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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춘추(春秋)의 편지, 어머님 전상서(前上書)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편지시리즈

'선덕여왕' 춘추(春秋)의 편지, 어머님 전상서(前上書)

빛무리~ 2009. 9. 3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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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소자 춘추(春秋)이옵니다.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너무 늦게 돌아와 마지막 싸늘한 손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춘추이옵니다.


겨우 말을 배울 어린 나이에 어머니 품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리워만 하다가 때로는 원망도 하였습니다. 저를 떠나 보내시던 그 애틋한 모습을 어찌 한시라도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열 밤, 스무 밤보다도 더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한다며 울먹이시는 어머니 앞에서, 철없는 저는 놀러가는 아이처럼 마냥 들떠 있었더랬지요.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비록 저와의 헤어짐을 슬퍼하며 울고 계셨지만, 얼마나 젊고 고우셨는지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원망합니다. 이모님이 아니었더라면 어머니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나마 살아계셨을 테니까요. 위기에 빠진 이모님을 구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그 먼 곳까지 가셨던 어머니는, 이모님을 대신하여 독화살을 맞고 돌아가신 게 아닙니까? 이모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단 한 순간이나마 어머니의 얼굴을 뵙고 싶은 제 마음속에서는 원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 앞에서도 내비친 적 없던 저의 속마음을 이모님 앞에서는 살짝 내비칠 수 있었습니다. 이모님께는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저는 오히려 그분이 편해서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겉으로는 헤실거리며 웃고 있어도 제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왠지 이모님께만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편지를 읽으며 한 해, 두 해... 내년이면 다시 만날 수 있겠거니 하고 간절히 기다려왔건만, 이젠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어머니를 만날 수 없게 된 이 조카의 비분(悲憤)어린 심정을 이모님께만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용서하다니요? 용서할 수 있는 일과 용서할 수 없는 일도 구분 못할 만큼, 춘추는 어리석지 않습니다. 대남보가 제 앞에 무릎을 꿇고 가증스런 그 입으로 제 어머니를 죽였노라 고백할 때, 그 자리에서 대남보의 하찮은 목숨 정도는 취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원흉은 피라미 같은 그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저는 훗날을 위하여 일단 덮어두기로 했습니다. 철저히 속이고 안심시켜야 했기에 그자를 따라 수나라를 떠나오면서부터 저의 삶은 연극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머니, 그 머나먼 타국에서 저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홀로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외로운 시간들 속에, 저는 순수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아들은 아직 어리지만 결코 순수하지 않습니다. 순수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저는 너무도 일찍 깨달아 버렸습니다.
저를 멍청이로 알고 있는 미생공과 대남보가 상상이나 할까요? 언젠가는 이 덜떨어진 소년 춘추의 손에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할머니를 마주 대하는 순간, 하마터면 울음이 터질 뻔했습니다. 스스로 철이 일찍 들었다 생각했건만 저 자신이 아직 어린애일 뿐임을 할머니 앞에서 저는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할머니의 치마폭에 엎어져 엉엉 울면 속이 좀 시원해질 것도 같았습니다. 그 동안 너무나 힘들었다고, 너무나 그리웠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저를 안고 우시는 할머니를 애써 담담한 얼굴로 외면하였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이런 제 마음을 알고 계십니까?



곡식을 매점매석하는 귀족들의 진정한 의도 따위, 제게는 처음부터 불을 보듯 훤한 것이었습니다. 단박에 알 수 있는 그 정도 이치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해서 헤매다니, 황실에는 정말 인재가 없더군요. 그 동안 미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알만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자 덕만 이모님은 의외의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가진 것과는 또 다른 눈부신 재능을 갖고 계시더군요. 저는 약간 흥미가 생겼습니다. 제 뜻을 이루기 위해, 이모님과 손을 잡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어차피 미실을 상대해야 하는 목적은 같으니까요. 이모님이 앞에 나서시고, 일단 그들에게 본색을 숨기는 데 성공한 저는 뒤에 숨어서 도와드리면 그런대로 괜찮은 연합전선이 형성될 듯도 합니다.

어머니... 이역만리 먼 곳에서 힘든 고통의 시간들을 겪으며, 저는 더 먼 곳을 볼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좁은 땅 안에만 갇혀 있었더라면 결코 볼 수 없었을 많은 것들을 저는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어머니의 보호 아래 화초처럼 자랐더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만큼, 저는 강해져서 돌아왔습니다.


애간장 끊어지는 슬픔을 참으며 저를 이역만리로 보내신 까닭이 이것이었습니까? 몸도 약하고 마음도 약하고 재주도 없는 저이기에,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강해져서 돌아오라고 그러신 것이었습니까? 제 신분의 위치상 모든 사람들이 저를 이용하려 들 것이기에, 약해서는 버틸 수 없을 것임을 아시기에, 그래서 어린 저와의 이별을 견뎌내셨던 것입니까?

어머니의 소원대로 되었습니다. 아들 춘추는 이제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누구도 저를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할 것이며, 제가 오히려 그들을 이용하여 제 뜻을 이룰 것입니다. 진흥대제 할아버지의 유명도 반드시 제가 받들어, 선조들의 숙원인 망라사방(網羅四方)의 대업을 이룩하고 말 것입니다.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가슴에 박힌 가시처럼 저를 아파하고 걱정하셨던 어머니... 안심하십시오. 어머니의 어린 아들은 이제 그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듣고 계시지요? 이제 아무 염려 하지 말고 편히 쉬세요... 저 김춘추가 모든 것을 다 이룰 것입니다.


* 퍼온 글이 아니라, 저의 개인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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