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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 왜 심사위원에게 순위를 매기나?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위대한 탄생' 왜 심사위원에게 순위를 매기나?

빛무리~ 2010. 11. 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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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에 대망의 첫방송이 시작된다고 하도 요란하게 홍보를 해서 나름 기대가 컸습니다. 공중파가 케이블을 흉내낸다는 식의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지만, 원래 MBC에는 오래 전부터 비슷한 류의 프로그램이 많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꼭 그렇게 규정지을 것만도 아니다 싶었지요. 그런데 막상 첫방송(?)을 시청하고 나니 아쉬움이 많이 남을 뿐 아니라, 너무 지나치게 속내를 드러낸 듯하여 불편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가 엠넷의 '슈퍼스타K'와 너무 비슷했습니다. 그보다 약간 더 화려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 외에는 거의 차별성을 느낄 수 없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은 첫방송이 아니라 일종의 미끼 수준이었습니다. 정작 제대로 된 첫방송은 12월 3일에 시작될 예정이라는 말입니다. 아직은 오디션도 시작되지 않았고, 참가 신청도 다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기왕 샴페인을 먼저 터뜨렸으니 급하게 진행해서 11월 중순쯤에는 정규방송으로 출발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렇게 요란을 떨어 놓고 무려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벌써부터 김이 샙니다.


그냥 심사위원이라고 하면 너무 평범한 듯해서인지 '멘토'라는 새 명칭을 적용시켰더군요. 이들 5명의 멘토는 참가자들을 단지 심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속사 사장이 연습생을 키우듯 각자 몇 사람을 선택해서 트레이닝을 시키게 됩니다. 단기간에 진행되는 만큼 멘토들끼리의 경쟁도 나름 치열하겠군요. 그런데 저는 이런 시스템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젊고 실력 있는 뮤지션을 선발하겠다는 원래의 취지와는 한참 빗나간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슈퍼스타K'에서처럼 일회성의 이벤트로 시행되는 거라면 나쁘지 않습니다. 그 때 이승철은 허각과 존박을, 엄정화는 장재인을, 윤종신은 강승윤을 각각 맡아서 자기의 노래로 훈련시킨 후 준준결승전에 내보냈었죠. 최종 결과로만 본다면 우승자와 준우승자를 배출한 이승철의 압승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준준결승에서 탈락했던 강승윤은 데뷔도 하기 전에 음원 1위를 석권하며 윤종신의 이름값을 한층 높여 주었고, 이에 윤종신은 자작곡 '본능적으로'에 대한 권리를 강승윤에게 선물하며 훈훈한 선후배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순위에 관계없이 이들은 가장 견고하고 안정적인 멘토와 제자의 관계로 보이는군요.

그런데 '위대한 탄생'에서는 일회성이 아니라 아예 전체적인 컨셉을 멘토들끼리의 경쟁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참가자들의 순수한 실력에 대한 관심은 살짝 뒤로 밀리고, 대체 누구의 제자가 더 높은 점수를 얻어 스승의 체면을 세워 줄 것이냐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거야 언뜻 생각해도 너무 자극적이고 상업적이지 않습니까?


11월 5일 '위대한 탄생'은 명색이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정작 오디션을 봐야 할 참가자들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홍보를 위해 첫방송이라고 터뜨리긴 했는데, 내용을 채울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이 홍보 방송의 주인공은 엉뚱하게도 MC로 발탁된 박혜진 아나운서를 비롯해 이은미, 방시혁, 김태원, 김윤아, 신승훈 5명의 멘토들이었습니다. 이들 6명을 화려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절반 가량의 시간은 때웠으나 그 나머지 분량은 무척 난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아마도 '멘토들의 순위 매기기' 였던 듯 싶군요. 하지만 그건 최악이었습니다.

"내가 도전자라면 선택하고 싶은 멘토는?", "가장 카리스마 있을 것 같은 멘토는?", "최종 우승자를 배출할 것 같은 멘토는?" 이라는 주제로 100명의 가수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재미로' 순위를 매겨 보았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민망하기 이를 데 없더군요.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이상 그들은 이 프로그램 내에서는 어디까지나 '스승'의 위치입니다. 스승의 권위를 한껏 세워 주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그들을 먼저 도마 위에 올려 장난처럼 평가를 받게 하다니요!

'슈퍼스타K'를 뒤늦게 시청하면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보았던 부분은 냉정하기 짝이 없는 심사위원들의 칼날같은 카리스마였습니다. 그들의 평소 직업이 가수이기 때문에 무대에서의 열광적인 모습에만 익숙해 있었는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그들이 심사위원석에 앉으니 그렇게 달라질 줄은 상상도 못했었거든요. 독설가 이승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느 새 예능에서의 헐렁한 이미지로 굳어져가던 윤종신의 전문적이고 명석한 평가는 전율을 일으킬 지경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착한 심사위원' 엄정화까지도 너무 실수가 잦은 참가자를 접하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차갑게 표정을 굳히고 눈을 번뜩이며 응시하는데, 그 모습이 멋지더군요.


'위대한 탄생'에서 새로 선정된 멘토 5인은 '슈스케'의 심사위원 3명에 비해 전혀 못할 것 없는 경력과 능력과 네임밸류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후배들로부터 먼저 평가를 받으며, 그들끼리 일등과 꼴등을 가려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란 말입니까?

그들 자신은 순위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지만, 이미 권위는 상당히 손상되었습니다. 일등이라고 해서 빛나고 꼴등이라고 해서 망신이 아닙니다. 음악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멘토들끼리의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이 프로그램의 순수성은 벌써 바닥을 쳤고, 앞으로 멘토들이 아무리 객관적 이성적으로 참가자들을 지도한다 해도 그 안에는 사심이 깃들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속내가 어떻든 간에 남들은 그렇게 볼 거란 말입니다. 이래 갖고서야 참가자들에게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인들 쉽사리 우러나겠으며, 시청자들로부터 감탄스런 시선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각자 독특한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뮤지션들을 이토록 유치한 경쟁 속에 몰아넣으면서, 대체 어떤 방식으로 '위대한 탄생'을 이루겠다는 것일까요? 만약 오디션이 진행되는 긴 과정 중에 각자의 '라인'끼리 경쟁이 과열되어, 서로에 대한 비방이나 깐죽거림이라도 나오기 시작한다면 이것은 막장 중에서도 막장입니다. 그들 끼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시끌시끌해지면 오히려 시청률은 높아질까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스타는 정말 '위대한 탄생'일까요?


물론 12월 3일에 제대로 뚜껑을 열어 보고 그 후로도 진행 과정을 살펴 보아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시작부터 컨셉이 잘못된 방향으로 잡혔기 때문에 그 미래가 별로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상업성을 완전히 배제시킬 수야 없겠지만, 그 상업성이 본질인 예술성을 훼손시킬 지경이 된다면 그것은 매우 가슴아픈 일이지요. 좀처럼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이은미, 방시혁, 김윤아 등의 멋진 음악가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왠지 허탈하고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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