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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비담(毗曇)의 독백-제1막(회고回顧)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편지시리즈

'선덕여왕' 비담(毗曇)의 독백-제1막(회고回顧)

빛무리~ 2009. 9. 23.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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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친구, 지금 나를 보고 있나? 내 이름은 비담이라고 해. 마냥 자유로운 영혼이지. 
이제껏 살아오면서 크게 바라는 것도 없었어. 그저 산으로 들로 마음껏 노닐면서 한 세상 즐기고 싶었을 뿐이야. 어머니도 나를 버렸고 세상도 나를 버렸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이 세상이 꽤나 예쁘게 보였거든.


나는 원래 가진 것이 없었어. 허름한 누더기를 걸치고 스승님을 따라다니며 언제나 하루의 먹을 것과 하루의 잠자리만 있으면 그뿐이었어. 나는 그런 삶이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고, 남들도 모두 그렇게 사는 줄만 알았지. 이미 양 손 가득히 뭔가를 잔뜩 움켜쥐고서도 부족하여 더 가지려고 헉헉대는 인간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줄을 내 어찌 알았겠어?

부모가 갓난아이인 나를 버렸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뭐 괜찮아. 그럴만한 사정이 있지 않았겠어? 하루의 식량조차 구할 수 없을 때면 스승님과 나도 굶는 일이 허다했는걸. 당장 굶어죽을 지경인데 능력도 없고 평범한 사람들이 별 수 있었겠어? 어린애 따위는 짊어지고 다녀봐야 머지않아 시체가 되었을 테니 차라리 버리는 쪽을 택했던 그 심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나는 덕분에 능력 좋은 스승님을 만났으니 세상엔 꼭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었단 말씀이지.


어느 날 스승님은 우리가 위험한 곳을 떠돌며 고생하는 이유가 모두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언젠가 내가 이룰 대업(大業)을 위해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계신다는 거였어. 그 대업이 뭔지도 몰랐지만 나는 너무 좋아서 하늘로 붕붕 떠오르는 느낌이었어. 우리 스승님 같은 대단한 분이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시는 거라면 그야말로 엄청 좋은 것 아니겠어? 그 모든 것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고, 그 모두가 내 것이라고 스승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어.

스승님이 보물처럼 아끼시던 지도책은 그 뭔지 모를 대업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물건 같았어. 그런데 멍청한 놈들이 달려들어서 그것을 빼앗아갔단 말이지. 아주 나쁜 놈들이었어. 그들에게서 보물을 다시 빼앗아 와야만 했는데 내가 가진 것이라곤 이 조그만 머릿속에 들어있는 총명함뿐이었단 말씀이지.

나는 음식에 초오(草烏)의 독을 넣어 그들에게 갖다 주었어. 내 물건을 빼앗아 놓고서도 내가 주는 음식을 아무런 의심 없이 허겁지겁 달려들어 먹어치우다니,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한 놈들이 있나? 너무 쉬워서 싱거울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스승님이 지키라고 하신 보물을 되찾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 스승님은 분명 내게 칭찬을 해주실 거라 믿었어.


그런데 나는 스승님의 얼굴이 그토록 새파랗게 질린 것을 처음 보았어. 그 같잖은 놈들 몇명을 죽인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실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 스승님은 나에게 글공부와 무예를 가르쳐 주셨고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이르셨지만, 사람을 죽이면 절대로 안된다고 가르치지는 않으셨어. 나쁜 놈들을 죽이지 않을 거라면 대체 무예는 뭣하러 배우는 거지?

그 날 이후로 스승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지 않았고 손도 잡아 주시지 않았어. 나는 억울했지만 감히 왜 그러시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었고, 내 입장을 해명하거나 대들 수도 없었어. 세상에 거리낄 것 없는 이 비담이가 오직 한 사람,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분이 바로 스승님이셨으니까 말야. 그런데 스승님이 가끔씩 오히려 나를 무서워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실 때면 가슴 한쪽이 저릿저릿 했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한동안 그렇게 지내는 세월도 나쁘지만은 않았어. 예전처럼 따뜻하시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스승님은 아버지처럼 내 곁을 지켜 주셨고, 나날이 무예가 출중해지는 나는 이 산 저 산을 훨훨 날아다니게 되었지. 속세로 내려오면 때때로 별 시덥잖은 재주를 지닌 것들이 시비를 걸곤 했는데, 나의 능력을 숨긴 채 일부러 몇 대 맞아 주는 재미도 쏠쏠했어. 속으론 "가소로운 것들~" 하면서 킥킥거리는 거지.

그래도 내 손에 쥐고 있는 고기를 빼앗아가는 데야 참을 수 없지. 그러잖아도 스승님이 고기를 못 먹게 하셔서 늘 굶주려 있는데 말야. 내 고기를 짓밟은 놈들을 죽이러 쫓아갔는데, 마침 거기서 예쁘장하게 생긴 낭도 덕만이가 그놈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어. 일부러 구해 주려던 건 아니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구해 주게 된 거였지. 그런데 그 낭도 덕만이가 바로 공주였다니, 살다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일도 있더라구.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스승님 외의 다른 사람과 제대로 인연이라는 것을 맺게 되었어. 뭐, 일단은 나에게도 친구라는 것이 생겼다는 그 기분이 참 묘하더란 말이지. 멋대가리 없는 김유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리여리하게 생겨서는 성질은 팔팔하고 눈물은 많고 머릿속 지혜는 반짝반짝 빛나는 공주님이 갈수록 예뻐 보이더란 말이야. 뭔지는 모르겠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

그래서 나는 그 예쁜 공주님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험난한 궁궐로 뛰어들게 되었지. 내가 워낙 간곡히 청해서인지 스승님도 말리지 않으셨어. 그런데 나의 스승님이 바로 국선 문노였다는 놀라운 사실이 그 뒤에 또 숨겨져 있지 않았겠어?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야. 낭도 덕만이는 공주님이고, 내 스승님은 국선 어르신이고, 이제 계속해서 밝혀질 다른 비밀들이 또 있을까? 나는 점점 신명이 나고 궁금해지기만 했어.

여하튼 이렇게 해서 나 비담이의 삶은 스승님과 더불어 천지 삼한을 주유(周遊)하던 제1장의 막을 내리고, 파란만장한 제2막으로 접어들게 되었던 거야. 


* 퍼온 글이 아니라, 저의 개인 창작물입니다. 불펌은 삼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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