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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물론 모든 여성 관객에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남성 못지 않게 액션과 전투씬을 즐기고, 배우 최민식을 열렬히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명량'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평소 액션이나 전투씬을 즐기지 않고, 배우 최민식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여성에게는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가 '명량'이었다. 일단 전투씬이 너무 길다.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투씬은 제법 장관을 이루어 상당한 제작비와 공을 들였음이 느껴지지만, 신기한 눈으로 감탄하며 지켜보는 것은 처음 몇 분에 지나지 않고 후반에는 무척 지루하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드라마적 스토리를 즐기기 때문에 전투씬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스토리의 일부로 인식할 뿐인데, '명량'은 대략 70~80% 가량이 해상 전투씬으로 채워져..
'상속자들' 후속으로 방송될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에 대중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 단연 화제의 중심에는 '해를 품은 달' 이후 명실상부한 최고의 대세남으로 떠오른 김수현의 이름이 있다. 최근 '도둑들'과 '베를린'의 연이은 흥행에 힘입어 스크린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전지현의 이름도 그 곁에 있다.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의 장태유 감독이 뭉쳤다는 사실도 기대감을 더하는데, '별에서 온 그대'라는 제목은 또 얼마나 로맨틱하고 달콤한가? 별에서 온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몽환적 스토리는 어린 시절 탐닉했던 순정만화의 낭만적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이 추운 겨울 날,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는 듯한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마이더스'는 참으로 복잡한 드라마입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이쪽저쪽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고 굵직한 비밀들이 밝혀지며 섬뜩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제발 이 복잡한 내용들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한 갈래로 합쳐지며 개연성 있는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벌여놓은 것이 워낙 많다 보니 수습을 못하고 용두사미가 될까봐 벌써부터 걱정이네요. 현재 겉으로 드러나 있는 중심적 갈등 구조는 김도현(장혁)과 유인혜(김희애)의 팽팽한 줄다리기입니다.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이 둘의 긴장감 넘치는 엎치락 뒤치락만 해도 꽤나 볼만하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중심추는 벌써 김도현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것이 우리 시청자의 눈에는 보입니다. 비록 모두가 염려하는 무리수 몇 가지를 던지고 있지만,..
원래는 이 포스팅의 제목을 "죽음이 삶에게 전하는 말" 로 정할까 했으나, 생각해 보니 그들은 멀지 않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일 뿐 죽은 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원래 희망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라 기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떠난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어차피 드라마 속에서 이 사람들은 김도현(장혁)과 이정연(이민정)을 도와주기 위해 등장했고,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곁을 떠날 테니까요. 방탕한 생활의 극치를 달리다가 중병에 걸리고 나서 천사로 변신한 유명준(노민우)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가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래서 쉬임없이 피아노를 치며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소아암 환자를 돕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도 합니다. 한때는 탐욕의 눈으로 바라보던 이정연을 ..
유명준(노민우)은 '마이더스'가 시작될 때부터 제가 큰 관심을 가졌던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첫 등장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삽시간에 관심 밖으로 밀려났었지요. 지나치게 선정적이어서 충격이었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저는 충격보다 더 큰 짜증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자극적인 장면을 통해 일시적으로 얼마나 시청률을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변태스런 등장 때문에 캐릭터가 처음부터 망가지는 것은 신경쓰지도 않는 듯한 제작진의 어리석음 때문이었습니다. 재벌가의 서자는 온갖 드라마에서 지긋지긋하도록 흔한 캐릭터입니다. 외부적으로는 모든 것이 채워졌으나 내면적으로는 모성의 결핍을 비롯해 꼭 필요한 것들마저 채워지지 못한 그 언밸런스함은 언제나 사람을 심하게 망가뜨리지요. 유명준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식상한 설정을..
'마이더스'의 주인공 김도현(장혁)은 어려서부터 돈을 향한 갈증에 시달려 왔으며 본능적으로 돈 냄새를 기막히게 맡을 줄 아는 인물입니다. 그의 부모가 평생을 발버둥치고 집착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처참한 모습을 보았기에, 도현은 한편으로 돈을 '악마의 덫'이라고 부르며 혐오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대 로펌들의 제안을 모두 뿌리치고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법무법인 대정'을 선택했을 때부터 그의 미래는 정해진 셈이었지요. 첫 만남에 대정 로펌의 대표 최국환이 '면접비'라는 명목으로 건네 준 엄청난 액수의 수표를 보는 순간 억눌려 있던 김도현의 욕망은 격발되었고, 그 길에 들어서자마자 선망의 대상이던 유인혜(김희애)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분..
엔딩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해야 했던 15회가 너무 실망스러웠기에, 솔직히 엔딩에 대한 기대감도 높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막판에 최대의 반전과 감동을 주려고 일부러 템포를 늦추는 건가 싶어서 한 가닥 희망은 놓지 않고 있었지요. 엔딩만 제대로 뽑아 낸다면 홍자매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만한 걸작이 되리라 생각했기에, 기대를 놓아버리기는 아쉬웠던 탓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악이라고까지 할만한 엔딩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구미호(신민아)와 차대웅(이승기)의 애달픈 사랑이 이루어졌으니까, 그리고 다른 인물들도 모두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보이며 행복해졌으니까 대략 흐뭇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영 개운치 않아서, 걸작이라고 해주기는 힘들 것 같아요. 작가의 원래 의도..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드디어 차대웅(이승기)의 역할이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지금까지는 '구미호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웅이가 잘 모르고 있었기에 수동적인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었지요. 오히려 놀라운 능력으로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박동주(노민우)의 역할이 더 두드러져 보일 때도 많았습니다. 물론 차대웅은 미호(신민아)가 사람이 아닌 구미호라는 것을 알면서도 용감히 사랑을 시작했고 그녀와 더불어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미호 때문에 자기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지 몰라, 그의 마음을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지요. 제가 보기에 대웅을 향한 미호의 사랑은 어쩌면 주인을 향한 반려견의 사랑과도 비슷합니다. ..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11회에서는 이제껏 한 번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두 명의 캐릭터가 의외로 상당히 닮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박동주(노민우)와 은혜인(박수진)은 여러모로 참 많이 다른 존재들이지요. 현재 은혜인은 구미호(신민아)에게 기울어져가는 차대웅(이승기)의 마음을 되찾아 오려고 기를 쓰는 중인데, 그것은 자기 어장의 큰 물고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싫어서일 뿐 사랑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드라마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캐릭터 자체만 보면 은혜인은 매우 평범하면서도 얄팍한, 매력 없는 인물입니다. 굳이 파악하고 어쩌고 할 것도 없어요. 그에 비해 박동주는 아직도 그 정체를 짐작조차 하기 힘든 미스테리한 존재이지요. 구슬을 품은 상태의 멀쩡한 구미호를 단숨에 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10회에서는 좀처럼 알 수 없던 박동주(노민우)의 진정한 의도가 조금씩 드러났습니다. 그는 구미호(신민아)를 차대웅(이승기)에게서 떼어놓고 그녀 혼자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합니다. 근본적으로 미호에게 나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비록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하겠지만 이로써 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그러니까 길달이 이루지 못한 소원을 대신 이루는 셈이지요. 대웅이가 죽건 말건 동주는 관심이 없습니다. 미호를 살리려면 그 녀석이 죽어야 하니까, 지금은 그저 배신하지 않고 잘 버틴 후에 곱게 죽어 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동주가 미호를 사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미호의 마음을 대웅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동주는 이제 적극적으로 유혹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