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춘추 (15)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어머니, 소자 춘추(春秋)이옵니다.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너무 늦게 돌아와 마지막 싸늘한 손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춘추이옵니다. 겨우 말을 배울 어린 나이에 어머니 품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리워만 하다가 때로는 원망도 하였습니다. 저를 떠나 보내시던 그 애틋한 모습을 어찌 한시라도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열 밤, 스무 밤보다도 더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한다며 울먹이시는 어머니 앞에서, 철없는 저는 놀러가는 아이처럼 마냥 들떠 있었더랬지요.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비록 저와의 헤어짐을 슬퍼하며 울고 계셨지만, 얼마나 젊고 고우셨는지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원망합니다. 이모님이 아니었더라면 어머니는 여전히 고..
사실 지난번에 "문노가 제자 비담에게 주는 편지"를 작성했으니, 오늘은 "비담이 스승 문노께 드리는 편지"를 작성하여, 아버지같은 스승을 마지막으로 떠나 보내는 비담의 절절한 심경을 담아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판에 염종을 따라가는 비담의 약간 뒤집어진 눈빛을 보니 도대체 이 녀석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짐작할 수가 없어서, 비담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려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답니다. 비담은 내력이 파란만장하고 상처가 많은 아이라는 점만은 확실하지만, 아직도 선악의 경계에서 격렬하게 흔들리는 녀석이라 오직 다이내믹할 뿐 종잡을 수가 없어요. 캐릭터와의 감정 일치에 실패한 관계로, '선덕여왕' 37회 리뷰는 편지 형식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 리뷰로 진행됩니다. 편지 시리즈를 기대하셨던 분들께는 ..
너희들이 나 미생랑(美生郞)을 아느냐? 나는 10세 풍월주로서 미진부공의 아들이며 미실궁주의 아우이니라. 생전에 진흥대제께서 나를 얼마나 총애하셨는지 아느냐? 나를 자주 궁으로 부르시어 태자님들과 어울리어 춤추며 놀게 하셨느니라. 그러다가 수많은 공주들이 나의 빼어난 용모와 화술에 혹하여 먼저들 손을 뻗어오니 내 어찌 거부할 수 있을소냐? 그 일을 아신 진흥대제께서 잠시 노하셨으나 곧 슬쩍 넘어가 주셨느니라. 나를 향한 대제의 총애가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알법하지 않으냐? 물론 누님의 입김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야 없지만 말이다. 누님께 천신황녀의 자리를 선물한 자는 애초에 사다함이라 하겠으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했던 나 미생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어찌 가능하기나 했을소냐! 비록 월천대사처럼 천문학에..
춘추야... 너는 알잖아... 알면서 그러는 거잖아. 그 어린 나이에 너는 혼자서 외국 생활을 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벅찼을텐데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텐데 네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 춘추야... 네 엄마는 어쩔 수 없었어. 엄마를 원망하면 안돼. 알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너를 걱정했던 엄마야. 너의 엄마 천명공주도... 너 못지 않게 외롭고 슬펐어. 춘추야... 알지? 네 속이 지금 어떨지... 나는 상상하고 싶지 않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프거든. 그래도 다행이야. 춘추... 너는 정말 똑똑한 아이이고 어려서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그 결과로 네가 누군지를 알고 있잖아. 얼마든지 꿈꿀 수 있고, 얼마든지 당당하잖아. 그게 얼마나 큰 특혜인지 너는 아직 모르..
'선덕여왕' 33회는 비담(김남길)을 위한 챕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생각보다 좀 빠르고 쉽게 비담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아차리게 되고, 그놈의 출생 때문에 몇달간을 부들부들 떨며 삽질하던 덕만공주(이요원)와는 달리 눈부신 속도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거친 날개짓을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살포시 피어나는 멜로 라인들이 눈에 보이는데, 현재로 봐서는 양쪽 다 비극으로 치달을 듯 싶어서 안타깝기만 하네요. 첫번째 멜로라인은, 유쾌하기는 하지만 몹시 생뚱맞은 죽방(이문식)의 소화(서영희)를 향한 연정(戀情)입니다. 죽방과 고도(류담)는 이미 소화와 더불어 좁아터진 헛간에 함께 갇힌 상태로 몇달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물론 그때는 제정신도 아니었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꾀죄죄한 몰골이긴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