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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 박영규, 나이에 얽매인 사회를 꾸짖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해피투게더' 박영규, 나이에 얽매인 사회를 꾸짖다

빛무리~ 2010. 10. 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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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에 출연한 선우용녀와 박영규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예능감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MC 박미선과 더불어 잠시 즉흥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몇 년째 백수로 처가살이를 하면서 만날 얻어먹기만 좋아하는 사위를 나무라는 선우용녀 할머니와, 그런 장모님한테 서운해하는 박영규, 그 와중에 등장해서 남편의 편을 드는 박미선이라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10년 전의 미달이네 가족을 그대로 다시 보고 있는 것만 같더군요. '순풍 산부인과'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니 참 많이도 그립고 정겨웠습니다. 저는 그 작품 이후로 김병욱 PD 시트콤의 매니아가 되었지요.

'스타 퀴즈' 코너에서 박영규가 자신을 소재로 낸 문제는 "박영규는 영화촬영장에서는 ○○가 되고 싶어한다" 였는데, 정답은 '후배'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두 편의 영화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박영규가 최고 선배였고 한쪽에서는 막내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쪽에서는 계속 선배로서 무게를 잡아야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막내로서 귀염과 애교를 떨어야 했다지요. 그런데 굳이 둘 중 하나를 택한다면, 선배보다는 후배의 입장일 때가 더 마음 편하고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후배가 되면 회식자리에서 돈을 안 내도 되니까 좋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박영규의 의도는 그냥 단순한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젊음을 동경하는 마음은 진심이었을 테고, 돈이 아깝다는 이야기는 일종의 유머였겠지요. (어쩌면 둘 다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ㅎㅎ) 그런데 제가 듣기에는 왠지 너무도 나이에 얽매여 있는 한국 사회를 꾸짖는 말로 들렸습니다.

대학시절에 들었던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문득 생각납니다. "한국어처럼 존댓말과 반말이 복잡하게 분류되어 있는 언어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것은 때때로 사람들의 사이에 커다란 장벽으로 존재한다. 노인에게도 thank you, 어린아이에게도 thank you 라고 똑같이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명쾌할까? 그런데 우리는 타인에게 말을 걸 때면, 항상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한다. 말을 높일 것인가, 낮출 것인가? 높인다면 어느 정도로 높일 것이며, 낮춘다면 어느 정도로 낮출 것인가? 이러한 고민은 무의식중에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하며, 정확한 해답을 찾아내지 못했을 경우는 아예 말을 걸지 않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라서 가까워지지도 못하는 것이다."

국문학과 교수님이셨기 때문에 특히 언어적인 측면을 두고 말씀하셨지만,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해 본다면 지나치게 나이에 얽매여 있는 한국 문화를 비판하신 것이라고 제게는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친구'로 지낼 수 있는 다수의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단 1년의 차이만 나더라도 그냥 친구가 아니라 형과 아우로 나뉘어져 버립니다. 그렇다고 친해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완벽히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보니 형은 형대로 아우에게 원하는 바가 있고, 아우는 아우대로 형에게 바라는 바가 있지요. 그런 서로의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으면 관계는 삐그덕거리기 십상입니다.


어차피 모두 함께 일하는 동료 사이인데, 후배는 선배 앞에서 애교를 떨며 잔심부름을 해야 하고, 선배는 무게를 잡고 대접을 받다가, 돈을 쓸 때가 오면 지갑을 열어서 후배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풍습이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옳지 않습니다. 선배라고 해서 누구나 돈이 많다는 법도 없고, 후배라고 해서 누구나 성격이 싹싹하라는 법도 없지요. 나이에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자기 일은 각자가 알아서 하고, 돈을 내야 할 일이 있으면 가능한한 공평하게 자기 몫을 감당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닙니까?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선후배 관계없이 서로 반말을 하라고 지시한 이유도 아마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철저하게 규정되어 있는 선후배 관계가, 모두 합심하여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데에 적잖은 장애 요소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현재 '나이'에 관련된 한국의 문화는 매우 모순적입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지금의 한국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오히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조롱거리이고 웃음거리가 된지 오래입니다. TV 오락프로에서도 툭하면 출연자들의 나이를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일종의 야유(?)를 던지며 웃음을 유발하기 일쑤입니다. 제가 대학 초년생 시절에는 동기들이 복학생 선배들을 가리켜 '체크세대'라고 놀리기도 했었습니다. 주기적으로 건강을 체크해 주어야 하는 세대라면서 말이지요.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였지만, 사실은 웃기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모임엘 가나 우선적으로 나이를 밝혀야 하고, 그래서 각자 멤버간의 서열 정리가 되어야만 뭔가를 시작해 볼 수 있는 한국의 문화는 사실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인터넷 문화가 훨씬 편하고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상대방이 누구든 몇 살이든, 무조건 똑같이 존대를 하면서 ○○님이라고 부르면 되니까요. 그 익명성을 악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탈이지만 생각해 보면 순기능도 적지 않네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촬영장에서 '후배'이기를 원하고 '막내'이기를 원한다는 박영규의 말을 들으니, 문득 안타깝더군요. 이토록 나이에 얽매인 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면 그런 고민은 할 필요도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앞으로는 아주 조금씩이나마 우리도 자유로워져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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