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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천명공주의 편지, 내 아들 춘추야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편지시리즈

'선덕여왕' 천명공주의 편지, 내 아들 춘추야

빛무리~ 2009. 10. 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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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春秋)야, 내 아들 춘추야, 머나먼 길에 고단한 몸으로 돌아온 너를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안아 줄 수만 있었다면 구천(九泉)에서도 이토록 한스럽지는 않았으련만, 이 못난 어미는 너에게 한 조각 힘도 위로도 주지 못한 채 이처럼 차가운 땅 속에 누워 있구나.


가엾은 내 아들 춘추야, 부디 굳건하게 너를 지켜야 한다. 네 어미는 언제나 겉으로는 강한 척하려 애썼으나 속은 그렇지를 못했어. 나는 너무 약했고 매일 두려움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떨고 있었다. 세 번째 남동생을 또 잃으신 어머니 마야황후의 애끓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황후전 밖에 서 있었을 때, 눈앞에 독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어렸었단다.

미실은 몸을 낮추어 나를 부드럽게 끌어안고는 귀에 속삭였지. "너 때문이다..."
춘추야, 나는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늘하게 식어서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 소름끼치는 두려움은 죽어 넋이 된 지금도 잊을 수가 없구나. 나 때문이라고, 내 사랑하는 동생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어머니가 저토록 슬프게 우시는 것이 모두 나 때문이라고 미실은 말하고 있었다. 그 날부터 나는 평생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단다.


나는 그래도 용감해야만 한다고, 강해져야만 한다고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살아갔다. 비록 여인의 몸이지만 나는 부왕과 모후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혈육이었고, 또한 살아남은 성골(聖骨)이었기에 아무리 버거워도 약한 모습으로 무너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주저앉기에는 내 어깨에 지워진 짐이 너무도 막중했다.

네 아버지 용수공을 만났을 때가 어미의 인생에서는 가장 행복하던 시기였다. 아무에게도 힘겨운 내색조차 할 수 없던 외로운 삶 속에서, 용수공은 나의 버팀목이며 휴식처가 되어 주셨다. 오래도록 그렇게 내 곁을 지켜 주시리라 믿었건만, 그토록 빨리 떠나실 줄이야 어찌 알았겠니? 춘추야, 네 아버지의 전사(戰死) 소식을 들었을 때, 내 귓가에는 다시금 미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때문이다..."

애써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아무에게도 내 마음 들키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했지만, 죄책감과 두려움은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를 압박했다. 내 동생들처럼, 내 남편도 나 때문에 죽은 거라고 생각하니 그 엄청난 고통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나를 짓눌렀고 나는 잠시 살아갈 힘을 잃었었다.

그 때 춘추야, 네가 나를 찾아왔다. 더없이 고맙고 기특한 내 아들 춘추야, 네가 어미를 살려냈단다. 내 안에서 살아 숨쉬며 움직이고 있는 너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갑자기 용솟음치던 삶의 의욕과 그 충만한 용기를, 그 넘치는 기쁨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느냐? 너 때문에 나는 강해졌고, 너 때문에 이 어미는 행복했다. 네 아버지가 떠나신 후 다시는 내 삶에 없으리라 생각했던 행복이 너와 함께 다시 찾아왔던 거다.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안전하게 지켜내야만 했다. 내 남동생들도 겨우 말을 배울 정도밖에 안되었던 어린 나이에 돌연 이름모를 병을 얻어 갑작스레 떠나가곤 했었다. 내가 상대하기에 미실은 여전히 너무나 벅찬 상대였고, 그 여인은 독사같은 형형한 눈빛을 잠시도 내게서 떼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독이 너의 여린 살에 닿을까 두려웠다. 네 아버지처럼 너마저 그렇게 잃을 수는 없었다.

아직도 어린 아기였던 너를, 꽃처럼 방실거리며 웃기만 하던 너를 이 품에서 놓아 보낼 때, 나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 했으나 간신히 버텨냈다. 네가 아직은 어리고 약해서 독사의 혓바닥을 피해 먼 곳으로 숨어야 하는 처지이나, 네가 헌헌장부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날에는 이 어미의 깊은 두려움과 슬픔을 말끔히 씻어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춘추야, 너를 떠나보낸 후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 아들 춘추가 부디 강건하기를, 백배 천배로 강해져서 돌아오기를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춘추야, 내 귀여운 춘추야, 마음 기댈 곳 하나 없고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그 머나먼 타국에서 혼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니? 너를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자식인 너는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지만, 어미인 나는 너에게 언제나 미안하기만 했다.

내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린 나이에 혼자 그토록 매운 바람을 견디며 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어미의 품에서 어리광도 부려가며 그렇게 자랐을텐데... 내 아들로 태어났기에 혹독하게 담금질 당해야만 하는 네 처지가 너무나 가엾어서 매일 밤 소리죽여 울었다.


춘추야, 너의 덕만 이모를 만났을 때 나는 진심으로 많이 기뻤단다. 하늘 아래 남아있는 내 형제가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 하지만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궁 밖으로 버려져 사막을 헤매며 얼마나 스산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았을 때, 나는 또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단다. 역시 또 "나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거다.

춘추야, 네 어미의 삶은 잔인했다. 나는 결코 그렇게 되기를 원한 적이 없건만, 내 사랑하는 가족들은 모두 나 때문에 죽어갔고, 나 때문에 모진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나는 어떻게든 죄책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너의 덕만 이모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네 아버지 용수공 이후로 내가 살며시 가슴에 품었던 유신랑을 떠나보내는 것은 견디기 쉽지 않은 아픔이었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단다. 그라면 덕만을 행복하게 해주리라 믿었기에 오히려 감사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했다. 어차피 궁궐의 모진 바람은 내가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이니, 덕만 그녀는 평범한 여인의 삶으로 순하게 살아가기를,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운명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은 독화살이 날아와 가슴에 박힐 때, 내 머릿속에는 수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독이 퍼져가는 아픔보다 더한 것은, 이제 내가 떠나면 나를 대신하여 그 모진 바람을 감당해야만 할,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내 아우 덕만...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의 춘추... 너를 이 험한 세상에 이제는 정말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어미의 마음을 춘추야, 네가 혹시라도 알고 있을까?

네가 돌아오면 제일 먼저 안아주려고 했는데... 먼 길 오느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이 소매로 닦아 주고... 먼지 앉은 머릿결은 이 눈물로 감겨 주려 했는데... 내 아가, 불쌍한 내 아가, 이제 너는 이 궁궐에서 이 어미 만큼이나 외롭게 살아야 하겠구나. 내 비록 연약하지만 너에게만은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내 몸이 산산히 부서지더라도 네 곁에서 지켜 주려 했는데... 운명은 네 어미에게 끝까지 잔혹하였구나.


춘추야, 부디 강건해야 한다. 굳게 너를 지키고, 네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을 꿋꿋이 감당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힘겨워도 네 가슴에서 온정을 말려버리지 않도록 해라. 네 가슴에 따뜻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꿈을 이룬다 해도 너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단다. 어린 나이에 치러야 했던 많은 고통들이, 네 가슴을 차갑게 메말려 버린 것 같아서 못난 어미의 가슴은 지하에서도 아프게 찢어지는구나.

춘추야, 네가 강하고도 따뜻한 사람이 되도록 이 어미가 도와주마. 몸은 스러졌어도 넋이 남아 있으니, 이 넋이 다할 때까지 이 어미는 빌고 또 빌 것이다. 춘추야, 춘추야... 내 아들 춘추야...


* 퍼온 글이 아니라, 저의 개인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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