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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밤마다' 이덕화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밤이면 밤마다' 이덕화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빛무리~ 2011. 2.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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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밤마다'에 출연한 이덕화가 심금을 울리는 추억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 사람, 왠지 심상치가 않습니다. 파란만장하고도 특별한 그의 삶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더군요.

스물 여섯 살 나이에 찾아온 끔찍한 교통사고는 그를 14일 동안 의식불명의 상태로 만들었고,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위한 조의금을 걷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의식을 회복했고, 53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으며, 온 몸에 수천개의 흉터를 남긴 채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33년이 흐른 지금도 그 때의 은혜를 잊지 않고 날마다 고마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기적입니다. 그를 집어삼키려던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온 것과, 그 치명적 상처들이 그의 몸에 장애를 남기지 않은 것도 기적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는 겸손한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큰 기적입니다. 그러니 이덕화는 살아 있는 신선이라 할만합니다.

이덕화와 그의 아내 김보옥은 중학교 3학년 때 만나서 지금까지 사랑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커녕 약혼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덕화는 사고를 당했고, 3년 동안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지요. 김보옥의 집안에서는 당연히 이별을 권했지만, 그녀는 이덕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3년간 이덕화의 병상을 지켰습니다. 퇴원하고 나니 그 동안의 병원비로 가산은 탕진된 지경이었고, 나이가 서른에 가까워진 이덕화는 스스로 재기하는 것만도 벅찼습니다. 이것저것 다른 일에 신경쓸 수 없었던 그는 당시 애인이던 아내에게 "너 그냥 들어와서 살아라" 했고, 그들의 결혼 생할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식을 올린 것은 첫아이가 2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김보옥은 4살부터 고전무용을 했었고, KBS 공채 1기 탤런트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끼와 재능이 있었습니다. 출중한 외모도 뒷받침되었기에 얼마든지 성공할 수도 있는 조건이었지요. 하지만 그녀는 남편 이덕화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그 여인은 선녀가 아닐까요? 이덕화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기에, 역시 하늘이 내린 여인을 만난 것입니다.

수십년을 살다보면 잊어버릴 수도 있을 법한데, 이 남자는 한시도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아내에게 양보하며 결코 싸우는 법이 없습니다. 모든 수입은 아내가 관리하도록 맡긴 채, 액수가 얼마이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조차 본인은 자세히 모릅니다. 평생 취미로 즐기는 낚시를 갈 때는, 아내에게 애교를 떨면서 물고기에게 쓸 미끼 값을 용돈으로 받아 갑니다. 그 몇 푼의 용돈에 그저 흐뭇한 이덕화는, 예순에 이른 나이에도 아내를 "예쁜아!" 라고 부릅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거침없이 대답합니다. "나는 백 번이면 백 번 모두 그러고 싶지. 하지만 집사람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이걸 또 만나나 싶을 거야." 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짝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이덕화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입니다.

*******

아버지에 대한 추억도 역시 범상치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덕화의 말솜씨 덕분이겠지만, 그가 전해주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한 편의 고즈넉한 시(詩)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역시 배우였지요. 악역을 주로 맡아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던 이예춘은, 연기자로 데뷔한 아들이 처음으로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 역을 맡아서 의기양양하는 모습을 보자 심드렁하게 말했다지요. "이몽룡이야 얼굴만 번듯하게 생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배우라면 변사또나 방자 정도를 맡아야 연기다운 연기를 보여 줄 수 있는 것이지." 연기 철학이 확실한 아버지였습니다.


엄하고 무뚝뚝하던 아버지, 늘 강해보이고 어렵기만 하던 아버지도 차츰 늙어갔습니다. 워낙 바빴던 아버지는 가족들과 좀처럼 얼굴을 마주대하지도 못했고, 식사조차 명절 때나 함께 할 수 있었던 터라,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살가운 애정은 쌓일 겨를이 없었지요. 그러나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만큼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갔습니다. (사진을 보니 이예춘님, 악역 전문 배우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생기셨네요.)

아들과 낚시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면, 아버지는 아들보다 3일 정도 먼저 그 곳에 가서 아들이 편하게 낚시할 수 있도록 며칠 동안이나 공사를 해서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흙을 다져서 땅을 의자처럼 깎아 놓고, 낚싯대 걸이를 만들고 물고기가 많이 모이도록 밑밥도 풀어 두었습니다. 그러고도 막상 아들을 만나면 무심한 것처럼 "나가 봐라." 한 마디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준비된 낚시터를 보는 순간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반신에 마비가 온 아버지는 강원도 양구의 파로호라는 지역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은 강폭이 무척이나 넓은 곳이었습니다. 이덕화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를 뵈러 갔는데,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아버지는 며칠 전부터 바빴습니다. 그 모든 사실은 나중에 요양소 주인에게 전해 듣고야 알 수 있었지요.


아버지는 불편한 몸으로 손수 흰 모시적삼에 풀을 먹여서 칼처럼 다려 입고, 말끔히 면도하고 조심스레 혼자 이발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온다고 했는데 추접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하얀 고무신을 어찌나 깨끗이 닦았는지 푸르스름한 빛깔이 돌 정도로 만들어서 신고는, 아침부터 동네 정자에 나와 앉아서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10시에 도착한다고 했으면 7시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막상 아들의 얼굴을 보면 아버지가 건네는 말은 단 두 마디뿐이었습니다. "잘 되니?"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툭 던지듯 말합니다. "낚시해 봐라." 그리고는 어슬렁 숙소로 들어가 옷을 벗고 눕습니다. 아들의 얼굴을 보고 그 두 마디를 하려고 아버지는 3일 전부터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밤새도록 낚시하느라 피곤했을 아들을 위해 커피 한 잔이라도 타 주고 싶은데, 차마 어색해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아버지는 커다란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서는 곳곳에 드문드문 앉아 있는 낚시꾼들에게 일일이 한 잔씩 대접하면서 천천히 아들에게 다가왔다. 내 아들의 몫이 확실히 남았는지 중간중간 보온병을 들여다보며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막상 아들 앞에 와서는 "남았나보다, 한 잔 마셔라." 하며 무심한 듯 커피를 따라 주었습니다.


"안 되면 일찍 들어와 밥 먹어라." 그 말을 남기고, 아버지는 넓은 파로호에 배를 저으며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반신 마비가 온 터라 왼쪽의 힘이 약해서 배는 좀처럼 똑바로 나아가지 못하고 비스듬히 기울어졌습니다. 그러면 적절히 힘을 안배하여 다시 노를 저어야 했지요. 안개가 자욱히 끼어서 앞은 잘 보이지도 않는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커피 한 잔과 말 한 마디를 남기고는, 천천히 삐걱거리며 작은 배를 저어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더 흘릴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살아 생전에 자신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한없이 서글펐지만 그래도 울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 관한 애틋한 추억 때문이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었던 이덕화는,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의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는 꼭 참석했습니다. 평소에는 같이 밥 먹을 시간도 없지만, 그것만은 아버지로서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달리기 하다가 중간에 '우산 쓴 아저씨 찾기' 미션 등이 있으면, 꼭 그런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 이덕화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운동회에 오지 못하는 자기 아버지를 원망했고, 이덕화는 공공의 적(?)이 되었지요. "아빠는 회사 일 때문에 바빠서 못 간다" 고 말하면 아이들은 "아빠가 이덕화보다 더 바빠?" 하고 대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 약한 아버지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잠시 회사를 빠져나와 아이를 위해 운동회에 달려오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참 우습고도 눈물겹습니다.


이덕화는 1류로 평가받는 배우보다, 언제나 3류로 박수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말합니다. 자기의 목표는 '국민 감동'이라고 말합니다. 해석컨대 아무리 멋진 연기를 펼친다 해도 평범한 대중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난해하다면, 그것은 자기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비록 고급스럽지는 못하더라도, 그래서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해도, 그저 평범한 대중들이 자신의 연기를 보며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이덕화는 스스로 3류를 자처하는 1류 배우입니다. 혼이 녹아들어 있는 그의 연기를 누가 헐뜯을 수 있겠습니까? 언제나 캐릭터와 일치되어 그 내면의 감정을 리얼하게 묘사하니, 누구인들 쉽게 동화되지 않겠습니까? 애써서 이해하려 할 필요조차 없이, 이덕화의 연기는 시청자를 그 작품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1류든 3류든 좋습니다. 그가 박수를 원한다면, 저는 평범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오래오래 쳐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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