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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해, 강혜나는 문채원에게 맞는 옷이었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아부해, 강혜나는 문채원에게 맞는 옷이었다

빛무리~ 2009. 9. 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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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짧은 서민 아가씨를 금실은실로 휘감아 놓은 듯한 윤은혜(강혜나)의 모습을 보며 드라마에 몰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가씨를 부탁해'도 이제 5회에 이르렀는데 왜 아직도 저렇게나 어울리지 않는 걸까? 매회 입고 나오는 의상은 매일 남의 옷을 빌려입는 듯 부자연스럽고, 여전히 있는 힘을 다해서 오버하는 연기는 부잣집의 외로운 공주님과는 거리가 삼만리쯤 멀어 보인다. 


그에 비해 꽃집 딸네미 문채원(여의주)의 자연스러움은 이미 그녀가 캐릭터와 일치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로 나오시는 관록의 권기선씨와 비교해도 거의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예전에 '배우 윤상현을 주목하는 이유' 라는 포스팅에서 윤상현을 가리켜 '끼를 타고난 연기자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문채원에게도 그 말이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김영애씨가 "연기는 그 캐릭터를 내 안으로 받아들이기까지가 힘들다"고 말씀하셨는데, 윤상현이나 문채원처럼 신인 시절부터 연기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들의 특징을 보면, 캐릭터를 흡수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드라마의 초반부터 이미 캐릭터와 일치해 있기 때문에 연기에 억지가 없고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눈먼 새의 노래'에서의 신들린 맹인 연기로 데뷔작부터 주목을 받았던 안재욱도 그러한 신인이었다. 물론 노력도 했겠지만 그런 정도의 능력은 연기자의 끼를 타고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도 같다.

'아부해' 5회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가씨 강혜나 역을 문채원이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몇몇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천한 것들~" 하고 내뱉으며 짓는 도도한 표정... 와인 창고 바닥에 홀로 주저앉아 사랑의 아픔을 달래며 주정하는 모습... 변호사 이태윤(정일우)에게 과감히 대쉬하는 당당한 모습... 집사 윤상현(서동찬)을 수시로 구박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 그런 강혜나의 자리에 모두 문채원을 대입시켜서 상상해 보았다. 그랬더니 드라마의 전체적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처럼 발랄한 서민 아가씨 역도 잘 어울리지만 문채원에게는 저절로 풍겨나오는 고급스런 이미지가 있다. "천한 것들~" 이라는 대사가 원래 손발이 오글거리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 말이 문채원의 입에서 나왔다면 충분히 매력있게 표현되었을 것 같다. '환상의 커플'에서 한예슬이 유행시켰던 "꼬라지 하고는~" 이 대사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단어이지만, 완벽히 고급스럽고 도도해 보였던 조안나의 이미지 때문에 그런 오글거림이 속시원한 매력으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때로는 차가울 만큼 도도하지만, 때로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가씨답게 순진하고 허당스러운 강혜나의 이미지를 문채원이라면 꽤 잘 살려냈을 듯 싶다. 그랬다면 강혜나는 지금처럼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운 아가씨가 아니라, 과격하긴 해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아가씨로 표현되었을 것이고, 윤상현과 정일우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히로인으로 탄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윤은혜는 차라리 발랄한 꽃집 아가씨 여의주 역을 맡았다면 그녀의 이미지에 썩 잘 어울려서 빛이 났을 것 같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질타를 받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이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지금 윤은혜를 보면 날아다니던 새를 손바닥만한 새장에 가둬 놓은 것처럼 답답하다. 너무 안 어울리는 옷을 입혀 놓은 거다.

처음의 접근 의도와는 달리 점점 성깔머리 공주님에게 빠져들어가는 능구렁이 집사 서동찬의 심리는 윤상현에 의해 비교적 섬세하고 리얼하게 그려지고 있다. 오빠처럼 아버지처럼 애인처럼... 언제나 곁에서 살갑게 챙겨주는 그런 집사의 존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에 그려볼만한 환상이다. 나는 '아부해'를 보면서 늘 "나도 저런 집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그 환상적인 사랑의 대상이 되는, 그 중요한 히로인이 아직도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돌고 있으니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아니라면, 황금 궁전에서 산다 해도 마음 편하고 행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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