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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 김완선, 노래 속에 담긴 그녀의 인생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승승장구' 김완선, 노래 속에 담긴 그녀의 인생

빛무리~ 2011. 4.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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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의 외로운 인생은 '승승장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두 명의 '몰래 온 손님' 중 한 사람은 간신히 안면을 튼 정도일 뿐 친하다고도 할 수 없는 후배가수 지나였고, 또 한 사람은 20년지기 매니저인 신현하였습니다. 김완선의 보호자였고 매니저였던 이모 한백희는 조카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또 많은 것을 빼앗기도 했는데, 빼앗은 것들 중에 가장 큰 것은 돈이 아니라 대인관계의 능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무리 중간에 공백이 잦고 길었다지만 연예계에 데뷔한 후 수십년이 흐르도록,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토크쇼에 손님으로 초대할 절친 한 명이 없다는 것은 정말 시리도록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15세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집을 떠나 이모 한백희의 손에 맡겨지는 순간부터 김완선의 삶은 모든 평범한 것들과는 멀어졌지요. 김완선은 자기 인생을 표현하는 중요한 단어 중 하나로 '점쟁이'를 선택했는데, 저는 그 부분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이 아이는 부모와 인연이 없으니 함께 살면 명이 짧을 것이고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제 명을 다할 것이다" 라는 어느 점쟁이의 말을 듣고 어머니가 자기를 이모에게 데려갔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삶은 점쟁이의 말 한 마디에 의해 변화되었다고 지금도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주에 김완선은 "어머니는 나를 가수로 만들 생각이 있어서 이모에게 맡기셨는데, 아버지는 반대하셨기 때문에 나를 어서 다시 데려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노래하고 춤 추는 것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렸다" 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김완선 본인의 선택이었던 겁니다. 그녀가 원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도 있었어요.

그 후에 이모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점쟁이의 한 마디로 바뀌어 버린 내 서글픈 인생이라고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비록 이모의 손에 조종되는 리모콘처럼, 아바타처럼, 서커스단의 코끼리처럼 살았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출발은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지금의 새출발에도 더욱 힘이 실릴 것입니다.

한백희는 정말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매니저로서, 17세의 조카 김완선을 데뷔하자마자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록의 대부 신중현,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터 이장희, 산울림의 김창훈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을 포섭하여 김완선의 앨범을 제작하게 했으니, 한백희의 인맥과 파워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매니저를 만났으니 가수로서의 김완선은 더 이상 운이 좋을 수 없었던 셈이지요. 다만 그 행운이 인간으로서의 행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 게 탈이지만요.


더불어 한백희는 재능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기타리스트 손무현은 김완선 5집이 발표되던 1990년 당시 겨우 23살의 젊은이였는데, 한백희는 손무현의 기타 솜씨를 눈여겨보더니 "너는 작곡을 해도 잘할 것 같다. 한 번 해봐!" 하면서 다짜고짜 방에 감금하다시피 하여 작곡을 시켰답니다. 그래서 손무현은 그 방에서 밤을 꼬박 새워가며 작곡을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들이 김완선 5집에 모두 실렸다고 합니다.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 3곡이 연달아 히트했던 김완선 5집은 지금 들어도 손색없는 불후의 명반이지요.

제가 보기에는 김완선이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만들었다는 노래 '세븐틴'보다도 1990년에 발표된 5집의 노래들이 특히 그녀의 삶을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습니다. 손무현의 멜로디도 좋지만, 어디서 그렇게 훌륭한 작사가들을 섭외했는지 노래마다 가사가 너무 좋아요. '나만의 것'은 김순곤 작사,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이승호 작사라고 되어 있군요.

'나만의 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최근에는 이승기가 리메이크를 했군요. 그 가사를 조금만 살펴 볼까요? "그래, 처음부터 이 세상에는 나만의 것이 없었던 거야... 다만 내가 나를 속여가면서 믿고 싶어 했을 뿐...(중략) 내 슬픔이야 혼자만의 것일뿐 더 울어봐야 소용이 없어... 이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인 걸... 너를 떠나 보낸 현실마저도..."


왠지 그 무렵 김완선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모에 의해 모든 것을 통제당하며 그 무엇 하나 자기 뜻대로는 할 수 없던 그녀... 동료 가수들과도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하게끔 철저히 차단하고 감시하는 이모 때문에, 이성과의 연애는 커녕 동성 친구조차 단 한 명도 사귀지 못했던 갓 스무살의 김완선...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빠알간 모자를 눌러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삐에로... 파아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초라한 날 보며 웃어도, 난 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이 또한 김완선의 인생 같습니다. 무대 위에서 신나게 춤 추며 노래하는 그녀는 항상 웃는 것처럼 밝아 보였지요. 하지만 그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이 있었고... 그러나 김완선은 슬픈 와중에도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저렇게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고, 게다가 폭발적인 인기마저 끌고 있는데, 최소한 가수로서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15년 후인 2005년에 김완선은 데뷔하던 시절을 추억하며 시인 원태연에게 작사를 맡겨 '세븐틴'이라는 노래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세븐틴'의 가사는 너무 직접적이어서 큰 감동이 없더군요. "작은 TV 속에 살면서 인형처럼 웃고 있는 너... 자유롭고 싶어, 하늘로 날아가고 싶어... 만들어진 인형은 싫었지만 그게 너의 길이었어..." 좀 오글거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끝에 "그 때의 널 만나서 안아줄래" 하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짠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힘든 생활을 외롭게 견뎌내고 있던 열 일곱 살의 자신을 꼭 안아주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셔였습니다. 


이모 한백희는 김완선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면 항상 혼을 냈다고 합니다. 못한 날은 거의 죽음이고, 잘했다 싶은 날에도 한 번도 칭찬을 해 준 적이 없었다는군요.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된 채 오직 이모에게서만 모든 영향을 받고 있었던 김완선은 너무 엄격한 이모의 태도 때문에 차츰 주눅이 들고 자신감을 잃어갔으며, 자기는 부족하고 못났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강요에 따라 움직이다보니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가수 생활에 대한 회의도 깊어졌습니다. 심지어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는군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한백희... 참 잔인했네요.

그런데도 김완선은 "더 큰 잘못은 이모가 아니라 저한테 있었던 것 같아요. 불만이 있으면 대화로 풀어야 했는데 솔직히 표현을 못했기 때문에, 이모는 제가 느끼는 감정을 모르셨을 거예요. 결국 다 제 잘못이죠. 누굴 탓하겠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소문대로 착하고, 너무 착해서 맹하다고 생각될 만큼 착한 그녀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순한 성격에 거의 사육당하다시피 한 그녀가, 극강의 카리스마로 자기를 움켜쥐고 흔드는 이모에게 솔직한 감정 표현을 한다는 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도 거의 불가능했을 것 같거든요.


한백희는 김완선의 모든 사생활을 통제했을 뿐 아니라, 10년이 넘는 가수 생활동안 그녀가 벌어들인 수입을 조금도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악덕 매니저였는데, 다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용납이 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많은 돈은 김완선이 이모부라고 부르기도 싫다는 한백희 남편의 사업자금으로 모두 들어갔다던데, 참 허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렇게 죽어 지내다가 간신히 이모에게서 탈출한 것은 김완선의 나이가 거의 서른에 가까워진 무렵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도망칠 만큼의 용기라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한백희가 김완선의 이름으로 많은 액수의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이모와 결별하고 나서도 김완선은 그 빚을 갚느라 고생했다고도 하더군요. 조카가 번 돈을 모조리 착복한 것도 모자라 조카의 이름으로 빚을 지기까지 했다니,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한백희는 정말 염치없고 잔인했습니다. 하지만 김완선은 그래도 혈육이라고 죽은 이모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더군요. 화해를 하고 싶었지만, 찾아가서 얼굴을 볼 때마다 말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화해를 못하고 보냈다면서 말입니다.

이모와 일하는 동안 눈가리고 입가리고 살다보니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됐다는 김완선은, 노래와 춤 외에는 아무것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사람과의 관계에도 너무나 미숙했고, 그래서 소속사와의 계약도 잘 못했다고 합니다. 벗어나고 싶어서 도망쳤지만, 막상 이모를 떠나자 삶이 뒤죽박죽이 됐다는 것이지요. 험한 세상 속에 백지상태로 뛰어드니, 이쪽에서 치이고 저쪽에서 이용당하며 그 동안 고생도 참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신현하와 같은 좋은 매니저가 그녀의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1990년 5집 때부터 김완선의 백댄서로 일하기 시작하며 알게 되었다니 20년 넘는 인연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일하기가 어렵지 않냐고 김승우가 묻자, 신현하는 "나는 원래 누나의 팬이었고, 언제나 누나를 좋아했고, 이제는 누나와 같이 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김완선이 정말 맹하냐는 질문에는 거침없이 "네!" 라고 대답해서 웃음도 선사했습니다. ATM기기에서 돈을 찾을 줄도 모르고, 버스나 지하철 요금도 모르고, 그렇게 세상 물정에 어둡다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김완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MC의 질문에 "앞으로는 돈 걱정 안 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간결하면서도 진심이 느껴지는 답변이었습니다.

"누나가 나에게 연락해 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일하고 싶다"는 것을 보니, 이번에 컴백하면서 김완선이 연락을 했던 모양입니다. 오랜 공백이 있었는데도 기꺼이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아주고, 변함없이 깊은 우정과 의리를 표현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든든하고 흐뭇했습니다. 친구도 없고 주변에 사람이 너무 없는 김완선에게는, 신현하라는 존재가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디 그 믿음이 영원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가수로서는 성공했지만 인간으로서는 참 불행했던 김완선의 행복한 새출발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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