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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바람이 분다' 칭찬해 주고 싶은 송혜교의 연기 발전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그 겨울, 바람이 분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칭찬해 주고 싶은 송혜교의 연기 발전

빛무리~ 2013. 2. 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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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1~2회 연속 방송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을 만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걸고 있는 방송사의 기대감이 큰 모양입니다. 더구나 같은 날 시작되는 '아이리스2'는 무려 170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니만큼 더욱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겠지요. 다행히 첫 방송 후의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이른바 감성멜로 전문 콤비라 불리는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PD의 만남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깔끔한 짜임새와 감각적인 대사를 자랑하는 노희경 작가의 대본은 역시 명불허전이었고 '그들이 사는 세상',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에 이어 그녀와 세번째 호흡을 맞추는 김규태 PD의 영상미 또한 여지없이 빛을 발했습니다.

 

주연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누구 한 사람 삐걱거림 없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배종옥, 김규철, 김태우 등의 중견 연기자들이 젊은 주인공들을 든든히 에워싸고 있으며, 앞으로 감초 커플을 연기하게 될 듯한 김범과 정은지의 모습도 상큼한 매력으로 잘 어울립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흔치않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다보니 초반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이 무거운 편이었지만, 주인공인 조인성-송혜교 커플의 분위기가 아련하고 비극적이라면 김범-정은지 커플은 유쾌함과 풋풋함으로 드라마가 너무 처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줄 것 같아요. 다른 배우들의 레벨이 워낙 높다 보니 가장 경력이 일천한 에이핑크 정은지가 상대적으로 어설퍼 보이면서 좀 튀는 경향은 있지만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조인성의 브라운관 복귀는 2005년 '봄날'(상대역 고현정) 이후 무려 8년만이고, 송혜교 역시 2008년 '그들이 사는 세상'(상대역 현빈) 이후 5년만이 아닌가 싶군요. 오랫동안 기다렸던 만큼 두 톱스타의 연기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더욱 특별한데, 금상첨화로 두 사람 다 예전보다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 노력에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되는 부담스런 상황에서도 눈빛 하나, 근육의 떨림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그들의 연기는 저절로 시청자의 감정 몰입을 이끌어 내더군요. 저는 그 중에도 여주인공 오영 역을 맡은 송혜교의 놀라운 연기 발전을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조인성은 데뷔 초에도 연기가 좀 되는 배우였던 데 반해, 송혜교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1999년,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오지명의 막내딸로 출연했던 당시 송혜교는 겨우 18세의 여고생에 불과했습니다. 그녀의 통통 튀는 발랄한 매력은 시트콤에 최적화된 듯 잘 어울렸고, 인물 캐릭터의 특징을 귀신같이 살려내는 김병욱 PD의 능력에 힘입어 일약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죠. 다음 해인 2000년에는 정통 멜로드라마 '가을동화'의 여주인공 '은서' 역을 단숨에 꿰어차면서 이 시대 멜로퀸으로 급부상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멜로드라마의 호흡에는 잘 맞지 않는 빠른 템포의 대사처리와 고질적인 발음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이런 단점들은 그녀에게 입혀진 시트콤의 이미지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송혜교는 김태희, 전지현과 함께 2000년대를 대표하는 3대 미녀로 손꼽히지만 다른 두 사람에 비해 연기 욕심이 월등히 많은 편이었습니다. '가을동화' 이후의 출연작만 해도 영화로는 파랑주의보, 황진이, 페티쉬, 카멜리아, 오늘, 일대종사 등의 작품이 있었고 드라마로는 호텔리어, 수호천사, 올인, 풀하우스, 햇빛 쏟아지다, 그들이 사는 세상 등의 작품이 있었죠. 영화 출연작을 보면 사극을 비롯해서 각종 장르를 가리지 않고 용감히 도전했음을 알 수 있고, 2012년에 출연했던 왕가위 감독의 작품 '일대종사'는 베를린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드라마로는 비(정지훈)과 함께 했던 '풀하우스'를 통해 인기의 정점을 찍었고, 이병헌과 함께 했던 '올인' 또한 좋은 반응을 얻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2008년 '그사세' 이전까지 송혜교의 연기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끝없는 열정에 비해 좀처럼 늘지 않는 연기력... 그리 못하는 연기는 아니지만, 콕 집어 가슴에 와닿는 임팩트가 없는 밋밋하고 평범한 연기... 그것이 송혜교의 한계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요.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노희경 작가와 만나면서 배우 송혜교는 드디어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기에 감정을 싣는 방법을 깨우친 거죠. 단지 욕심만으로는 안 되는 감정 연기... 이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는 분명 100% 몰입을 했건만, 혼자 아무리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어봤자 시청자의 가슴까지 함께 울리지 못하면 그 연기는 실패한 게 되니까요. 야심차게 출발했던 많은 배우들이 끝내 정상에 이르지 못하고 그 언저리만 맴돌다 사라져가는 이유도 바로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서입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그사세'에서 준영(송혜교)이 옷을 입은 채 욕조에 들어앉아 따뜻한 물을 맞으며 헤어진 연인 지오(현빈)를 그리워하던 모습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지금 이 욕조에 떨어지는 물보다 더 따뜻했다. 이건 분명한 배신이다!" 노희경의 대사와 송혜교의 연기가 완벽히 혼연일체를 이룬 명장면이었죠. 그 외에도 저는 개인적으로 2011년에 개봉했던 이정향 감독의 영화 '오늘'을 감상하며 송혜교의 내면 연기에 감탄을 거듭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 '오늘'을 관통하는 화두는 '용서'였는데, 이것이 절대 표현하기 쉽지 않은 어려운 주제였거든요. 이제껏 성스러운 덕목으로만 여겨왔던 '용서'가 때로는 끔찍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는 현실을 통해, 용서의 당위성과 부당성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죠. 이 단순치 않은 주제를 훌륭히 형상화시킨 송혜교의 내면 연기는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송혜교는 또 한 번의 어려운 도전을 합니다. 바로 '맹인' 연기인데요. 흔히 잘 하면 본전이고 못 하면 쪽박이라고 할 만큼, 배우에게 맹인 연기는 감당하기 힘든 숙제입니다. 차라리 눈을 감거나 검은 안경을 쓰고 연기한다면 쉽겠지만, 시력이 있는 눈을 버젓이 뜬 채로 안 보이는 연기를 하다 보면 동공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캐릭터의 진정성은 손상을 입게 되니까요.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웃음거리가 되고, 삽시간에 어설픈 발연기의 대명사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한 도전인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혜교의 연기는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엄태웅처럼 소름끼치는 동공 연기를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그 섬세한 표정 연기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더군요. 한 방울의 눈물과 한 줄기의 미소, 가벼운 입술의 떨림만으로 여주인공 오영의 감정을 완벽에 가깝도록 표현하는 송혜교의 표정 연기를 보고 있자니, 저는 어느 덧 오영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느꼈습니다. 마치 오영과 함께 숨쉬고 있는 듯, 그녀의 슬픔과 두려움 하나하나가 모두 제 가슴에 생생히 느껴져 오는 거였어요. 이건 정말... 보기 드문 황홀한 체험입니다. 이렇듯 황홀한 순간을 선물해 주었으니 송혜교의 성실한 노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에 반해 남주인공 오수의 캐릭터에는 아직 몰입을 못 하고 있습니다. 조인성의 연기가 부족해서는 아니고, 캐릭터 자체가 현재로서는 심히 비호감이어서 그런 것 같군요. 꿈도 없이 고아로 자라나 일찌감치 밑바닥 세상을 다 경험해 본 젊은 남자의 허탈한 고독... 자기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 진소라(서효림)의 계략 때문에 만져본 적도 없는 70억 횡령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목숨의 위협까지 받으며 쫓기는 자의 절박함... 오수가 처한 입장과 고통을 대충 알기는 하겠는데, 별로 공감이 되지는 않습니다.

 

 

돈을 뜯어내려고 오빠도 아니면서 오빠인 척하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 접근한 주제에 적반하장, 저렇게 돈 많고 도도한 여자아이는 실컷 밟아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주변에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그 외롭고 눈 먼 소녀에게 가혹한 말과 행동을 퍼부어 대는 오수의 모습이 저는 무척이나 싫었어요. 물론 앞으로 오수의 캐릭터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겠죠. 오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버려도 좋을 만큼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남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내가 싸가지가 없어? 너는 내 싸가지는 보이고, 네 앞의 내가 눈이 안 보이는 건 안 보이니? 네가 떠난 여섯 살 때 난 눈이 멀쩡했는데, 21년만에 네가 만난 나는 눈이 안 보여. 네가 하나뿐인 동생을 니 말대로 그렇게 사랑했다면, 넌 지금 내 싸가지를 말하기 이전에, 재산이니 소송이니를 말하기 이전에, 눈은 왜 다쳤냐? 내가 떠날 때 멀쩡했던 눈이 지금은 왜 그러냐? 그걸 먼저 물어야 되는 거 아니니?... 많이 힘들겠다, 많이 아팠겠다, 이 오빠도 아프다, 내 동생이 날 못 봐서... 너한테 그런 따뜻한 첫인사를 바란 건 아니지만, 이건 아니지. 21년만에 나타난 오빠가 눈 먼 동생한테!" 이 대사를 할 때, 돌아서서 표정이 허물어지며 눈물을 흘릴 때, 송혜교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하죠. 오수는 친오빠라면 결코 그럴 수 없을 말과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주변을 에워싼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정체모를 녀석 또한 돈을 바라고 달려든 한 마리 하이에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게 오영의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침을 당하고서도 아직 정신 못 차린 오수는 사람 많은 곳에서 혼자 곤경에 처한 오영을 빨리 도와주지 않고 멀리서 관망하다가, 그 상황을 이용해서 그녀의 굴복을 받아내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비열한 녀석이에요.

 

따지고 보면 오영이 그토록 곤경에 처한 이유도 사실은 오수 때문이었죠. 영의 친구 미라가 자기에게 호감이 있는 것을 이용해서 "동생과 친해지고 싶으니 나와 영을 단둘이 있게 해 달라"고 살살 구스른 것 아니겠습니까? 백화점 안 분수대 물에 빠져 더없이 낭패스런 몰골이 된 오영 옆에 쭈그리고 앉아 "어쩔래? 이제 내 도움도 안 받을래?" 하고 말할 때는 정말 치가 떨리게 얄밉더군요.

 

 

복지관의 맹인 소년에게는 타인의 도움을 당당히 받으라고 가르치면서, 막상 자기는 선의로 도와주려는 타인의 손길조차 무례하게 뿌리치는 오영은 몸보다 마음이 더 병든 사람입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분명 알고 있지만, 스스로 움츠러든 마음 때문에 신념대로 행동할 수가 없는 거죠. 오영은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있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자연사라는 것도, 자기의 실명이 뇌종양 때문이라는 것도 믿지 못합니다. 지금 그녀는 주위 사람들이 돈을 노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자기 눈도 멀게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선의와 악의를 구분 못한 채 모든 사람의 손길을 뿌리치는 오영의 마음은 비뚤어진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욕하고 탓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안타까운 일이죠. 더구나 그녀의 돈을 노리고 접근한 오수 따위의 인간이 야단치거나 가르칠 자격은 없는 거고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벌벌 떨리는 손을 내밀어 오수의 팔을 잡고 일어나는 오영의 모습을 보니, 그 비참한 심정에 너무 공감되어서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오영은 닫혔던 마음을 열어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될 것이고, 오수는 사랑하는 여인을 통해 삶의 목표가 생기면서 지금까지와 달리 인간답게 살도록 노력하게 되겠죠. 1~2회를 통해 커다란 가능성을 보여 준 두 사람... 서로에게 가까워질수록 차츰 변해갈 두 사람의 모습이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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