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김태원,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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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김태원이 아들의 자폐증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파란만장했던 그의 일대기는 거의 들어 알고 있었으나, 아들이 그렇게 많이 아픈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힘겨웠던 지난 날의 온갖 고통들을 이겨내고 지금은 그저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그의 삶에 끝없이 계속되는 고통은 제 이마에 식은땀이 맺힐 만큼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아들 우현이는 지금 11살이지만 한 번도 아빠와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김태원은 지금도 아들과 대화하는 꿈을 꾸며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했습니다. 자폐아에 대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 때문에 그들은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으며, 그것이 바로 현재 김태원의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에서 살고 있는 이유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의 소원은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음악가 김태원으로 하여금, 더 이상 음악적인 자존심만 내세우며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만든 것도 아픈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과감히 예능을 시작했고, 더 이상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목숨 같던 자존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순하게 받아들이며, 가장 낮은 곳에 엎드림으로써, 그런 자신의 모습을 하늘이 굽어보고 아들을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았던 게 아닐까요. 김태원의 작곡 히스테리 때문에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황당한 헛소문을 만들어 내면서까지, 꽁꽁 감추고 싶던 비밀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네 식구는 너무나 행복하다고... 우현이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김태원은 말했습니다. 지금의 작고 어린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야, 엄마 아빠가 조금은 더 그 아이를 보살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이렇게 찢어지는데, 힘겹게 털어놓는 그의 가슴은 어떻겠습니까! 굳이 왜 그토록 힘든 고백을 한 것일까요?
저는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숫자는 적지만, 하늘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저는 믿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의 많은 사람에게 빛이 되어 주지만, 그 자신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김태원은 바로 하늘에서 특별한 목적으로 내려보낸 사람이 아닐까요. 그의 삶에 끊이지 않는 고통은 바로 그 운명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듯이, 같은 고통을 겪어 본 사람만이 그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지요. 갖가지의 오랜 고통으로 김태원의 몸은 마른 장작처럼 앙상해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 많은 종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으며, 누구보다 다정한 눈길로 타인을 바라볼 수 있으며, 누구보다 뜨거운 손길로 타인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습니다.
1. 소외받는 사람들(사회적 약자)을 위하여
김태원의 초등학교 시절은, 입학 첫날부터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에게 따귀를 연속으로 맞으며 칠판 앞에서 교실 맨 뒤까지 사정없이 밀려갔던 끔찍한 기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 받은 충격과 상처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렸던 걸까요? 김태원은 학교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어졌습니다.
아침이면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서서는, 학교 건물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하교 시간이 될 때까지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여덟 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컸던 고통... 상처는 가슴이 깊이 새겨졌고, 그렇게 집단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겉돌며 소외당하는 삶은 오래도록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그의 눈에는 소외된 아이들이 보입니다. 김태원에게 있어 그 아이들은 타인이 아니라, 오래 전의 자기 자신입니다. 타인이 아니라 힘겨웠던 시절의 자신이라고 느끼기에,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김태원이 '위대한 탄생'에서 보여주었던 모습들...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손을 내밀어 잡아 주던 그 따스한 모습은 바로 어린 시절에 겪었던, 잊혀지지 않는 고통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2. 고통받는 예술가들을 위하여
창작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자기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끄집어 내어, 그것을 타인이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형상화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을 마치면 심신의 모든 진력을 소진해서 꼼짝도 못할 만큼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힘겹게 작품을 탄생시켜 봐야, 이 냉혹한 세상에서는 외면당하기 일쑤입니다. 고통스럽게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도 지어주기 전에 그 아이를 잃어버리는 심정을 아느냐고... 박완규에게 김태원이 했던 말입니다.
창작의 고통, 게다가 외면당하는 고통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무게이지만, 예술가는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데,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예술가들 중에 마약을 비롯한 갖가지 중독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빠지지 말아야 할 것에 빠져드니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아마도... 지옥이겠죠.
김태원은 이 모든 과정을 자기 몸으로 생생히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했고, 기적처럼 그 바닥을 차고 올라와 눈부시게 부활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시대의 고통받는 예술가들에게 가장 강력한 빛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극심한 고통을 겪어 본 댓가로 주어진 특혜라고나 하겠습니다.
3. 몸이 아픈 사람들(신체적 약자)을 위하여
심지어 김태원은 최근에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초기라서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암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그는 깊은 충격을 받았고, 엄청난 고독을 느꼈습니다. 아무도 자신과 함께 아파 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김태원은 곧 이성을 회복했고, 자신의 병을 이용해 세상을 돕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방송을 통해 자신의 수술 과정을 낱낱이 공개함으로써, 건강에 무심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병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병을 드러내고, 몸 속에서 병든 부위를 도려내는 과정을 카메라로 촬영하도록 허락하고, 그것을 수천만의 눈앞에 공개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근에 제가 간단한 이비인후과 수술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어떤 의학 프로그램에서 담당 의사 선생님을 취재하러 왔다가, 저의 수술 과정을 촬영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소에도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성격인지라, 거부감이 심해서 도저히 허락할 수가 없더군요..;; 하여튼 저도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수술 과정을 공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데, 김태원은 병들어 고통받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사람들의 눈앞에 내놓았습니다. 고통받는 타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겠다는 그의 진심이 드러나는 결정이었습니다.
4. 마음이 아픈 사람들(정신적 약자)과 그 가족들을 위하여
김태원 자신도 불면증과 우울증 등의 많은 정신적 고통을 겪어 왔지만, 그는 음악을 선택하고 음악에 미친 사람이기에 그런 고통마저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지요. 그러나 아들은 달랐습니다. 겨우 태어난지 2년만에, 본인의 선택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 참혹한 병의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모가 병을 알게 된 때가 아들의 생후 2년만이라 하니, 그 가엾은 어린 것은 태어날 때부터 모진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음악가로서 오랜 침체기를 겪은 후 '네버엔딩 스토리'로 모처럼 찬란한 빛을 보려던 시기에, 김태원은 다시 한 번 암흑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병은 김태원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과감히 세상에 발을 내딛었고, 숨기고 싶던 자신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몸과 마음을 완전히 열어젖혔습니다. 김태원이라는 인간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것은 자기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극심했던 아들의 고통이었습니다.
이제 김태원은 자기 아들과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아이들... 숨어 있어서 드러나지 않을 뿐 생각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는, 그 아픈 아이들을 돕고 싶어합니다. 소외당한 사람의 모습을 보면 오래 전의 나 자신이라고 여겼듯이, 고통받는 그 아이들은 바로 내 아들 우현이기 때문입니다. 김태원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합니다.
또한 김태원은 편협하고 냉혹한 사람들의 시선이 가족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가를 털어놓음으로써, 마음에 병든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한 겹의 보호막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김태원은 고통받는 자식을 두었기에, 아픈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었습니다.
과연 김태원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 주라는, 지극히 특별한 임무를 지워서 하늘이 내려보낸 사람입니다. 그래서 소외받은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고, 운명적으로 음악을 하게 되었고, 육신과 정신의 갖가지 고통을 겪었으며, 급기야는 자식의 아픔까지 견디어 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 타고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고통을 세상에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감히 말하건대, 이것이 바로 김태원이라는 사람이 우리와 같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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