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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 세시봉 콘서트를 더욱 빛내 준 양희은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놀러와' 세시봉 콘서트를 더욱 빛내 준 양희은

빛무리~ 2011. 2. 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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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세시봉 친구들' 출연 당시의 방송이 너무도 완벽한 감동과 즐거움을 주었기에, 간절히 다시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막상 또 다시 접하게 되니 그 때만큼의 신선한 충격을 느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번 '놀러와' 출연 이후 쏟아지는 섭외 요청에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그들의 근황도, 물론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습니다. 그들은 신인가수도 아니고 수십년간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활동해 온 원로가수들인데, 냄비처럼 끓어오르는 대중의 팬심에 의해 그들이 생활이 좌지우지된다는 현실이 왠지 좀 슬프게 느껴졌달까요.

토크 위주로 꾸며졌던 지난 방송과 달리 '콘서트' 형식을 선택한 이번 방송에서는, 그들이 '세시봉'에서 활동할 당시에 불렀던 올드 팝송들이 매우 여러 곡 완창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려서부터 윤형주, 송창식의 노래를 즐겨 들으며 자라기는 했어도 세시봉에 출입했을 만큼의 연배는 되지 않았기에, 그 팝송들은 매우 생소했습니다. 생소한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곡이나 듣고 있으려니 나중엔 좀 지루해지더군요. 물론 저보다 수십년 연상이신 분들께는 모처럼 그 오래된 멜로디와 더불어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초반부터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송창식의 매혹적인 음색을 아쉬움 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4명의 친구들마다 각자의 개성이 있지만, 노래로만 따지면 저는 송창식이 제일 좋더라고요. 특히 젊은 그가 남루한 행색으로 처음 '세시봉'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 기타를 연주하며 불렀다던 오페라의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묵직한 슬픔과 감동으로 제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작년 9월에 방송되었던 '세시봉 친구들' 1탄에서 조영남과 더불어 아주 짧게 몇 소절만을 들려주었을 뿐인데, 끝까지 듣지 못해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송창식이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목소리는 그토록 강렬하고 애절한데, 표정은 항상 무아지경에 빠진 듯 웃음을 띤 채로 노래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생계를 위협받을 만큼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고, 음악 활동을 하면서도 소중한 많은 곡들이 금지곡 처리되는 등 많은 풍파를 겪은 사람이지요. 이제 노년에 이르러 그의 얼굴을 떠나지 않는 미소는,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신선의 느낌을 줍니다. 송창식의 얼굴을 보고 그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정화되고 편안해집니다. 


그러던 중, 윤형주 송창식과 더불어 트리오를 결성할 뻔 했다던 새로운 인물 이익균씨가 등장했습니다. 하필 그 무렵에 군대 영장이 나오는 바람에 가수의 꿈을 접고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 온 인물인데, 이제 40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는 자기가 합류할 뻔했던 전설의 듀엣 '트윈폴리오'와 함께 대중 앞에서 공연하는 감개무량한 기회를 잡게 됩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노래 솜씨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더군요. '세시봉 친구들' 중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아주 독특하고 환상적인 중저음의 보이스였습니다.

테너의 성악처럼 강렬한 울림을 지닌 송창식과, 소년처럼 가늘고 여린 미성을 지닌 윤형주와 더불어, 흑인 래퍼를 연상시키는 낮고 굵은 음색의 이익균이 결합하여 트리오를 형성했다면, 트윈폴리오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스타 그룹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하지만 한치앞을 예상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으로 그는 다른 길을 걸어야 했으니, 이제 새삼 떠올리는 젊은 날의 꿈이 아련할 뿐입니다.


'세시봉 콘서트' 제1부의 하이라이트는 깜짝 손님으로 양희은이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시봉 친구들의 직계 후배인 그녀는, 선배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적인 면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여주더군요.

양희은은 세시봉 친구들과 무려 40년 동안 가족처럼 절친한 선후배로 지내 왔지만, 아직도 그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여고시절의 그 느낌이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우상처럼 존경스러운 사람들이라니, 그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요? 하여튼 양희은의 입으로 표현된 '세시봉 친구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저는 김세환 선배를 볼 때 언제나 청년같은 단정함과 건강함을 느껴요. 통기타 문화가 한창 주춤해서 맥을 놓고 있을 때도, 전국 어디나 다니면서 옛날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혼자서 줄곧 불러주신 분은 김세환 선배였어요." 몰랐던 사실인데, 미소년같은 이미지의 김세환이 그토록 묵묵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군요.

"조영남 선배를 보면, 나도 저 나이까지 저런 발성으로 힘차게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계십니다." 조영남에 대해서는 특별한 개인적 추억은 없는 모양이더군요..;;


"제가 손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은 윤형주 선배였어요. 제가 암선고를 받고 수술을 해야 했을 때, 통장 잔고도 없어서 막막한 상황이었는데, 윤형주 선배는 의리의 돌쇠(외모와는 전혀 다른)처럼 병원이나 가수협회, 보험사 등을 백방으로 뛰어 다니며 모든 일을 처리하고 수술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귀공자 풍의 외모와 더불어 까도남처럼 세련되고 시크한 말솜씨를 지닌 윤형주에게 그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별로 고생을 안 하고 순탄하게 살아온 것 같은 이미지인데, 돌쇠같은 의리마저 겸비했다니 참으로 감동적이었어요.


그 자리에 없는 김민기에 대한 추억도 풀어놓았습니다. "대학시절 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끼니 걱정을 해야 했고, 차비가 없어서 학교도 못 갔었는데, 김민기씨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중간에 저희 집이 있었어요. 일부러 중간에 차에서 내려 저를 찾아와서는, 자기 주머니를 뒤집어 있는 것을 모두 털어주고, 자기는 걸어서 집에 가곤 했지요."

눈물이 핑 돌 만큼 감동적인 일화더군요. 그토록 소중한 우정을 40년이나 지속하고 있는 그들의 관계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동료들에게 너무 신세만 지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어느 날 송창식 선배를 찾아갔어요. '저 돈이 필요해요. 노래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랬더니 송창식 선배는 자신이 일하던 업소에 저를 추천해 주시고, 선배의 공연 시간을 10분 가량 저에게 양보해 주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송창식 선배가 누군가를 추천한 것은,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더군요. 그 배려 덕분에 제가 세상에 노래하러 나올 수 있게 된 거였죠."

송창식은 양희은 못지 않게 궁핍한 시절을 보낸 사람이었으니만큼, 누구보다 양희은의 입장을 잘 이해했을 것입니다. 원래 아무도 추천하지 않던 사람이 유일무이하게 누군가를 추천했으니, 그 무게감 있는 후원은 양희은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겠지요.


양희은은 이렇듯, 고마운 선배들에 대한 젊은 시절의 추억을 하나 하나 생생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모르고 있었던 '세시봉 친구들'의 또 다른 면모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아름다운 내면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삶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희은이 아니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감동이었습니다.

'세시봉 콘서트' 2부에서는 또 다른 손님들의 모습도 볼 수 있을 듯하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윤도현, 장기하 등의 젊은 후배들은 선배들과 어우러져 어떤 화음을 자아낼까요? 그리고 오랜 추억을 함께 했던 또 하나의 친구 이장희는, 양희은 못지 않게 큰 감동을 전해 줄 것 같습니다.


지난 번 방송 이후, 공항에서 우연히 윤형주와 마주쳤던 한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저와 한 시대를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들과 한 시대에 숨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브라운관을 통해서나마 그들의 생생한 노래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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