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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별' 노민혁의 때늦은 고백, 사랑은 운명이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감자별 2013QR3

'감자별' 노민혁의 때늦은 고백, 사랑은 운명이다!

빛무리~ 2014. 4. 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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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감자별 2013OR3'에서는 설렘이나 감미로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저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나열하며 간헐적인 웃음을 주었을 뿐이다. 이제껏 김병욱 PD의 작품을 관통하던 시트콤답지 않은 멜로의 애틋함도 없거니와 아리송한 전개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러브라인도 없다. 오히려 노민혁(고경표)이 기억을 잃고 7살 어린아이가 되었을 때는 더 흥미롭고 설렜는데, 기억을 되찾고 어른이 된 후부터는 급격히 설렘이 사라졌다. 7살 노민혁은 순수한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며 거침없이 나진아(하연수)에게 다가섰지만, 29살 노민혁은 뻣뻣한 외양 속에 마음을 감추고 한켠에 물러선 채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는 동생 노준혁(여진구)을 배려하는 행동이었겟지만, 표현하지 않는 사랑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노준혁과 나진아의 러브라인도 짜릿한 감미로움을 선사하던 초반에 비하면 상당히 밋밋해졌다. 물론 앞으로 남아있는 22회 동안 삼각관계의 긴장감이 바짝 조여지며 애절함도 살아나겠지만, 어쨌든 현재까지는 그냥 친한 친구처럼 편안할 뿐이다. 오죽하면 눈밭 키스신에서조차 설레거나 두근거리지 않고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하이킥' 시리즈를 비롯한 김병욱의 전작들에서 주인공의 러브라인은 마치 소중한 화분처럼 다루어졌었다. 매일 정성스레 상태를 체크하고 정확한 때에 물을 주며, 수분이 부족해 시들거나 반대로 수분이 지나쳐 썩지 않도록 세심히 키워 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감자별'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은 무심히 방치된 채 말라가는 화분 같다. 공들이지 않은 티가 많이 난다.

 

막판에 아무리 커다란 반전이 일어난다 해도, 나진아의 마음이 노민혁에게로 돌아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어린애가 되어버린 노민혁을 살뜰히 보살피던 나진아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녀의 내면에 측은지심과 모성애가 매우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차라리 노민혁의 뇌수술이 실패하여 그 상태 그대로 평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면 오히려 나진아와의 러브라인에 더 많은 가능성이 실렸을 것이다. 나진아는 측은한 마음에 자꾸만 노민혁을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고, 노준혁은 회복 불가능한 형을 대신해서 '콩콩'의 후계자가 되어야 했을 테니 말이다. 비록 나진아의 조건이 초라하지만 노민혁의 상태가 그렇다면 집안에서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고,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진 노준혁은 형의 행복을 빌며 물러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노민혁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지금은 나진아가 측은지심이나 모성애를 느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 잘난척 대마왕 앞에서 매일 고개나 꾸벅꾸벅 숙이고 있는데 무슨 애틋한 감정이 생겨날 것인가? 남녀 관계에 있어 노민혁은 정말 순진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다. 그에 비하면 막내동생 노준혁은 선수처럼 보일 지경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집이나 회사에서 마주칠 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거나 살뜰히 챙겨주면서 표현할 법도 한데, 나진아를 대하는 노민혁의 태도는 나무토막처럼 메마르고 쇳덩이처럼 차가웠다. 그 와중에 회사 업무를 핑계로 진아를 남산까지 불러 고백하려 했을 때, 통신 장애로 엇갈리게 된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느닷없이 그런 장소에서 거창한 고백을 받았다면 진아는 얼마나 놀랍고 난처했을까?

 

나진아의 운명의 짝은 노준혁이 확실해 보인다.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프로포즈를 준비한 노민혁은 찬바람 부는 남산에서 1시간을 기다리고도 그녀를 만나지 못했는데, 아무 생각없이 버스 정류장에 내린 노준혁은 마치 당연한 듯 그녀와 마주쳤다. 매일 단짝처럼 붙어 다니며 서로를 위로하고 웃게 해주는 습관에 젖어버린 그들은, 이제 서로가 없는 일상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게 되었다. 오랜만에 고교시절 교복을 차려입고 준혁의 모교를 찾아가던 날, 진아는 말했다. "신기하다. 우리가 모르던 시절의 네가 있었다는 게... 하도 붙어 다녀서 그런가? 난 태어날 때부터 너랑 알고 지낸 느낌이었거든!" 진아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며 교실에 들어선 준혁은 예전에 늘 앉았던 맨 뒷자리에 앉아 햇빛 쏟아지는 창가에 선 그녀를 바라본다. 

 

 

순간 왠지 모르게 저려오는 가슴... 언젠가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아련하고 애틋하게 차오르는 그리움...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들은 모두 김병욱 PD가 메인 커플만을 위해서 준비해 두었다가 하나씩 풀어내는 보물들이다. '하이킥3'의 윤계상이 봄 햇살 쏟아지는 나무 아래서 잠들어버린 김지원을 내려다보다가, 깨우지 않고 가만히 그 곁에 앉아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펼쳐들던 장면을 기억하시는가? '지붕뚫고 하이킥'의 신세경이 낡은 레코드점 한 구석에서 음악에 취해 잠든 이지훈(최다니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면을 기억하시는가? 그 레코드점은 조용히 혼자 놀던 지훈의 대학시절 추억이 담긴 장소였다.

 

잠시 후 지훈과 헤어진 세경은 혼자서 그 레코드점을 다시 방문하는데, 그녀는 풋풋한 대학시절의 지훈이 곁에 앉아있는 듯한 환영을 본다. 그 장면은 진아와 고등학교 때 만나는 모습을 상상하던 준혁의 환영과 묘하게 겹쳐지며 데자뷰 현상을 일으켰다. 스텐레스김의 사랑과 인연은 언제나 운명의 힘에 따라 움직인다. 사랑은 노력으로 찾거나 이루거나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라는 느낌이다. 진짜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늘 함께였던 것처럼 영혼으로 일치한다. 서로 만나기 훨씬 전부터 너는 내 곁에 있었던 것만 같고, 내가 몰랐던 그 시절의 너를 왠지 나는 본 것만 같다.

 

 

이런 상황에서 노민혁의 때늦은 각성은 안타까울 뿐이다. 그의 사랑 고백은 참다 못해 터뜨리는 풍선처럼 갑작스러웠으며, 한치의 요령도 없이 뻣뻣하고 불편했다. "나진아씨, 내가 프로포즈한 거 기억해? 나진아씨가 그러겠다고 한 것도? 그 약속 안 지킬 생각인가?" 정말 느닷없는 질문이었는데, 나진아는 아주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머뭇거림 없이 "네" 하고 대답했다. 그녀가 조금만 더 당황했어도 남자가 조금은 덜 불쌍했을텐데, 충격은 커녕 심드렁해 보이는 진아의 표정을 보니 맥이 탁 풀렸다. 드디어, 드디어 노민혁이 제대로 고백을 하는구나 싶어서 긴장하려던 참인데, 그녀의 마음을 흔들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던 것이다.

 

"약속이니까 무조건 지키란 소리는 아냐. 그 약속이 미련한 약속일 때는 더더욱...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는 게 좋겠네. 지금 나를 가장 좋아하거나, 앞으로 그럴 자신이 있으면 그 약속 지키라고... 아니면 내가 그 약속에서 풀어주지. 어떡할래? 말했듯이 난 미련한 약속마저도 죽어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냐. 얘기를 꺼낸 이유는... 난 약속보다... 나진아씨를 좋아해서야. 진심으로... 나진아씨는... 자신없지? ... 오케이." 세상에 이렇게 멋없는 사랑 고백이 또 있을까? 혼자 떡밥 던지고 혼자 거두어 가며 혼자 중얼거리다가 끝내버리는 고백이라니!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가슴엔 더욱 뜨겁게 불이 붙은 모양이다. "네가 정말 좋아하면 친동생의 여자라도..." 하는 친구의 말끝을 가로채며 노민혁은 외쳤다. "뺏을까?"

 

 

전작들과 달리 애매모호한 느낌이 적고 러브라인이 너무 단순 명확해 보여서 쫄깃한 재미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김병욱이 괜히 김병욱이던가? 이제부터 또 어떤 식으로 뒤통수를 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내용이 너무 잔잔하고 밋밋했기에 오히려 더욱 신선하고 기괴망측한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슬픔에 빠져도 좋고, 황당함에 뒷목 잡고 쓰러져도 좋으니, 아무쪼록 막판 스퍼트를 바짝 올려 주면 좋겠다. 일설에는 나진아와 노씨 형제의 삼각 멜로가 본격화되고 갈등이 고조되면 그 순간 감자별이 지구로 떨어져서 모두 죽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던데, 설마 스텐레스김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작품을 그렇게까지 대충 마무리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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