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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여왕' 왜곡된 여성상, 불편한 드라마 본문

드라마를 보다

'역전의 여왕' 왜곡된 여성상, 불편한 드라마

빛무리~ 2010. 10. 1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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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는 없었지만 어쨌든 1회를 보고 판단하자는 생각에 '역전의 여왕'을 시청했는데, 결과는 예상보다 더한 실망감으로 돌아왔습니다. 가벼운 코믹터치로 그려진 드라마이지만, 그 안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의식은 너무나 고리타분하고 심하게 왜곡된 수준이더군요.

여주인공 황태희(김남주)는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33세의 골드미스입니다. 그녀는 대기업의 팀장으로서 7000만원에 달하는 고액의 연봉에 재개발 아파트까지 소유하고 있군요. 사실 요즘 시대에 33세면 적령기를 살짝 넘긴 수준이라 골드미스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 아무튼 드라마의 설정은 그렇습니다. 현실적으로 그 정도 위치의 여성이라면 타인을 대할 때 돋보이는 자신감과 여유를 갖는 것이 보통이건만, 황태희는 부하 여직원이 연애를 하는 것 같으면 유치하게 질시하고 구박하며 노골적으로 히스테리를 부립니다.


그러다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봉준수(정준호)에게 한 눈에 꽂히고 맙니다. 봉준수는 늦도록 고시 준비를 하다가 모두 낙방하고 32살의 나이에 입사했으며, 가난한 집에서 귀하게 자란 외아들 캐릭터입니다. 그의 잘 생긴 외모에 반한 황태희는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졌고, 마침 돈 많은 여자를 찾고 있던 봉준수는 그녀의 추파를 덥석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봉준수가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는 옛 애인 백여진(채정안)이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한 고시생이었던 자기를 버리고 돈 많은 남자에게로 떠나갔던 여진에게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하려고 했는지 그 애초의 계획은 모르겠으나, 엉겁결에 그녀의 까칠한 상사 황태희를 붙잡아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일단은 약올리는데 성공한 셈이군요. 가진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난 게 없는, 그저 그런 녀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황태희의 어머니와 봉준수의 어머니는 여고 동창으로 매우 사이가 안 좋은 친구사이입니다. 봉준수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보다 한 살 많은 황태희의 나이를 물고 늘어지며 어림없다는 식으로 기세등등하게 나오는군요. 당연히 황태희의 어머니는 능력있는 딸이 그런 대접을 받으며 결혼하는 것을 볼 수 없으니 결사반대를 합니다. 하지만 벌써 눈이 뒤집혀버린 황태희는 자신의 그 좋은 커리어를 모두 내팽개치고 남자에게 매달리는군요. 그녀의 태도에서 자존심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황태희도 그렇지만, 그보다 훨씬 더 황당한 캐릭터는 상무 한송이(하유미)입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최초로 임원의 자리에 오른 전설적 인물이며, 회장 부부의 총애를 받는 실세입니다. 48세의 미혼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히스테리는 황태희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자기와 비슷한 인생을 살아갈 후배라 여기고 아끼던 황태희가 결혼한다고 하자, 한송이는 유치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황태희를 회사에서 밀어내려 합니다. 이게 무슨 어이없는 상황일까요?


어떻게 결혼을 이유로 팀장씩이나 되는 유능한 직원을 내칠 수가 있는 것인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인사처리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내일의 방송을 봐야 알 수 있겠으나, 하여튼 기가 막힙니다. 아무래도 상무의 직권으로 그렇게 처리한 것 같은데, 그와 같은 수준 미달의 인물이 그 정도 위치에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공사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흐리멍텅한 머리로 대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싱글 여성으로서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사람은 세상의 질시와 구설수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라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냉정한 일처리를 하게 마련인데, 한송이는 아주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캐릭터입니다.

나중에 등장할 구용식(박시후)이라는 인물은 '내조의 여왕'에서 윤상현이 맡았던 것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예정입니다. 백마 탄 기사처럼 불행한 여주인공을 멋지게 지켜 줄 그 사람은 회장의 서자로서 회장부인 장여사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인데, 한송이는 장여사 라인이니 호감형 남자 주인공을 심하게 구박하는 마귀 할멈같은 노처녀 상사가 되겠군요.


이렇게 작가는 싱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물론 드라마에 '한 명의 나쁜 의사'가 나왔다고 해서 '모든 의사가 나쁘다'라는 명제가 성립하지는 않지만, 드라마의 법칙상 '두 번은 모든 것' 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코를 긁는 모습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보여주게 되면, 시청자들은 "아, 저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코를 긁는 습관이 있구나!" 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황태희는 봉준수를 만나 결혼하기 전에, 연애하는 후배들을 구박하며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추레한 모습의 올드미스로 그려졌고, 한송이는 한술 더 떠서 값싼 질투심 때문에 공적인 권력까지 휘두르는 막장 노처녀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을 통해서 부정적인 싱글녀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은, 작가의 머릿속에 싱글녀라는 존재가 결코 올바른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전의 여왕'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내조의 여왕' 후속작입니다. 물론 같은 작가가 집필했지요. '내조의 여왕'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듯이 박지은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여성상은, 좀 부족한 남자와 결혼해서 어려움을 겪지만 긍정적인 자세로 남편을 성실히 내조하면서 살아가는 여자인 듯 싶군요. 물론 그런 여자들의 삶이 훌륭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한 여자들이라고 해서 이상하게 그려지고 폄하되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얼마든지 훌륭한 삶을 살아가며 타인의 본보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내조의 여왕'에서 김남주와 윤상현, 오지호와 선우선의 관계... 아름답게 그려지긴 했지만, 그리고 일정한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의 사랑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불륜이 아니겠습니까? 아줌마의 불륜은 더없이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그리면서, 싱글 여성의 삶은 당당하지 못하고 자존심도 없이 고독에 몸부림치는 암여우의 삶처럼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은 매우 불편했습니다.


2010년, 드라마와 예능을 합쳐 TV에 등장했던 모든 인물 중 가장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고취시킨 인물이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남자의 자격 - 하모니'를 이끌었던 박칼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의 불타는 열정과 강렬한 카리스마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지요. 1967년생, 한국 나이로 44세의 싱글 여성인 박칼린은 그 누구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당당했으며, 타인을 이끌고 포용하는 리더쉽이 뛰어났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그녀의 눈부신 존재에 열광하고 그녀를 존경했으며 선망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싱글 여성을 무조건 박칼린처럼 멋지게 그려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좀 더 분명히 인식하고, 현실적인 인물들을 그려내 주었으면 한다는 것뿐입니다. 시대를 역행하는 '역전의 여왕'은 서변 박시후 때문에 약간 고민이 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저에게서 외면당하는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높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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