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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 작가에게 실망한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 작가에게 실망한 이유

빛무리~ 2010. 10. 2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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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동성애 커플의 언약식 장면을 성당에서 촬영하려다가 무산되었습니다. 처음 기사가 떴을 때는 마치 성당 측에서 자세한 내용을 알고도 촬영을 허락했다가, 나중에 눈빛이 이상하다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촬영팀을 내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어서 정말 황당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아름다워'의 김영섭 CP는 "성당 측이 동성애자의 언약식인 줄 모르고 촬영을 허가했다가 내용을 알고 촬영을 불허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SBS 김용섭 책임 프로듀서는 이에 대해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단순 기도하는 장면이라고 했고 그냥 갈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촬영팀이 성당에서 쫓겨나는 등 문제가 생겼다"며 "그건 성당으로 대변되는 가톨릭 종교인들의 신앙적 가치에 반하는 행동이었다는 의미"라고 말했군요. 이어 "그 동안 동성애 이야기를 배려하면서 왔는데, 다른 사회적 이슈나 가치와 부딪칠 때는 상대도 배려해야 한다"며 "아직은 우리가 잘못 다루면 굉장히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이므로 균형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제작진의 해명이 있기 전부터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동성애자들의 언약식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성당을 촬영 장소로 내어 준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처음부터 제대로 된 대본을 보여주며 촬영 협조를 구했다면 일시적이고 뭐고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나쁘게 본다면, 일부러 성당 측을 속이고 얼렁뚱땅 촬영을 진행하려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교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장면인 줄을 알면서 그것을 촬영하는 장소로 성당을 제공하다니, 세상에 감히 자기 뜻대로 그런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가톨릭의 사제는 없습니다. 이것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격적인 포용과는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건물을 빌려서 사용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제주교구에만 한정된 문제도 아니고, 나아가서는 한국 가톨릭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해당 제작진의 해명이 없었다면 저는 제주교구에 수소문을 해서라도 그 성당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대체 자초지종이 어떻게 된 상황이었는지를 확인해서 제 블로그에라도 해명글을 올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뒤늦게나마 그들이 스스로 밝혔으니 다행입니다. 아마도 제작진은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듯 싶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김수현 작가에게 무지막지하게 실망했습니다. 수십년간이나 그녀의 드라마를 좋아해 왔던 팬이기에, 이 참담한 심정을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김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마도 촬영팀을 쫓아냈던 성당의 압력이 대단한 모양이다. 가톨릭의 품이 넓다 생각했던 것도 오해였나보다... 나는 성당이라는 곳은 살인범이 숨어들어도 내치지 않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소설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라는 말을 남겼더군요. 정말 너무나 기가 막힙니다. 무슨 어린아이도 아니고, 저렇게 단순한 생각이 어떻게 노(老)작가의 머리에서 나왔단 말입니까?

얼마 전에도 김수현 작가는 초롱이(남규리)의 대사 중에 이상한 말을 집어넣은 적이 있습니다. 초롱이가 남자친구를 약올리며 튕기기 위해서 "내가 너랑 결혼하느니 차라리 수녀원에 간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화가 나서 가 버렸고, 초롱이의 부모는 "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지, 수녀원이 뭐냐, 수녀원이?" 이런 식의 대사를 하며 딸을 나무랐습니다. 아, 정말 황당하고 생뚱맞기 짝이 없는 설정이었지요. 사실은 적잖이 거북하고 불쾌했지만 그래도 이해하려 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우리들 입장에서는 결코 장난처럼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말이지만, 외부의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성당 촬영의 문제는 그 때처럼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작가들은 작품을 쓰기 위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충분히 사전 조사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교리상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미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며, 햇병아리도 아닌 김수현 작가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동성애 커플이 성당에서 언약식을 하도록 설정했습니다.

가톨릭의 품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오해였다고? 이제껏 수십년간 작가 활동을 하면서 그녀는 얼마나 자신만의 아집에 갇혀 있었던 걸까요? 세상의 종교들을 얼마나 자의적으로 해석해 왔던 걸까요? 품이 넓으면, 교리에 어긋나는데도 전부 다 받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모든 종교들이 수천년간 그렇게 아무 원칙도 없이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도록, 주먹구구식으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얼핏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국가건 종교건, 세상에 그런 식으로 유지되는 집단이 어디 있습니까?

김수현 작가가 정말 이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자기의 드라마를 위해 한 종교의 이미지를 자기 마음대로 가위질하고, 자기 마음대로 왜곡된 그림을 짜맞추어서 이용해도 된다고 생각할 만큼 오만한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자기가 내세우고 싶어하는 가치를 위해, 다른 쪽의 가치는 마음대로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할 만큼 잔인한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만약 끝내 성당 측에서 그 촬영의 자세한 내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래서 동성애 커플의 언약식 장면이 버젓이 실제 성당 안에서 촬영되어 방송에 나갔다면, 그 무시무시한 뒷감당을 김수현 작가가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까? 책임지지도 못할 엄청난 실수를 저지를 뻔 했으면서, 스스로 뉘우치기는 커녕 "더러운 걸레로 얼굴을 닦인 기분"이라면서 오히려 남들을 탓하며 비난하고 있으니,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저는 그 동안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잘 모르고 있던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이 들지 경험을 안 해봐서 모르겠으나, 최소한 사회에서 만났다면 거부하거나 질시하지 않고, 그들의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편안히 어울려 지낼 자신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내에서도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무조건 죄인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불가항력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임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시 교리상으로 인정되지는 않기 때문에, 강력히 절제를 권하고 있지요. 이 부분에서 사람들은 반발심을 느낄지 모릅니다. 대체 무슨 죄를 졌다고 기본적인 욕구를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가톨릭은 원래 모든 부분에서 금욕을 중요시하는 종교입니다. 단지 동성애자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잡한 교리를 여기서 구구절절이 읊어댈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듯하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선까지만 나아갔다면 충분히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세상에 전달할 수 있었을 김수현 작가가, 정말 이상하게 오버를 하는 바람에 역효과가 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나선 것은 좋았지만 그녀는 너무 앞서 나갔습니다. 아직 그 정도까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다수의 대중들에게 자기의 주장을 급격하게 강요함으로써 거부감을 일으킨지는 이미 오래 되었지요. 그러더니 이제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종교를 끌어들임으로써 수많은 신앙인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 때문에 천주교가 욕을 먹고 성당이 욕을 먹어야 합니까?

문제의 그 기사에는 "절간에 가서 고기 구워먹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이냐?"는 댓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만큼 이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김수현 작가의 이번 행동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수녀원의 이름을 장난삼아 입에 올리고, 성당을 자기 마음대로 뛰어 놀아도 되는 놀이터쯤으로 여기는 그녀의 오만함을 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만, 제가 믿지 않는 종교라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종교란,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인데, 어찌 그토록 제멋대로 해석하고 가볍게 업신여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작가로서의 도리가 아닐 뿐더러,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의 작품을 지금까지 재미있다 여기고 사랑해 왔던 세월이 온통 허탈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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