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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너의 등짝에 스매싱' 홈페이지에는 "인생의 후반부에서 한 순간에 몰락해 버린 베이비부머 세대 가장의 눈물겨운 사돈살이, 또 애석하리만큼 큰 시련을 맞게 되는 영이 맑은 한 청춘이 꿈과 사랑에 대해 눈뜨는 웃픈 성장기를 담은 시트콤" 이라는 프로그램 소개가 나와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현재 가장 불쌍한 처지로 사돈살이를 하고 있는 박영규와 박현경(엄현경) 부녀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모두가 깨알 재미를 주는 소중한 캐릭터들이지만. 그런데 아무리 현재 처지가 난감하다 해도 나는 박영규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작품들을 살펴볼 때, 김병욱(스텐레스김)은 중년 이후 캐릭터들에게 아무리 큰 시련을 주었더라도 결국은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도록 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노준혁... 아니, 홍혜성(여진구)은 그렇게 떠나 버렸다. 그가 남긴 휴대폰과 베개 등으로 실시한 두번째 유전자 검사 결과는 놀랍게도 '불일치'였다. 부모의 유전자와 일치한다고 나왔던 첫번째 유전자 검사는 원인불명의 오류였던 것이다. 우리는 홍혜성이 오이사(김광규)의 농간에 속아서 자기가 진짜 아들인 것을 모른 채 가짜라고 착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착각하고 있던 것은 우리였다. 홍혜성은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에 따라 가족이었다가도 아니게 된다는 현실이 어쩌면 이리도 허망할까? 지난 8개월 동안 그들은 분명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이었는데. '감자별'이 지구로 돌진해 오자 공포를 느낀 지구인들은 급기야 핵무기를 탑재한 인공위성으로 별을 파괴했..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란 법화경의 한 구절로서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어느 정도 인생을 알아갈 때쯤이 되면 '회자정리'의 먹먹한 슬픔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거자필반'에는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은 떠나기보다 훨씬 어렵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 또한 헤어지기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자필반'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회자정리'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짐작컨대 '거자필반'을 '회자정리' 뒤에 붙여둔 것은 중생의 애달픔을 불쌍히 여긴 성현들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아주 가끔씩은 '거자필반'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작년 가을부터 소소한..
한 사람이 갑자기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가벼운 말 한 마디에도, 무심한 동작 하나에도 변화는 깃들어 있다. 변화는 설렘을 가져오고,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일으킨다. 나진아(하연수)에게 마음을 고백한 후 그녀를 대하는 노민혁(고경표)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그 까칠한 잘난척 대마왕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리는 모습을 보니 온 몸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김병욱 PD의 전작들에 비해 '감자별 2013QR3'의 러브라인은 단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노민혁의 고백을 듣고 고민하던 나진아는 문자를 보낸다. "대표님, 저녁에 잠깐 뵐 수 있을까요?" 그녀가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은 처음이었다. 노민혁은 순순히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최근 '감자별 2013OR3'에서는 설렘이나 감미로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저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나열하며 간헐적인 웃음을 주었을 뿐이다. 이제껏 김병욱 PD의 작품을 관통하던 시트콤답지 않은 멜로의 애틋함도 없거니와 아리송한 전개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러브라인도 없다. 오히려 노민혁(고경표)이 기억을 잃고 7살 어린아이가 되었을 때는 더 흥미롭고 설렜는데, 기억을 되찾고 어른이 된 후부터는 급격히 설렘이 사라졌다. 7살 노민혁은 순수한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며 거침없이 나진아(하연수)에게 다가섰지만, 29살 노민혁은 뻣뻣한 외양 속에 마음을 감추고 한켠에 물러선 채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는 동생 노준혁(여진구)을 배려하는 행동이었겟지만, 표현하지 않는 사랑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감자별 2013QR3' 제63회에서는 여주인공 나진아(하연수)를 사랑하는 노민혁(고경표)과 노준혁(여진구) 형제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여진구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홍혜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노준혁은 노수동(노주현)의 잃었던 막내아들로 밝혀진 (비록 본인은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지만) 이후 자신의 본래 이름을 되찾았고, 가업인 장난감 회사 (주)콩콩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후에는 사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여진구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차후 노준혁 캐릭터의 이름은 여진구라고 지칭한다.) 현재 여진구와 나진아는 서로 아닌 척하고 있지만 사실상 연인이라고 해도 좋은 관계이다. 그들은 상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으며, 상대의 마음도 어렴풋..
기발함과 섬뜩함과 유쾌함이라는 세 가지 상반된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김병욱의 능력은 역시 탁월하다.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나쁜 짓을 하면은~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우리에게 들키지~♬" 추락사고 이후 기억상실증으로 7세 어린이가 되어버린 노민혁(고경표)은 줄곧 1991년 그 당시 한창 유행했던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를 태블릿 PC로 되풀이해 보면서 그 주제곡을 불러댔다. 나와 함께 '감자별'을 시청하던 신랑이 어느 날 갑자기 물었다. "왜 하필이면 저 노래일까요?" 나는 무심히 대답했다. "그냥 그 때 유행했던 만화라서겠죠.." 하지만 알고 보니 그냥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 당시 인기를 끌었던 만화가 한 두 편은 아닐진대, 그 중에서 하필 '날아라 슈퍼보드'가 선택된 것은 치밀한 계획..
김병욱 시트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웃음의 미학과 슬픔의 미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뿜어내는 중독적 카타르시스라 할 것이다. 등장인물 각각의 캐릭터가 아주 극적이면서도 뚜렷하게 표현되어 시청자의 강한 몰입을 이끌어 낸다는 특징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외에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미스테리 요소를 집어넣어 추리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인데, 김병욱의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단 미스테리가 삽입되면 극의 전개는 훨씬 생동감 있고 흥미로워진다. 대표적으로는 '하이킥' 시리즈의 첫 작품이었던 '거침없이 하이킥'을 들 수 있겠다. 풍파 고등학교의 히로인 강유미(박민영)와 그 가족들의 미스테리한 정체는 무려 167회에 달하는 긴 시트콤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며 끝없는 이..
내가 김병욱 시트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그 독특한 멜로의 분위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김병욱이 그려내는 것만큼 미칠 듯 설레면서도 저절로 가슴이 시려오는 멜로 장면들을 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잔인하다 싶을 만큼 적나라하게 파헤쳐 놓는 작품들이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통해 아픔과 상처를 달랠 수 있다. '감자별 2013QR3'은 초반부터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더니 불과 13회만에 기쁨과 슬픔, 설렘과 떨림, 격정과 원망, 애틋함과 그리움 등의 감정을 모조리 담아낸 러브라인이 시청자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도대체 김병욱은 얼마나 공들여서 이번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직 초반에 불과한데도 벌써부터 기존의 다른 작품들을 훨씬 뛰어넘는 완성도..
운명의 그 날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던 소행성 2013QR3은 다시 경로를 바꾸어 지구의 위성이 되어 버렸고, 밤하늘에는 거짓말처럼 두 개의 달이 떠올랐다. 지구의 종말과 죽음을 예감하며 공포에 떨던 사람들은 저마다 치열한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되고, 그 색다른 내면적 체험들은 더 이상 지구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일이 없으리라 여기며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한 사람들 중 몇몇은 상대방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 그 날부터 꿈 같은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8살난 규호와 혜림이 커플도 있었다. 사랑하고 뽀뽀하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고 규호 엄마 노보영(최송현)은 타이르지만, 염세적 종말론자(?)인 규호는 어른이 되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