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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한 편의 시와 같았던 밤밤 청문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김태원, 한 편의 시와 같았던 밤밤 청문회

빛무리~ 2010. 12. 2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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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밤마다'의 이번 주 출연자는 김태원과 윤종신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 겸 예능인들이라 저는 매우 반가운 마음으로 시청했지요. 그런데 윤종신은 좀 이상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나는 찌질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세상에 소문난 것보다 더욱 더 찌질한 모습을 드러냈거든요.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임신한 아내를 향해 커다란 개가 달려오는데, 아내를 보호해 주지 않고 혼자서 도망갔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누가 보더라도 윤종신을 찌질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왜 저래?" 하면서 시청하던 저는, 문득 윤종신이 김태원을 응원해 주기 위해 출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종신이 그렇게 자신을 낮추는 덕분에 김태원의 존재가 더욱더 빛나고 있었으니까요.

이번 주 '밤밤'의 주인공은 김태원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극도로 솔직하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제 평생 처음 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을 잘 한다'고 표현한 것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뜻과 좀 다릅니다. 김태원이 하는 말들은 감동적이고 큰 교훈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노래가사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김태원의 '밤밤 청문회'는 그 전체가 한 편의 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어요.

김태원은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청문회에 참석했습니다. 마지막에 시청자 투표 결과 김태원이 승리를 거두었으므로 따지자면 그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한 셈입니다. 그러나 사회자 김제동은 말했습니다. "김태원씨는 이상한 사람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거나 꿈꾸거나 현실로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김태원씨는 이상한 사람들이 만드는 이상적인 사회, 그 맨 앞에 음악으로 서 계시는 것 같습니다." 역시 김제동다운 명언이었습니다. 저도 그 말에 적극 공감했습니다. 김태원은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김태원은 어려서부터 컴플렉스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형들은 모두 출중한 외모를 지녔는데 그는 그렇지 못했고, 한글을 국민학교 4학년에 떼었을 만큼 학습 능력도 부진했습니다. 많은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일찍부터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의 시선에서 소외될 때 작곡을 하게 된다"고 그는 말하더군요.

그리고 어찌 보면 아주 거북한 소재라고도 할 수 있는 '대마초 사건'이 토크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김태원은 지극히 담담하고 진솔한 태도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1987년 처음으로 입건될 무렵에는 워낙 많은 선배 가수들이 대마에 손을 대고 있던 터라, 대체 그것이 뭐길래 하는 호기심에 대마초를 일종의 신세계라고 생각했다는군요. 그런데 수감된 첫날, 후회하는 심정으로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노래를 불렀답니다. 자기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르는 그 노래를 듣고 같은 감방에 있던 다른 수감자들이 감동해서 함께 뉘우쳤다더군요.

하지만 김태원은 4년 후인 1991년에 다시 대마초로 구속됩니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저는 예상하기를, 다른 사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는 답변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 필로폰으로 구속된 김성민을 향해 "약보다 사람을 먼저 끊어라" 하고 김태원이 조언한 일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태원은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작사 작곡하고 스스로 불렀던 노래 '회상3'는 대중으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받았는데, 그 노래가 이승철에게로 가서 '마지막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자,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 다시 대마를 가까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심하게 중독되었는지, 한때는 목숨을 아쉬워하지 않을 정도로 대마초를 원했다는군요. 그 상태에서 약을 끊게 되자 하루종일 귀에서는 극심한 이명현상이 일어났고, 시공의 한계가 무너져버릴 정도의 금단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는데, 그 무렵 김태원은 3초 앞의 일을 미리 보았다고 합니다. 높은 곳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앗!" 놀라는 게 아니라, 먼저 "앗!" 하고 놀라면 3초 후에 물건이 떨어지는 식이었다나요. 상상만 해도 무섭고 아찔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김태원을 구한 것은 아내(당시 여자친구)의 헌신적인 사랑과 아버지의 일기장이었습니다.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와 옥바라지를 하는 여자친구를 보며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 큰 배반이다. 이건 너무 비겁한 일이다" 라는 생각에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렸다는군요. 그리고 김태원의 아버지는 지금도 계속 일기를 쓰고 계신데, 1965년 4월 12일자의 일기는 막내아들(김태원)의 탄생에 대한 환희와 감격의 내용이었습니다. 우연히 그것을 보게 된 김태원은 다시 삶의 의지를 굳건히 하게 됩니다.

김태원은 아버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평생 한 권의 책도 못 읽었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수만 권의 책과도 같은 존재이시다. 나는 항상 그분을 바라보며 살았고, 지금도 바라보며 살고 있다. 그렇게 아버지를 따라 살아 온 나의 모습에 작은 후회도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김태원에게 음악이란 모든 것의 처음이며, 그가 살 수 있는 원동력이고,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가 쓰는 가사들이 직접 체험한 내용인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상상한 것인지를 정용화가 묻자, 김태원은 100% 직접 체험한 것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책을 못 읽었기에 체험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김제동이 다시 감동적인 멘트로 정리해 주었습니다. "한 권의 책도 못 읽으신 김태원씨가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로커들에게는 책이 되어 계십니다." 

힘들게 작곡하면서 김태원이 부리는 히스테리를 견디지 못한 아내가 자식들을 데리고 떠나 버렸던 2002년 무렵은, 그의 인생에 3번째 찾아 온 암흑기였습니다. 이별의 충격은 그로 하여금 삶에 미련을 두지 않게 했고, 아내와 모처럼 연결된 전화 통화에서 그는 "내가 나를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말했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고맙게도 아이들을 데리고 급히 다시 돌아왔습니다. 만약 아내가 그렇게 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없을 거라고 김태원은 말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만난 기쁨을 노래하며 탄생한 명곡이 '네버엔딩 스토리'였습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늘 보고 싶은데 보고 싶다는 말을 못해서 미안하다. 우리가 27년을 만났지만, 나는 지금도 너를 만나는 시간이 정말로 설렌다. 내가 곧 간다. 마치 아이들이 소풍을 기다리듯이 나는 그 날만 꼽고 있다. 곧 간다. 기다려. 사랑한다." 이것은 기러기아빠 김태원이 아내에게 보내는 감동적인 영상편지였습니다. 미리 준비해 온 말이 아니라 그냥 속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 같았는데 역시 천재는 천재인가봐요.


주로 극단적인 힘든 상황에서 명곡이 탄생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동안 주춤하고 있는 거냐고 박명수가 묻자 김태원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맞이해야만 명곡이 나오는 거라면, 나는 더 이상 그런 곡을 쓰지 않겠다.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내 가족에게는 선물인데, 억지로 곡을 쓰겠다는 욕심을 부리며 괴로워하느라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이에 탁재훈이 "더 이상 히트곡은 없다는 말이냐?"고 묻자 "히트곡은 내가 예상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불현듯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을 목표로 달려갔을 때 그 곡이 히트되는 경우는 없다."고 단호히 대답하는군요. 청산유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명언이었습니다.

어차피 운명이란 한치앞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지요. 이제 또 김태원에게서 '사랑할수록'이나 '네버엔딩 스토리'와 같은 공전의 히트곡이 탄생하게 될지, 아니면 풍파가 심했던 젊은 날과 달리 잔잔한 행복을 찾은 그의 일상만큼이나 잔잔한 음악 활동을 꾸준히 지속하게 될지는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라도 저는 무조건 김태원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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