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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삶을 대하는 정보석의 자세, 고현정과의 차이점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연기와 삶을 대하는 정보석의 자세, 고현정과의 차이점

빛무리~ 2011. 1. 1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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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를 끝까지 흥미롭게 시청하며 저는 언제나 정보석의 신들린 악역 연기에 감탄만 했을 뿐, 그 배우의 내면이 어떤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읽은 기사를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필연이라는 희대의 악역에 온 심혈을 기울여 몰입했던 정보석은, 실생활에서도 캐릭터의 영향을 받고 조필연처럼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무척 힘들었다고 합니다.

"나도 모르게 성격에 날이 서고, 그냥 말하는데도 짜증부터 내게 되었다.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 약까지 먹었다. 근본적 치료 방법을 몰라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까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신과 상담을 편하게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니까... 스트레스 약을 먹고 정신과까지 갔다고 하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것 같았다."

저 짧은 인터뷰 안에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정보석의 고뇌가 모두 담겨 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악역 때문에 그토록 힘들었으면서 후속작인 '폭풍의 언덕'에서까지 악역을 맡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그 드라마는 1~4회만 보고 나서 접었기 때문에 '유대권'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초반의 설정이나 분위기로 봐서는 조필연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냉혈한이더군요. 차라리 좀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정신적 여유도 찾은 후에 새로운 캐릭터로 돌아오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안타깝습니다.

연이어 맡은 악역으로 정신적 피로는 중첩되었을 것이고, 게다가 '폭풍의 연인'은 낮은 시청률과 막장이라는 혹평에 시달리며 조기종영설까지 나돌았으니 마음 고생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초반에 보다가 접은 이유가 바로 대본 때문이었지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나 대사가 너무 옛스럽고 전형적이라서, 진지한 드라마인데 좀처럼 집중이 안 되고 손발이 오글거렸거든요. 상황이 그렇다 보니 아무리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 해도 그 부자연스런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정보석에 대해서마저 "자이언트의 명연기를 잊게 만드는 발연기"라고 표현하는 기사가 떠돌 지경이었지요.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지만요.

'지붕뚫고 하이킥'의 쥬얼리정에 이어 '자이언트'의 조필연으로 명실상부한 제2의 황금기를 걷고 있는 정보석이기에,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도 아닌 우수상에 그친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이제 50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젊은 배우들에 비해 그의 앞날에 남은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니까요. 그럼에도 정보석은 "후배들에게 상을 양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며 진정한 어른의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겸손하고 담백한 자세는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모두의 귀감이 될만한 모습이었습니다.


고현정의 수상 소감에 대한 저의 비판적 견해는 1월 1일자의 포스팅에서 충분히 언급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추가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고현정의 오만한 수상 소감, 비호감에 등극하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최근 수개월 동안 대통령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캐릭터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해 그와 같은 오만함을 드러냈다고 보기도 하더군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정보석처럼 내공 깊은 중견 연기자가 정신과 치료를 고민했을 만큼, 몰입하던 배역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니까요.

그런데 만약 정보석이 수상 소감을 말하는 그 자리에서 조필연 같은 태도를 보였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까요? 농담처럼 하는 것도 아니고 진지하게, 시청자들을 향해서 "내가 오늘 꼭 할 말이 있어서 이 자리에 나왔다! 너희들이 뭘 안다고 까불어? 너희들은 버러지야. 함부로 입 놀리지 말고 내 앞에 바짝 엎드려!" 뭐 이런 식으로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도 있을까요? ㅎㅎ

오래 전, 이청아가 데뷔할 당시에 어느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했던 인터뷰가 떠오릅니다. 이청아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연기 면에서는 제 머릿속에 별로 깊은 인상을 남긴 적이 없었는데, 그 짧은 인터뷰 내용이 너무 특이하고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거든요. 이청아의 아버지는 연극배우 이승철씨라는데 역시 저는 모르는 분입니다. 이청아가 자신의 뒤를 이어 배우의 길을 걷겠다 하니,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충고하셨다더군요. "좋은 배우가 되는 길과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은 다르다. 둘 다 이루려고 하면 네가 너무 많이 힘들어질 거다. 그러니 일단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으면, 좋은 사람보다는 좋은 배우가 되는 일만 생각해라." 100%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대략 저런 의미의 말이었습니다.

대체 저게 무슨 소리인지? 어째서 좋은 배우이면서 동시에 좋은 사람이기는 어렵다는 것인지? 저는 지금도 저 말의 의미를 정확히는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배우로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이번 연기대상에서 드러난 정보석과 고현정의 모습을 비교하니,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고현정은 확실히 좋은 사람보다는 좋은 배우가 되는 길 쪽으로 노선을 정한 듯 합니다.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상도 받으면 좋은 것이고, 굳이 좋은 사람인 척 하려고 남들 앞에서 겸손 따위는 떨 필요도 없는 것이고... 뭐 그런 식의 속편함이 느껴지더군요. 오만하게 보이든 말든, 남들이 욕을 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그 대담한(?) 자세는 일면 감탄스럽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정보석은 좋은 배우이면서 동시에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힘든 길을 택한 듯 합니다. 아직도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해 날마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보다 타인을 더욱 배려하는 자세를 보여주었지요. 우수상이라는 작은 상에도 과분해하며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싶어하던 그 모습은 결코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가 유독 부정(父情)이 깊은 아버지라서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언젠가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도 정보석은 자식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었지요. 당시 사춘기적 반항의 늪에 빠져 있던 둘째 아들을 염려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토크의 1/3 가량은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채워졌고, 막판에는 아들에게 영상편지까지 보냈습니다. 다른 출연자들은 보통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던데, 정보석의 자식 사랑은 좀 특별해 보였습니다.


그런 아버지라면, 당연히 '좋은 배우'로서의 길만이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서의 길도 포기할 수 없겠지요. 아들들은 배우로서의 정보석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정보석을 바라보며 성장하고 살아갈 테니까요. '밤밤'에 출연했던 김태원도, 자기는 이제껏 아버지를 바라보며 살아왔다고, 아버지를 닮고 싶은 마음에 죽음보다 깊었던 대마초 중독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지요. 이처럼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삶의 지표가 되는 사람입니다. 부정이 깊은 아버지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아들에게 '좋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거예요.

정보석은 이제 연극 무대에서 또 다른 인물로 변신하려 합니다. 앵콜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 '안중기'는 소심한 성격과 어눌한 말투를 지닌 은행원으로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 역할입니다. 평범하고 인간적인 배역이라서, 악역에 지친 그의 영혼을 조금은 쉴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보석 자신도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이 작품을 선택했는데, 지금껏 빠져 있던 배역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려니 머리에 쥐가 나고 있다는군요. 하지만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분명 치유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좋은 배우이면서 동시에 좋은 사람이 되는 길... 가족을 위해 그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가는 정보석을, 저는 앞으로도 존경을 담은 시선으로 쭉 지켜볼 것입니다. 욕심인지는 모르지만, 그와 같은 배우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욕심... 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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