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즐거운 나의 집' 신성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일까? 본문

드라마를 보다

'즐거운 나의 집' 신성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일까?

빛무리~ 2010. 10. 28. 08:32
반응형


김혜수, 황신혜, 신성우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 첫방송이 전파를 탔습니다. 제가 방영 전부터 궁금했던 것은 과연 막장일까 스릴러일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식상한 삼각관계와 불륜 코드를 보면 막장에 가까웠지만, 초반부터 의문의 죽음이 발생하고 그 뒤를 캐면서 모든 사건이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흔한 막장과의 차별성이 느껴졌거든요. 김혜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막장은 아닐 거라는 쪽으로 기울었지만, 소재가 워낙 자극적이다 보니 안심은 되지 않았습니다.

첫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간략히 말한다면,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아주 썩 괜찮았어요. 앞으로도 지금의 호흡을 계속 유지한다면 작품성과 재미를 동시에 확보하는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주인공 김진서(김혜수)의 직업이 정신과 의사라는 것 또한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군요. 이 드라마의 핵심은, 겉보기에 단순한 사건들을 통해 각 인물의 심리를 면밀하게 파헤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어설프게 진행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 입니다. 모윤희(황신혜)의 캐릭터를 보는 내내 뭔가가 연상된다 했는데, 바로 히드클리프였네요. 남녀가 뒤바뀌긴 했으나 모윤희의 광기어린 사랑은 히드클리프의 모습 그대로였어요.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바쳐도 좋을 만큼 사랑해 왔으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던 남자...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면서, 자기에겐 단 하나뿐인 사랑마저 채어간 연적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 섬뜩하고도 치명적인 마력을 소유한 팜므파탈... 모윤희는 단순한 악역이 아닙니다. 스토리는 주인공 김진서의 시각에서 전개되겠지만, 모든 사건을 일으키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모윤희지요.

그런데 황신혜의 연기를 보면서 제가 항상 느껴오던 문제점이, 유난히 이 드라마에서는 심하게 부각되는군요. 외모상으로는 모윤희 역에 최적화되어 있고 표정이나 눈빛 등의 연기도 별 무리는 없는데, 항상 거슬리는 것은 그 발음과 목소리입니다. 차갑고 지적인 미모에 어울리지 않는 그 혀짧은 발음이며, 톤이 조금만 높이 올라가면 어김없이 뒤집어지는 그 목소리가 들을 때마다 깬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때로는 마치 초등학생이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공주가 돌아왔다'에서는 역할 자체가 코믹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부분이 잘 어울렸는데, 전체적으로 무겁고 진지해야 하는 이 드라마에서는 극의 몰입을 심하게 방해하는 요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윤희에 비해 김진서는 대단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여자입니다. 모윤희와 얽히지만 않았다면 그녀의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탄했을 것입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아름다운 외모와 똑똑한 머리를 지녔으며, 아무 어려움 없이 사랑하는 남자도 차지했습니다. 의사라는 좋은 직업을 가졌으며, 슬하에는 귀여운 아들까지 있습니다. 이런 그녀의 완벽하고 평온한 일상을 휘젓는 것은, 전생의 원수와도 같은 모윤희입니다.

서울 외곽에 정신과 의원을 개원한 김진서에게 찾아온 첫 환자는 스물 한 살의 젊은 여자였는데 바로 모윤희가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유부남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애태우다가 나중에 자살까지 시도하지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환자가 보낸 심상치 않은 문자를 받고 그녀의 집으로 달려간 김진서는 생각지도 않은 남편의 모습을 거기서 발견합니다. 이 모든 상황은 모윤희가 계획적으로 조종한 것이었습니다.


김진서라는 여자는 권력자에게 아부할 줄 모르는 올곧은 심성과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심성을 동시에 지녔으나, 독화살을 겨누고 한 걸음씩 다가오는 모윤희를 참아 주지는 못합니다. "너는 다른 사람 인생을 망칠 소지가 다분해. 너는 평생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 거야. 나야 얼마든지 너를 치료할 수 있지만, 네가 불편할 테니까 실력있는 의사를 소개해 줄게. 치료를 받는 게 너의 신상에도 좋을 거야." 절교를 선언하며 김진서가 모윤희에게 던진 말은 지독히 모욕적이었습니다. 윤희가 갖지 못한 정신과 의사의 타이틀을 이용해 그녀의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그녀보다 언제나 한 수 위에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으니까요.

그러잖아도 진서에 대한 열등감과 상대적 결핍감에 찌들어 있는 윤희로서는 더욱 독기를 품는 계기가 되었지요. 이렇게 생각하니 김진서는 현명한 듯 하면서도 매우 요령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올곧은 심성을 지닌 게 아님을... 비뚤어진 사람을 자극하면 더욱 비뚤어져서 자기에게 더 큰 상처로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제부터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인물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히어로 이상현(신성우)입니다. 그는 김진서의 남편이며, 모윤희의 집착적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두 여자 사이에서 태풍의 눈이 되어버린 남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캐릭터가 앞으로 가장 염려스럽습니다. 이상현은 결코 표현해내기 쉽지 않은 복잡한 인물이라, 대단한 연기 내공을 지닌 사람이 맡아야 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성우에게는 그 정도의 내공이 없습니다.

이상현은 아주 기묘한 남자입니다. 아내에게 경제적 주도권을 맡긴 채 집에서 아이와 놀아주고 김밥을 싸는 것으로 소일하는 아주 한가한 시간강사이지만, 그에게는 여자들을 반하게 만드는 치명적 매력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영 아니지만 드라마의 설정상으로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잘 생긴 외모와, 언제나 친절하고 따뜻한 매너... 제가 발견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이것뿐이라면 그의 치명적 결점들과 대충 상쇄시켜도 될만하니 뭐가 그렇게 매력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남자는 기본적으로 우유부단해서 제 때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그녀와의 일상을 망가뜨릴 생각이 없으면서도, 자기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을 도대체 뿌리치질 못합니다. 어설프게 받아주면서 잘해주다가 여자들을 집착하게 만들고, 하마터면 스물 한 살의 아가씨를 자살로 몰아갈 뻔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친구인 모윤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 그녀와의 일그러진 사랑에서 발을 빼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윤희가 학교 재단이사장의 아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녀를 통해 윗선의 연줄을 잡아서 처량한 시간강사 신세나 면해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녀의 남편에게 들켜 버렸지요. 자기와 윤희를 일부러 한 자리에 불러놓고 뱀처럼 노려보는 이사장의 눈빛... 그 정도 상황이면 그만두는 것이 맞는데, 이 남자는 도무지 끊어내지를 못합니다. 그러다가 이사장 성은필(김갑수)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모윤희에게 발목을 잡힌 이상현은 그 위험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대책없이 빨려들어갑니다. (그나저나 우리의 갑수본좌는 또 첫회에 등장하자마자 사망하셨군요..ㅎㅎ)

이상현은 절대 강한 남자가 아닙니다. 유능한 아내에게 기죽어 지내고, 표독스런 모윤희에게 휘둘리고, 어린 여자아이와 바람이나 피우다가 들키고, 전임교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5000만원의 공탁금을 내야 한다고 어떤 선배가 유혹하자 홀랑 넘어가서, 하필 모윤희에게 돈을 빌려서 쏟아붓고... 이상현은 대략 이런 남자입니다.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마음 약한 남자가 여자들을 사로잡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가능한 한 모성본능을 자극해야겠지요. 가냘픈 체격과 동안의 얼굴을 지녔으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좀 못나게 굴어도 미워할 수 없는, 그저 가엾게 느껴져서 안아주고 싶어지는 그런 남자 말입니다.

그런데 신성우는 굉장히 강한 남자의 포스를 지녔습니다. 이 남자는 아무리 봐도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해결할 것만 같고, 매사에 단호한 결단력을 자랑할 것 같습니다. 이상현처럼 여자들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주변의 여자들을 모두 압도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이미지의 남자가 찌질이 못난이처럼 나오니, 캐릭터와의 일치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연기자가 캐릭터와 일치하지 못하면 그 존재감은 바닥을 치게 되고, 자꾸만 겉돌면서 몰입도는 떨어지게 되지요.


가끔 신성우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면, 외적으로 풍기는 카리스마에 못지 않게 내면적으로도 그런 기질을 지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속속들이 거침없고 자유롭고 강한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캐릭터 이상현은 우유부단하며 이쪽저쪽에 얽매여 있는 인물이지요. 실제 자기 모습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 신성우가 김갑수 정도의 연기 내공을 지녔다면 모를까, 소화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제작진은 이상현을 옴므파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치명적 매력의 남자... 그런 이미지에는 신성우가 어울릴 거라고 판단한 듯해요.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별로 괜찮은 조합이 아니었군요. 그래도 한 가지 기대를 해 본다면, 신성우의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발전할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혜수의 서포트를 받으며 최선을 다해 이상현에게 몰입한다면, 그래서 극의 종반부에 대략 80% 정도의 일치를 이룬다면 성공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한 명의 중견 남자배우가 탄생하는 셈이니, 매우 소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부디 건투를 빕니다.


* Daum 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버튼을 누르시면, 새로 올라오는 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