와 감각적인 대사를 자랑하는 노희경 작가의 대본은 역시 명불허전이었고 '그들이 사는 세상',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에 이어 그녀와 세번째 호흡을 맞추는 김규태 PD의 영상미 또한 여지없이 빛을 발했습니다. 주연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누구 한 사람 삐걱거림 없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배..
김선우(엄태웅)가 시력을 회복한 후의 모습으로 이장일(이준혁) 앞에 나타나 본격적인 복수의 서막을 알렸으니, 앞으로는 엄태웅의 동공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듯합니다. 이장일과 이용배를 불러내서 마치 "내가 돌아왔다!"고 선포라도 하듯이 보여주었던 섬뜩한 그 연기가 마지막이었나봐요. 스토리의 흐름이나 설정으로 봤을 때는 어째서 그와 같은 만남이 필요했는지 썩 납득이 안 가는데, 아마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그 소름돋는 연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엄태웅의 맹인 연기는 단지 동공뿐만 아니라 온 몸과 표정에서부터 생생히 전해져 오는, 명품 중의 명품이었습니다. 오래 전, 안재욱의 데뷔작이었던 '눈 먼 새의 노래' 이후 더 이상의 맹인 연기를 볼 수는 없을 ..
혀짧은 서민 아가씨를 금실은실로 휘감아 놓은 듯한 윤은혜(강혜나)의 모습을 보며 드라마에 몰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가씨를 부탁해'도 이제 5회에 이르렀는데 왜 아직도 저렇게나 어울리지 않는 걸까? 매회 입고 나오는 의상은 매일 남의 옷을 빌려입는 듯 부자연스럽고, 여전히 있는 힘을 다해서 오버하는 연기는 부잣집의 외로운 공주님과는 거리가 삼만리쯤 멀어 보인다. 그에 비해 꽃집 딸네미 문채원(여의주)의 자연스러움은 이미 그녀가 캐릭터와 일치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로 나오시는 관록의 권기선씨와 비교해도 거의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예전에 '배우 윤상현을 주목하는 이유' 라는 포스팅에서 윤상현을 가리켜 '끼를 타고난 연기자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문채원에게도 그 말이 적용되지..
1994년 데뷔작 '눈먼 새의 노래'에서 보여준 안재욱의 존재감은 충격적이었다. 드라마 자체가 워낙 좋기도 했거니와 전혀 신인답지 않은 안재욱의 연기력은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 친구의 어머님을 비롯하여 몇몇 어르신들은 진짜 맹인이 드라마에 나온 줄 아셨다고 한다. 나는 '눈먼 새의 노래'를 운 좋게 녹화할 수가 있었는데, 보고 또 보고,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같이 또 보고, 안재욱의 연기를 보며 친구와 함께 감탄했다. "이름이 뭐라고? 안재욱? 오호.. 마음에 드는 걸~" 친구의 말에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동의했다. 그때부터 몇년간 나는 안재욱의 팬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특히 일요 아침드라마 '짝'을 보는 재미에 휴일의 기쁨은 배가되곤 했다. 남들이 그 당시 잘 나가던 연예인의 이름을 대며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